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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천 자의 생각 11

by 최형주

올해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D램 점유율에서 처음으로 앞섰다. 이렇게 희비가 엇갈리게 된 이유를 한 전문가는 <선택과 집중>에서 찾았다. 다양한 제품을 동시에 붙잡고 있던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핵심 제품에 자원과 인력을 집중해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선택과 집중은 곧 포기라는 뜻이며, 포기를 잘해야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짬짜면의 예시를 통해 한국인은 참 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곁들여서 말이다. 그렇다. 선택이 아니라 포기가 중요하다. 우리는 변곡점에서 하는 중대한 선택이 삶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정반대인 것이다.


하루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씻고, 자고, 먹는 기본적인 일과 근무(혹은 학업이나 취업 준비)라는 기본적인 루틴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하다. 그래도 한 끼 정도는 제대로 된 음식을 요리해서 먹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고, 요즘 유행한다는 영화도 보고 싶고,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기고 싶고, 가끔은 부모님께 전화도 해야 한다. 그뿐인가. 노후 준비를 위해 재테크 공부, 회사에서의 업무를 위한 공부, 부족한 영어 회화도 연습해야 하고, 이직 준비도 게을리할 수 없다. 남들이 다 하는 일, 당연히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만 추가해도 24시간은 금세 모자란다. 하루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한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허준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다행인 점은, 기업에게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대 목표가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어떤 것을 포기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무엇을 포기하는지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 삶의 끝에 어떤 모습의 내가 나를 기다리기를 바라는가? 그를 위해, 나를 산만하게 만드는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 할까? 무엇이든 좋다. 그렇지만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것은, 편안함과 안락함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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