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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둘기 Oct 29. 2022

당신의 소리는 내게 닿아서

나의 소리도 당신에게 닿아서


소리 : 명사

물체의 진동에 의하여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리어 귀에 들리는 것.

음성 기호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행위. 또는 그런 결과물.

사람의 목소리.



혁이씨와 나는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대학병원으로 향한다. 혁이씨의 다리와 팔의 재활치료를 위함이다.


덕분에 나는 목요일이면 몸과 마음이 다소 분주해진다.

병원에서 세 시간 정도를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에 가기 전, 나의 업무는 얼추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병원 갈 채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챙기고 정리한다. 직장인에게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지지만, 목요일은 점심시간이 10분이라고 보면 된다.


혁이씨의 빨간 운동화를 신겨주고, 애끼는 텀블러에 물을 담는다. 병원 끝나고 먹을 귤 두 개도 야무지게 챙겨 집 앞 벤치에 앉아 콜택시를 부른다.


이제 택시는 목요일마다 우리가 어디에 가는지 알았는지, 앱을 켜자마자 ‘ㅇㅇㅇㅇㅇㅇ병원에 가시나요?’라고 묻는다. 인공지능의 친절한 안내가 괜스레 야속하다.

‘아니! 나 따른데 좋은데 가는데~~?!’라고 하고 싶지만, 이미 들켜버린 행선지. 덕분에 보다 간편하게 ‘네’ 버튼을 누른다.


나의 등에는 혹시 모를 업무들에 대비해 노트북이라는 두터운 등껍질이 얹어 있다. 나는 언제 이 껍질에서 해방될까.

우리가 가는 대학병원은 차로 20분 정도 소요되는 곳이다. ‘택시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탑승을 준비해주세요.’라는 알람이 뜨면, 나의 걸음으로는 5초면 닿을 거리지만 혁이씨와 함께 2-3분 전부터 승차 준비를 한다. 미적대다가 앞 뒤로 빵빵댈 차들이 나타날까 봐서이다. 탑승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님과 빵빵대는 클랙슨 앞에서 우리는 손쓸 바가 없기에.


택시가 도착하면 기사님께 양해를 구한다. “안녕하세요. 타는 게 조금 느려요. 양해 부탁드려요.” “아, 그래유 천천히 타세유~!” 오늘은 충청도 기사님이다.  “고마워유~!” 충청도가 고향인 혁이씨. 오늘은 병원 출발이 좋다. 혁이씨가 스스로 넣지 못하는 한쪽 다리를 들어 차에 쏙 넣어주곤 나는 옆자리로 달려가서 탑승 완료. 충청도 기사님을 만나면 혁이씨는 자꾸만 말을 건다.


도로를 지나 풀들이 사방에 있는 샛길이 나타나면 혁이씨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말한다. “나 이 길 좋아.”

시골길 같이 느껴지는 샛길. ‘그래, 병원 가는 길에도 좋은 것이 하나 있어서 다행이다.’


“아 우리 옆동네구먼 그려~!” “어딘디?!” “아 신산이여~!” “그래유? 난 대천~~!” “아 우리 옆동네구먼 그려어~!”

대천과 신산은 분명 조금 멀다는 것을 알지만, 어느새 친해져 버린 충청도 기사님과 혁이씨.

고향 스토리를 들으며 샛노란 은행나무 가로수를 가로지르면 뒤가 산으로 덮인 우리의 행선지, 병원에 도착.

“천천히 내리세유~!” 혁이씨랑 기사님은 뭐가 그리 좋은지 다음에 또 만나자고 한다.


우리가 다니는 대학병원 재활의학과는 30분마다 환자가 로테이션 된다. 그래서 항상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은 짠하고 아쉽다. 의료진들은 짧은 치료 시간 동안에 저번 주에 30분 만났던 환자의 불편한 부위를 기억해내고 치료해주어야 하기에 분주하다.


이곳에는 머리를 다치거나 신경에 손상을 입은 분들이 주로 오는데 그 후유증으로 잘 못 걷는 환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환자, 계속해서 웃는 환자, 팔을 잘 못 쓰는 환자, 실족한 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여러 가지 지팡이, 보행기, 천장에 연결되어 걸을 수 있게 만든 레일. 모든 보조기구들이 한 인간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놈의 일상. 사소하고 지겹고 가끔은 아름다운, 언젠가 끝나버릴 그 일상으로 치열하게 돌아가고자 모두가 애쓰고 있다. 보조기구들은 그런 사람들의 손을 거쳐 소리 없이 닳아 반짝이고 있었다.


30분이라는 치료 시간.

우리에게는 짧고 선생님에게는 길고도 짧을 것 같은 시간의 지나감을 보며 나는 한편으로 ‘조금 힘들게 하는 환자가 와도 30분이 지나면 가야 하기 때문에 그 걸로 나마 좀 환자(인간)들을 참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근래 조금 친해진 우리 담당 선생님께 ‘선생님 30분 시간 너무 짧은 것 같아요. 정신없으시겠어요.’ 했다.

그는 “그러니까요. 환자분들 한 분 한분 더 오래 봐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짧아서, 그 부분이 많이 아쉽죠~” 하신다. (이런! 선생님 너무 멋있는 거 아니에요..)

나는 새삼 방금 한 생각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라. ㅎㅎ)


우리는 3시부터 30분 동안 운동재활치료를, 30분 동안 전기치료를 한다. 최근에는 30분 동안 하는 도수치료가 추가되었다.


운동재활치료실은 선생님들이 서로서로 잘 도와 일하는 분위기라 유독 분위기가 좋다. 오늘따라 치료방이 더 밝아진 느낌이다.

의료진들의 유니폼은 상하가 모두 하늘색이었는데, 오늘은 딸기 우윳빛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분이 계셨다. 너무 귀여운 핑크색. (도대체 저런 색 옷은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데, 나도 저런 핑크색 입고 싶다!) 선생님의 뽀얀 피부가 더 생기 있어 보였다.

한참 치료를 받고 있는 엄마 뒤에 나는 여느 보호자들처럼 깍두기처럼 앉아 있었다.


걷는 레일을 타고 재활치료사 선생님과 함께 걷기 운동을 하고 계시던 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어딘가를 응시하고 껄껄껄 웃으셨다. 그리곤 핑크색 유니폼 선생님의 눈을 보며 “껄껄껄, 저 뚱뚱한 여자는 뭐여”.

‘.........?.......머리를 다치신건가...?’

그러곤 다시 “껄껄껄껄” 본인이 한 이야기에 혼자 신나신 건지 웃으시는 할아버지 환자분.

할아버지의 재활치료사 선생님은 당황+혼냄의 애교의 손 방망이로 할아버지의 팔을 찰싹. “환자분, 요새 그런 얘기하시면 체포되세요.”

할아버지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갑작스러운 폭탄발언을 건네받은 선생님은 “환자분. 저한테 지금 뚱뚱하다고 하신 거예요? 저 신고할 겁니다”라고 정색과 함께 미소를 날리셨다.

사실 정색만 했어도 충분한 아량을 베푼 것인데, 미소라니.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 않은 대처에 다행이라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치료실을 나왔고, 이내 마음에 걸렸다.


한 번은 진료를 대기하고 있던 할아버지 환자분이 간호사 선생님에게 “어이 아가씨”라 불러서 주변이 잠시 조용해졌던 적이 있다. “아가씨 아니고 간호사라 호칭 부탁드립니다.”

나이도 본인보다 어리고, 딱히 그를 호칭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금세 진료실로 들어가 버리는 간호사 선생님의 뒷모습에 본인 차례가 급하다 보니 나온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서 할아버지가 하신 말은 “뭔 간호사여, 아가씨지! 아가씨 아니고 그럼 뭐여.”

....

그래, 그분은 어딜 가든 나이 어린 사람을 보면 호칭이고 뭐고 “어이 아가씨, 어이 청년!” 그렇게 부르는 게 익숙한 사람일 수 있다. 할아버지가 아가씨라고 부른 그 간호사 선생님은 물러서지 않고 “네, 아가씨 아니고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라 불러주세요.”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떨구셨다.


왜 하필 이번에도 할아버지일까. 우연의 일치이겠지.

‘종특’이라는 단어로 혐오하며 벌어지는 수많은 차별들을 본다. 그래서 그저 할아버지들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리고 싶지는 않다. 내 주변에는 희망스럽게도 젠틀맨 할아버지들이 한 두 분 계시다.


아무튼 다시 재활치료실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선생님은 본인 환자가 아닐 때에도 항상 솔선수범하고 친절함으로 치료실 분위기를 좋게 하는 분이었다.


나는 혁이씨의 도수 치료의 끝을 기다리며 치료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마침 앞으로 지나가시는 것!

‘어차피 성함도 모르고, 그냥 오버하지 말자’ 싶었는데

이 때다 싶어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사람은 마음이 있을 때 해야 하는 법이야. 이거 할까 저거 할까 할 때 좋은 거면 하자.) “항상 친절하게 해 주셔서 칭찬 카드 쓰고 싶어서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활짝 웃고 지나가셨다.


처음 쓰는 칭찬카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위로.

선생님이 평소에 얼마나 프로페셔널 한지, 친절하신지 올 때마다 기분 좋게 치료받고 간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나도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기뻤다.

선생님은 알까?

나쁜 일들은 쉽게 몸과 머리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는 법이지만, 오늘 있었던 나쁜 일은 더 많은 좋은 일. 손바닥만한 칭찬 카드 따위의 소소한 행복들로 옅어졌으면 좋겠는 나의 마음을. 그 행복의 조각 중 하나를 주고픈 나의 마음을.


하지만 오늘 배워가는 사람은 오히려 나다.

할아버지의 폭탄발언에 대응하는 선생님들의 여유로운 대처를 보며 ‘사실 할아버지는 본인이 어땠는지 끝까지 모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아무 말도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나에게는 없는 중요한 조각을 찾았기 때문이다.


8년의 짧다면 짧은 사회생활 동안 나는 아직도 배워나가는 중이다.

사회초년생 때 젤리를 먹으며 함께 일했던 그 동료.

그 동료는 계약직 만료 퇴사 전에, 주변의 선배들에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그 상사를 계속 지켜보고, 계약직이라는 메리트를 이용해 대신 신고해주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묻히지 않았다. 그 상사는 3개월간의 권고 휴직을 하게 됐다. 모두가 알고 있던 만년 낙하산 그의 인생엔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 복직했지만 알았을 것이다. 이전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려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지 않고 자신의 소리를 자신의 양껏 내는 사람들을 통해 나는 오늘 또 배워간다.


존대를 한다고 다 존중하는 것도 아니며

반말을 한다고 다 하대하는 것도 아니다.

평어를 쓴다고 다 평등해지는 것도 아니고,

호칭을 부른다고 다 호칭처럼 되는 것도 아니지만.

존중하고자, 평등해지고자, 배려하고자 하는 노력은

사람 대 사람으로의 존중이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러려면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객의소리함은 언제 열려 선생님에게 전달될까요?

나쁜 일들은 쉽게 몸과 머리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는 법이지만 오늘 있었던 나쁜 일은 더 많은 좋은 일들로 부디 옅어지시기를. 좋은 일들이 더 많으시기를.

나만의 방법으로 오지랖을 떨어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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