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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감정을 추적하기

천 자의 생각 13

by 최형주

평소보다 더 의욕이 없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니 와이프가 닌텐도 스위치로 프린세스 메이커2를 사서 밤새하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하는 중에도 그녀는 계속 게임에 열중했다. 출근하기 직전,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가 해서 가 보니, 거의 다 끝나고 엔딩을 볼 타이밍이었는데 오류가 나서 게임이 꺼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네” 하고 약간의 위로를 해준 후 출근길에 나섰다.


안타까운 일이네, 하고 말하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그 감정이 무엇일까. 안타까움? 아쉬움? 짜증? 모두 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너무 범위가 크고 추상적이지 않은가.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형용할 수 없는 감정’ 같은 말로 표현하고 끝내는 것은 글을 쓰는 자의 직무유기일 뿐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아쉬움일까. 그렇지만 게임의 목적은 엔딩이라는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시간을 보냈음에도 그 흔적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허무함일까.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내 감정을 추적하다 보니 결국 <삶의 이유 없음에서 오는 근본적인 허무함>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평범한 사건에서 허무까지 도달하다니, 예상하기 어려운 도약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을 느낀 내가 최근에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다는 점, 그리고 회사와 업계에 대한 비관적인 소식을 듣고 직업과 노후에 대한 생각을 요즘 하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 도약이 이상하지는 않다. 이렇게 일상의 감정을 추적하다 보니 내가 왜 요즘 의욕이 없었는지 알 수 있었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고, 의욕이 없고 만사 무기력할 때가 누구에게나 종종 있다. 그럴 때 일상의 감정을 추적해 글로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에 <그냥 즐거움>은 없고, <평범한 아쉬움>은 없다. 한 단어, 한 문장으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일상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사진: Unsplash의 Marc-Olivier Jod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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