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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둘기 Oct 29. 2022

일, 강아지, 그리고 말 할 수 없는 기쁨

농인 패밀리의 강아지 이름 정하기(듣지 못해도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시댁의 가족 구성원은  농인이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그리고 코 다인 우리 남편 최씨와 시동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 남편 최씨는 일과 학업을 병행해서 대학원 졸업장을 가진 채, 택배 운수업에 몸을 담은 지 올해 5년 차다. 그의 취미는 Bob james의 재즈 연주 듣기와 책 읽기. 여전히 그는 배움에 있어 더 먼 곳까지 가고 싶어 한다.

남편이 속한 회사에서 택배 운수업은 엄연한 자영업자로 구분되지만, 출퇴근 시간이나 휴가가 자유롭지 않다. 본사의 규정에 따라 할당량의 업무를 매일 마쳐야 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에 소속된 자영업자인 분들은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은 나중에 한번 더 다루고 싶다.


아무튼 최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6시 30분마다 기상을 해, 새하얀 트럭을 몰고 본인에게 오는 상자들을 처리한다. 적으면 300개부터 많으면 1000개까지.

최씨는 시댁 어르신, 시동생과 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매일 같이 만난다. 시댁 어르신들이 이렇게나마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나는 가끔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곤 한다. 일자리가 많다한들, 파릇파릇한 청년들에게도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은 터에, 환갑을 앞두고 있는 농인인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더 찾기가 어렵다.

이것은 최씨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님의 일자리를 찾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최씨는 결국 자신이 부모님을 고용했다.

시동생은 스무 살 중반에 몇 년간 병원에서 응급구조사로 일을 했다. 일 년간 소방공무원에 도전했다가, 여러 이유에서 함께 택배 운수업을 하게 되었다.


‘세월은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매일 비슷한 방식의 삶을 살고 있지만, 외부의 현상과 내면의 고뇌는 시시각각 충돌하며 나를 흔든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우리는 서서히 변한다.” 외모뿐 아니라 마음가짐, 태도, 말 , 생각이 변화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그대로’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 책 - 유한성의 발견 ‘나이 듦’ (최은주 지음)


사람은 언제나 나이 듦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옛 세대에서 나이가 들거나 질병을 가지게 된 부모를 부양하는 문제는 어쩌면 별것 아닌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으면 두 명의 자녀, 혹은 한 자녀 시대에 이것은 예전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최씨, 최씨 동생. 우리는 취준생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부양과 생계, 간병을 유지하며 하고자 하는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우리를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영케어러들은 자질구레한 공과금 납부의 문제부터 사소한 병원왕래, 간병까지. 부모님 곁을 완전히 떠나기가 쉽지 않은 채로 어딘가에서 학업과 일,가사를 하고 병행하고 있다. 아니면 어떤 경우에서는 병행을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와 그들은 모두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본인 밥벌이와 부양과 간병의 부담, 밥벌이를 넘어 앞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오는 갈증. 후자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그나마 다행인 케이스에 속할 것이다.


몇 개월 전, 혁이씨가 아예 거동이 불가능했을 때의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는 후자의 고민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찍이 치매나 아예 소통이 어렵게 되신 분들을 모시고 있는 케어러들의 삶은 어떨까.

요새는 영케어러 유튜버들의 일상이 심심치 않게 유튜브에 올라온다. 아마 소통할 창구가 쉽지 않아서 일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을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쉬기 바쁜 여느 때와 같은 어느 하루, 그렇지만 시댁 가족 구성원의 일상에 조금 슬픈 일이 있었던 여느 때와는 다른 날이었다.


우리 집에 강아지 식구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시댁 식구가 늘은 것이다. 강아지를 입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조금 슬픈 사건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비밀에 부치겠다. 아무튼 그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우리 집 최씨 아저씨의 기특한 발상과 십여 년 동안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몇 년 간의 공백기 동안 강아지를 그리워하던 구성원들의 소망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날이었다.


시동생은 강아지를 데려 오기 전, 이름부터 정했다.

그는 그 이름을 ‘보리’라고 정하기로 했다.

무언가의 이름을 정하는 일은 항상 설레고도 막중하기도 하다. 기분 좋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왜 보리라고 정했어?”

“엄마가 부를 수 있는 이름으로 정했어요. 엄마가 그래도 비슷하게 나마 하실 수 있는 발음이 많지 않은데, ㅂ이랑 ㄹ이 이에요. 어렸을 때 보리, 쌀 같은 발음을 눈으로 많이 보셔서 그래도 따라 하실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보리라고 정했어요.”

엄마가 부를 수 있는 발음을 찾아, 강아지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왠지 뭉클하고 특별하게 와닿았다. 그에게는 일상적인 일임에도.

아직 곁에 오지도 않은 강아지였지만 이미 올 ‘보리’를 생각하며 그는 행복해 보였다.


처음 강아지를 보러 간 곳은 수원의 한 강아지 분양소.

새하얀 털에 동그란 눈을 가진 말티푸.

그런데 우리가 예약하고 찾아간 곳에는 그 강아지도, 강아지 뒤에 있던 뒤에 배경도 온 데 간데없었다. 분명 최근에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점원은 방금 누군가에게로 갔다고 하지만 황당했다.

그곳을 둘러보다, 강아지도 한 생명인데 생각보다 너무 시장터 같다는 마음에 그곳을 나오게 되었다.


“이미 이름도 보리라고 정했는데.. 어떻게 속상해서.”

“괜찮아요. 또 다른 보리가 오겠죠.”


‘안 그래도 속상한 데, 강아지를 데려오는 계획이 틀어져서 속상하다. 한껏 기뻐했는데.’ 나는 집에 돌아가 다음을 기약하며 잘 들어갔냐고 연락했다. 언니랑 오빠가 있어서 고맙다는 그의 말.


그리고 최씨와 시동생은 며칠 지나지 않아 하얀 트럭을 타고 멀리 이천으로 떠났다. 그리고 또 다른 보리가 왔다.

보송보송 하얀 털에 옅은 보리차 색 보리 색깔 귀를 하고 있는 말티푸. 보다 더 보리 같은 보리가 왔다.


보리는 이제 막 2개월이 된 코와 발이 핑크색인 애기였다. 핑크색 발바닥을 만지면 몽글몽글한 것이 고양이 발바닥이 따로 없었다.

보리를 보는 사람들은 낯빛이 어딘가 억울해 보인다고 했다. 억울한 매력을 가진 보리.

하지만 우리는 보리가 얼마나 신났는지 그의 꼬리를 보고 알 수 있다. 하얀 털이 하늘을 향해 팔랑거리는데, 헬리콥터가 따로 없다.


조금은 억울한 낯빛이었던 보리는 핑크색 코와 발이 까매지면서 이제 더 이상 억울해 보이지 않는다. 어떤 강아지보다 말도 잘 듣고, 잠도 잘 자고, 밥도 얼마나 잘 먹는지. 배변도 잘 가린다.

길에서 다른 강아지를 만나도 석 불리 짖지 않고, 곁에 다가가 동태를 살피다 살포시 비비적대는 신중한 강아지다.

무엇보다 할 말이 있을 때 할 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처럼 필요할 때 짖을 줄 아는 영리한 강아지다.


시어머니는 시동생과 우리의 기대와는 조금 달리 보리를 향해 ‘보짤-‘이라고 부르신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보았을 수많은 보리와 그가 씻어왔던 새하얀 쌀들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이제는 새하얀 고봉밥에 옅은 보리밥만큼 소중한 우리의 강아지 보짤. 우리의 보리.


오늘도 누런 종이박스를 꽉꽉 채워 달리는 새하얀 트럭 안에는 보리가 가득하다. 보리 얼굴로 만든 띠뿌띠뿌씰 스티커, 보리사진으로 만든 키링.


일을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은 쉬기 바쁜 여느 때와 같은 어느 하루, 그렇지만 시댁 가족 구성원의 일상에 반려 강아지 보리가 주는 기쁨이 있는 여느 때와는 다른 날이다.


때로 우리는 번거로워질 것을 알면서도 돌봄을 자처하고,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인생에 들인다.


나도 가슴에서 강아지 한마리를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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