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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글쓰기

천 자의 생각 14

by 최형주

링크드인이라는 비즈니스 목적의 SNS가 있다. 업무 관련 네트워킹이나 업계 소식을 접하고 다양한 기회를 얻기 위해 가끔 들어가서 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구조의 글들을 접한다. 시선을 끄는 제목으로 시작하고, 공감 가는 짤막한 일상 속의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그 에피소드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몇 가지 규칙으로 정리하고, 마지막에는 짧은 문장으로 끝나는, 이런 구조로 된 글들 말이다. 링크드인뿐만 아니라 인터넷 이곳저곳에서도 이런 구조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예전에도 이런 구조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ChatGPT를 위시로 한 생성형 AI의 출시 이후 이런 글들이 더 많아졌을 것이라고 합리적인 추론을 해 본다.


나도 생성형 AI를 사용해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을 받고자 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 글들을 나중에 읽어보니 앞서 언급한 기시감이 들어 이제는 잘 쓰지 않는다. 글을 다 써두고 맞춤법 수정 등이나 글을 올린 후 제목을 추천받는 정도로 활용한다. 만약 내가 직업 상의 이유로 혹은 다른 특정한 이유로 링크드인이나 블로그에 정기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입장이라면, 몇 가지 템플릿을 만들어 쉽게 쉽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에피소드와 메시지 정도만 기입하면 하나의 완성된 글이 나오도록 말이다. 조금 더 성의를 기울인다면 자동으로 글이 업로드되도록 할 수도 있고, 약간만 더 나아간다면 에피소드나 메시지 중 하나 혹은 둘 다 내 니즈와 상황에 맞게 알아서 정기적으로 생성되도록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글을 쓰는 목적에 비즈니스는 없기에 굳이 이 방식을 쓸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그 대신,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AI 시대에 나는 어떤 글쓰기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AI시대에 내 글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지금이야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글은 티가 나지만 앞으로는 구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글들은 군더더기 없고 술술 읽히고 인사이트풀한, 심지어 개성도 드러나는 글이 될 것이다. 그런 시대가 오기까지는 5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AI로 양산해 내는 글보다 못한, 심지어 쓰는 데 시간마저 많이 들어가는 내 글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기계가 짜낸 스웨터보다 삐뚤빼뚤하고 마감이 덜 세련되었지만, 사람이 한 땀 한 땀 짰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인간적인 포근함만을 내세우는 수제 스웨터 정도의 가치만을 지닐 것인가? 혹은, 직접 생각하고 쓰고 읽는 그 글쓰기 행위 자체에서 오는, 창의성 및 사고력 증진과 치매 예방 정도의 효능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다. 만약 그런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며 쓴다고 하더라도 일상 메모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질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바보 같은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그런 고민을 할 수준이 아니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쓰는 글의 적수는 AI가 아니다. 지금도 쏟아지는 수많은 작가 (와 지망생) 들의 글보다도 못한 글을 쓰는 나에게, AI와의 대결을 걱정할 이유는 하등 없다. 적어도 인간계에서 상위 0.02% 정도는 되어야, 대한민국이 5천만 명이니 상위 10000명 수준의 글쟁이는 되어야 AI 상대하는 것을 걱정할 레벨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수준까지 가는 데에 AI는 필요도 없다.


내 고민이 조금 바보 같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론은 낼 수 있었다. 하던 거나 잘하자.


이 글은 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를 읽고 썼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최소한 글의 초안만이라도 손으로 쓰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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