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자의 생각 16
대학교를 다닐 때 두 가지 동아리 활동을 했다. 하나는 야구, 하나는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다. 두 곳에서 모두 매일같이 듣던 말이 있다. 힘을 빼야 해,라는 말이다. 야구 배트를 돌릴 때, 공을 던질 때, 악기를 잡고 운지를 할 때, 활을 그을 때, 항상 그 말을 듣는다. 힘을 빼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힘을 주고 배트를 돌려야 공을 멀리 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힘을 빼라는 말은, 정말로 힘을 다 빼고 흐물흐물한 팔로 스윙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필요한 곳에만 힘을 주라는 말이다. 어디든 적용되는, 진리의 한 부분을 담고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고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모든 글에는 주제가 있다. 비문학은 물론이고, 에세이나 소설과 시 같은 문학작품도 마찬가지다. 주제란, 그 글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말한다. 말 그대로 글의 중심이다. 그렇지만 막상 주제를 파악하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읽다 보면, 혹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쓰고자 결정한 후에 에세이나 소설 혹은 시를 쓴다면, 무언가 어긋난 감각을 마주한다.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고 보고서 같은 딱딱한 글이 된다. 마치 힘이 잔뜩 들어가고 머리가 복잡한 타자가 타석에 들어가 스윙을 할 때처럼 말이다.
어떤 구종이 어디로 날아올지, 어떤 자세에서 어떤 움직임을 할지 생각하면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는, 필연적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가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럴 때 해설자들이 말하고는 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요. 단순하게 생각하고 타석에 임해야 합니다.” 별생각 없이 그냥 대충 스윙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를 머릿속에 모두 넣어두고, 그걸 미리 체화시켜서 무의식적으로 그 스윙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고, 그렇지만 막상 스윙을 할 때는 그것들을 모조리 머릿속의 한편에 치워두고 단순하게 대응하라는 뜻이다.
글을 읽고 쓸 때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때 그 글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으로 순순히 따라가자. 플롯이 어디로 향하는지, 인물들의 감정이 어떻게 고조되는지, 어떤 표현으로 그를 완벽히 표현하는지, 그 굴곡들을 온전히 느끼면서 책을 읽어야 한다. 글을 쓸 때도 어떤 메시지를 최종적으로 전달할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재미있고 짜임새 있으며 독자를 몰입시킬 수 있는 글을 쓰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 글을 시작하기 전과 끝난 후에는 글의 주제나 비판점 등을 생각하고 발견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지만, 읽고 쓰는 그 순간에는 그 행위에만 집중해야 한다. 특히 문학에서는 더더욱, 주제는 스토리 속에서 자연스레 발견되고 사후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마치 힘이 잔뜩 들어간 타자와 같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Chris C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