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라에게는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외모가 있었다. 굳이 냉정하게 따지자면 평범한 외모와는 달리 성격이나 취향면에서는 특이한 쪽의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특이한 사람들의 세계에선 평범한 그런 과였다. 그녀는 특이한, 아니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정체성을 지만의 색으로 제대로 색칠한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
그녀는 그 세계에서는 각자의 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태리산 대리석으로 지은 성까지는 아닐지라도, 느낌 충만한 예쁜 모래성 정도라도 지어놨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라는 이상하게도 그런 쪽에선 안일했고 아무런 청사진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냥 되는대로 살았다. 그래서 그런 물, 그런 세계에 제대로 진입할 수 없었다.
그런 바닥에서 노는 걸 포기했으면서도 이미라는 그런 멋드러진 남자를 만나고 싶어했다. 근데 그게 잘 안 됐다. 방금 언급했다시피 커리어든 인맥이든 뭐가 됐든 간에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그런 과의 남자들이 다가왔다. 그중 가장 미친 남자는 지하철 헌팅남이었다.
그 헌팅남은 외국물을 좀 먹은 한국인이었다. 지하철에서도 당당하게 낀 선글라스, 그래피티를 하다가 왔던가 뭔가 됐든 간에 예술을 하다가 왔어야 할 것 같은 괴상한 스트릿 패션이 그 증거였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스치면서 몇 번 본 사이였다. 그러니까 세상에 갓 나온 햇병아리 이미라가 감히 덤빌 수 없는 끝판왕 급의 미지의 인물은 아니었다. 신원이 어느 정도 확인된, 뭔 일이 일어나도 큰 일은 날 수 없는, 안전이 보장된 그런 남자였다.
그는 미라의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향해 히죽히죽 웃는데 그 미소가 미라를 향한 것인지 미라는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 했더랬다. 그 바디랭귀지가 지속이 되고 나서야 그녀를 향한 장난이자 애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눈웃음을 치고 있겠지만 까만색 선글라스가 그의 눈동자를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새까만 알에 가려진 눈에, 웃는 입모양을 내보이고선 손인사도 건냈다. 이 모든 것이 그 새하얀 조명 아래, 지하철이라는 세상 경직된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그의 비현실성을 더더욱 부각시켰다.
미라는 고개를 숙이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말인가’. 미라가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떨군 시선을 그에게 보냈다. 그러자 남자는 그 많은 관중의 눈길은 죄다 무시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레몬사탕 하나를 건내주고 지 자리로 가서 다시 앉았다. 그리곤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모르는 사람이 건내주는 걸 먹었다가 큰일이 나는 장소가 아니었다. 마약청정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과거의 한국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이벤트. 그때의 미라는 ‘용기’라는 덕목이 존재한다는 걸, 필요하다는 걸 모를 나이였다. 그를 따라서 내렸더라면 그 둘의 운명은 잠시나마 같은 노선을 걸을 수 있었을까? 미라는 초큼... 머저리같이 입은 조금도 벙끗하지 않았던 그 어린 남자의 모지란 용기를 채워줄 용기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미라는 그녀가 원했던, 세상 뭣도 신경 안 쓰는 가장 미친놈과의 감정놀음을 놓쳤다.
어느덧 시간은 KTX, 떼제베, 이체 따위가 합체한 것보다 빠르게 흘러 미래로 진입했다. 그녀는 눈앞에 산재한 일을 쳐내다가, 커피 기름이 뜬 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레몬의 향도 모양도 전혀 닮지 않은 그 까만 물 속에서 불현듯 그 사탕헌팅남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그 남자같은 애들과 사귀는 일은 사실 자격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때와 장소만 맞으면 일어날 수 있는 만남들이었고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았거나 놓쳤던 것이었을 뿐. 용기만 없었던 게 아니었다. 바보였지 바보. 다 갖추고서도 모자라다 생각했던 어린 아이.
미라가 그때 그 과거로 소환된다면, 당연히 지하철 차량에서 내리던 그를 따라 내렸다. 사탕은 배가 고프니 더 맛있는 걸 사달라고 했을 거고. 괜히 초면에 팔짱을 끼어서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큭큭거리며 웃었겠지.
스무 살의 특권은 영구박탈당한 이미라는, 이런 예측불허의 감정은 완벽하게 거세된 메마른 곳에서, 다행히도 자기 마냥 말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2023년 2월의 마지막 날,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