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자의 생각 17
생성형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글은 이 시대에 기업에 다니는 노동자인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자. 소통 잘하는 오타쿠가 되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내 결론이다.
먼저 AI에 대해 말해보자. 생성형 AI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는 일. 이전에는 많은 경험을 통해 배워야 했고 어느 정도는 인간의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이제는 쉽게 가능해졌다. 내 업무에 대입하자면, 생성형 AI는 실험 전 문헌조사를 도맡았으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토론 파트너가 되었고, 문서 초안 템플릿을 만들어 주었고, 데이터 분석을 보조했다. 이전 같았으면 더 많은 사람과 더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생성형 AI는 어떤 일에 대해서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서 80점 수준까지 쉽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며, 한 사람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런 AI가 기업에 어떤 영향을 줄까. 기업의 구조를 극도로 단순화하면 <가치를 만드는 영역>과 <가치를 전달하는 영역>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기획, 연구개발, 디자인, 생산, 품질 관리 등이 전자에 해당할 것이고 마케팅이나 영업, 유통, 고객 관리 등이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기업이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이처럼 이 두 영역과 그 사이에서 수많은 업무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수의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생성형 AI의 도입은 그 전제를 바꾸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생성형 AI는 필요 시간들과 인력을 줄이거나 없앤다. 여기에 자동화와 외주까지 더해진다면 프로젝트의 완수까지 필요한 사람의 수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며, 이 흐름이 극도로 심화되면 우리 모두는 <1인 기업>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은 열 명 미만의 한 팀이 한 기업에서 할 만한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수준정도로 보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흐름, 한 사람이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흐름 속에서, 개인의 독창성과 창의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누구나 80점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으니 전문성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독창성과 창의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쉽게 대체가능한 매력 없는 노동자가 된다. 질문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너무 식상해졌으니, 다른 키워드를 두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흥미다. 흥미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AI는 물어보면 무엇이든 대답해주지만 물어보지 않은 것을 대답해주지는 못한다.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고 즐기는 사람, 소위 덕후만이 일반인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없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의 분야에 흥미를 가지지 않으면서 80점 정도의 일을 해내는 사람은 필요 없다. 흥미 있는 분야에서 일하거나, 그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 찬찬히 뜯어보면 내 일 중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찾기 어렵다면 빠르게 다른 일을 찾아서 그 분야의 덕후가 되어야 한다. Tech Otakus Save the World 기술 덕후가 세계를 구한다,라는 글로벌 10대 게임사인 HoYoverse의 슬로건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소통이다. 프로젝트가 완결되기까지 필요한 사람이 적어진다는 것은, 한 사람의 역할이 그만큼 커진다는 말이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나와 같은 분야에 흥미를 가지면서도, 나와 다른 방향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한다. 가치를 만드는 영역에 있다면 가치를 전달하는 영역의 사람과 이어져야 한다.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의 메리트는 점점 떨어지고, 연결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모든 직종에 필수가 될 것이다.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내가 이제야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이 거센 물결 속에서 내 포지션을 찾아보려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면서.
사진: unsplash의 kraken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