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생일이신가 봐요

by 구구

“오늘 생일이신가 봐요?”

두꺼운 소재의 검은색 목폴라티를 입고 온 훤칠한 사내가 여자 셋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강남역의 어느 오래된 건물 4층에 자리한 테이블 8개의 아담한 술집, 같은 건물 지하의 XX클럽을 가기 전에 한 잔 하고 가기 딱 좋은 곳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적당한 조도의 조명과 몇 개 안 되는 테이블 개수로 이곳에서는 누가 어디 앉아 있는지 다 보인다.

여느 술집에서 트는 요란한 스타일이 아닌, 점잖은 목소리의 생일파티송이 나왔다, 여심을 아는 센스있는 사장의 취향이 돋보인다. 어느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등장할 때 나와도 좋을 듯한 뻐터 바른 노래가 나오자 온 사람들의 시선이 이 테이블로 집중됐다. 이제 막 술집에 들어왔던 이 남자는 세 여자들을 스캔하고서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들어와 이 테이블로 직행한 것이었다.

“네, 제.. 생일이죠.”

생일자인 혜련이 대답했다.

'목소리도 내 스타일..'

나라는 가녀린 여자를 좋아했다. 혜련이 입은 잔잔한 꽃무늬 핑크색 짧은 원피스는 그녀의 이미지와 정확히 부합했다. 햐앟고 마른 몸, 아기고양이상의 얼굴. 은밀한 곳에서 그녀의 웨이브 진 긴 머릿칼을 움켜쥐는 상상을 하며 뚫어져라 바로밨다.

혜련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가연, 나은이의 표정이 나쁘지 않다. 혜련은 눈짓으로 괜찮냐고 물었고 가연과 나은이는 아예 소리를 내서 말했다.

“어 괜찮아. 훌륭하신 분이네.”

“그래, 오시라 그래.”

사내의 이름은 나라, 나라는 등 뒤에 숨겨뒀던 장미 한 송이를 꺼냈다.

“여기 옆 가게가 꽃집이더라고요. 오는 길에 봤던 게 생각이 나서 방금 사왔어요.”

나라가 혜련의 눈 앞에 꽃을 들이밀었다.

혜련은 너무 짧은 순간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닥쳐온 이 엄청난 가성비의 선물에 감동을 해 순간 울 뻔한 것을 참았다. 그녀가 그 어떤 남자친구도 이런 서프라이즈를 해 준 적이 없었다. 물론 그의 선물을 완성시켜 준 것은 나라의 얼굴이었다. 눈, 코,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하게 붙은 대칭적인 얼굴. 혜련은 이렇게 제자리형 얼굴을 좋아했다.

“꽃이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나라는 이런 상투적인 말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성격을 원망하며 말했다. 이게 아니라 바로 뛰쳐나가서 널 갖고 싶을 정도로 고맙다 씨발, 개 좋네. 너 뭐냐 대체?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꽃집에서 봤을 때는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오니 꽃이 기가 확 죽네요. 벌써 시들어가요..보이죠? 그쪽...아, 이름이 어떻게 돼요?”

“응, 나 정혜련. 너는?”

“박나라. 혜련아, 잠깐만. 내 친구 좀 불러올게. 내 친구도 나만큼 생겼는데 괜찮지?”

“우리 나라가 있는데 누군들 괜찮지. 데려와.”

나라가 자리를 뜨자마자 여자 셋은 난리가 났다.

“야..2022년 마무리 제대로다.”

“어, 결산이 이렇게 아름답냐...”

“혜련이 정말 난 년이야. 야. 꺄아악.. 친구봐. 끼리끼리 논다더니 친구도 잘났네..”

나라와 그의 친구 인성은 역시나 지하 클럽을 가기 위해 이 곳에 들른 남자들 중 하나였다. 둘다 누나들과 자란 이 막내아들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이 연상녀들과의 대화가 나쁘지 않았다. ‘나 좀 즐겁게 해 봐’란 식의 새침데기 꼬맹이들은 이제 질릴 나이. 옷도 대화도 시원하게 깐 예쁜 누나들과 붙어서 주고 받는 짜릿함이 너무 설렜다.

“스물 네 살? 여자 몇 명이나 사겼어?”

가연이 인성에게 물었다.

“나, 누나가 처음이지.”

인성이 과장스런 몸짓으로 가연을 안으며 말했다.

“인성아, 누나 스물 여덟인데 이제 열 세명 정도 되거든?... 누나 반만 사귀고 다시 와라. 너무 어린 애는 싫다.”

가연이 인성의 품 안에서 말했다.

“인성아, 나은이 누나는 동정인 너도 받아줄 수 있단다.”

인성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나은이 인성의 몸을 자기 쪽으로 획 돌리며 말했다.

“야아아아 김나으으은...! 인성아. 아까 말 취소. 누구야? 우리 중에 누가 좋아?”

다섯 남녀는 자정이 돼도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어디에 사냐, 뭘 좋아하냐, 전 여친, 구 남친 이야기부터 길가다 소매치기를 잡은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각종 이야기를 술잔에 섞었다.

혜련은 말빨 좋은 장미꽃가이, 나라가 입을 터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 밤에 동화된 듯 까만 옷을 입어 말끔한 얼굴이 더욱 빛이 나는 이 어린애를.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본인이 잘 용도인지 여친용인지는 그녀에게 중요치 않다. 간절히 원한다고, 더 알고 싶다고 무언으로 말하는 이 두 눈동자를 보는 이 순간, 그 작은 보람을 위해 이 케이크를 준비했던 것이다.

“세 시다. 가자 얘들아.”

혜련이 말했다.

인성과 나은, 가연은 이미 번호를 주고 받았다. 나라는 갑작스런 통보에 당황을 한 나머지 이름을 불렀던 기조를 잃고 서둘러 말했다.

“누, 누나! 누나도 번호.”

“나라야, 아직 클럽 한창이다. 빨리 가서 하나 건져.”

혜련은 혹시라도 나라의 썩은 표정을 볼까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계산대로 직행한 후 엘리베이터를 탔다. 여자들은 형광등 불빛 아래 화장이 다 뜬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손뼉을 세게 빡빡 쳤다.

“올해 마지막 가.짜.생.일.도 즐거웠습니다!!!”

제일 취기가 올라온 나은이 소리를 질렀다.

“너 9월 진짜 생일 때 꽃 받았으면 진짜 좋았었겠다. 그지?”

가연이 말했다.

“야,,,니네도 진짜 할 거야? 왜 자꾸 나 따라 해.”

혜련이 둘을 째려봤다.

혜련은 3월, 6월, 12월에 이들과 가짜 생일파티를 즐긴다. 술집에서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 딱 좋다. 안 넘어오는 애들이 있으면 케이크를 건내면서 작업을 걸기에도 좋고. 이 짓을 한 지도 올해가 2년째. 오늘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 와꾸도 감성도 모두 100점.

“야, 스물 여덟? 계란 한판이 왜 사기를 쳐.”

혜련이 웃으며 말했다. 가연은 반면 심각하게 답을 했다.

“근데 오늘 애는 누가 봐도 진짜 괜찮던데 왜 번호 안 줬어?”

“그냥.”

택시가 혜련을 집 앞에 떨궜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대문 앞에 앉았다. 시멘트 바닥에 닿은 엉덩이에 올라오는 한기를 느끼며 두 손을 주먹을 쥐어서 포개고 이마에 갖다 댔다. 아무런 아픔도 없이 환희로만 찼던 조금 전 만남의 상이 맺혔다. 그녀의 몸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던 나라 특유의 몸짓, 손과 손, 팔과 팔끼리 정말로 스치듯 지나갔던 접촉이 떠오르자 혜련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직선으로 뻗은 까만 눈썹, 마디가 두꺼운 큰 손, 얼굴 마냥 대칭적으로 잘생긴 귀, 또 잘생긴 울대... 그의 조각 조각을 발치에 꺼내놓고 하나하나 만져봤다. 그리고 왼손을 올려 그 울렁거리던 눈빛을 밤하늘에 박았다. 오늘의 별자리는 나라. 12월 21일이니 나라1221호.

제목: 오늘 생일이신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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