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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감성의 지배자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안노 히데아키

by 너무강력해

20세기가 끝나가고 그토록 염원하던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 까마득한 먼 옛날 한 예언가의 지구 멸망 예언이 재조명 받으며 지구인들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당시 10대였던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떠다녔는데 운명처럼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나타났다. 에바는 당시 세기말 분위기를 타고 젊은 층의 감성을 지배해버렸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에 몸부림치는 10대 후반이기도 했고 남모를 몸의 병으로 혼자 끙끙 대다 보니 에바 속 세계관에 깊이 빠져 저항할 수 없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 다 같이 망해버리자 이런 심정이었으리라. 덕질에 혼이 저당잡혔던 시절. 지금 돌이켜 보면 참 후회되지만 당시에는 어렸고 지울 수 없는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렸다.


에바 이야기로 펜을 든 이유는 과거 넋두리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뜬금없는 새로운 극장판 때문이다. 총 네 편으로 종결되었고 기간이 10년도 넘어 참 질겼다. 에바는 eoe에서 너무나도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에바의 여정은 여기서 끝났고 그래야만 했다. 헌데 왜 다시 극장판이 나왔는가. 관 뚜껑 다시 열어 죽은 망령 다시 소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 에바가 사골도 아니고 그만 우려먹어라.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야 하는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 100번 양보해서 만들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완성도를 높여서 내놓아야지. 특히 Q와 마지막 편, 이 편은 제목조차 알기 힘든데, 졸작이자 망작이다. 어렵고 난해하다고 에바가 아니다. 그래픽이 좋아졌다고 에바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에바를 돌려달라고 하지 않겠다. 이제 그만하고 에바를 쉬게 놔두자. 과거의 추억으로 남겨두자는 말이다.


이상 어쩌다 어른이 된 옛날 사람의 분노의 감정이 다분히 실린 투정이었다. 에바 제작진은 다소 억울할지 몰라도 감수해야지. 어쩌겠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독자 개인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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