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의 친구

by 구구

그에게는 특이한 친구가 있었다. 과외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학교를 자퇴하고 세상이 덜 알아주는 우리 학교로 다시 입학한 이상한 놈. 그래서 또래가 돈 벌 때 나같은 어린애들과 학교를 다녀야 했다.


남친은 무난했다. 무난하다는 타이틀을 달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은 알지만 무난하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다. 어디 데리고 다니기도 무난하고, 친구에게 소개하기도 무난한 남자를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여자들은 모두 잘 알 것이다. 나는 그 평범함을 놓치기 싫어 ‘다 이런 거 아니겠어?’라고 되뇌며 2년을 만났다. 남친의 그 이상한 친구는 “얘 우리 학교에서 너네 학교로 간 미친놈이야.”라는 말로 결혼식장에서 스치듯 소개받았다. 그 이후 남친은 고과를 잘 받겠다고 지방 근무를 자청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헤어졌다.


학교에서 그 전남친 친구를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며 다니던 중이었다. 모자란 학점을 채우자고 넣은 마지막 교양수업에서 그를 아주 직접적으로 마주치고야 말았다. 두 명이서 전시회를 다녀와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자 백주가 내게 먼저 짝을 하자고 말을 걸었다.


“우리 결혼식장에서 봤었지? 이름이 송세은... 맞던가? 어린 애들이랑 뭐 같이 하기 힘들다. 나는 나 혼자 그냥 다 다녀. 이거나 같이 하자.”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못 봤나 보다. 이 사람, 무난하지 않다. 꿈을 좇자고 우리 학교에 온 것도, 외모도. 원래 남자 스포츠 머리는 극혐인데 잘 어울린다. 두상이 예쁘다. 귀도 뚫었어? 음...면도도 자주 해야겠네. 남자네, 남자야. 아 집어쳐. 우리 둘 다 친구도 없이 혼자 듣는 수업이었다. 그래, 그래서겠지.


“여기 내 번호, 이번 주 토요일 11시에 매표소 앞에서 봐요.”


‘우주와 혼돈’이란 주제로 한 설치미술작품이 주를 이뤘다. 우주를 연출한다고 어두운 조명까지 쏜 건 좋았는데 작품이라고 볼 게 마구잡이로 쌓아놓은 의자때기, 철때기, 상자때기밖에 없다. 조명을 보라는 건가? 잡동사니들을 비추는 파랑,초록색 조명에 오히려 감탄을 할 정도다.


“학교에서 뿔테 쓴 것만 보다가 안경 벗은 거 보니까 보기 좋네.”

“오빠도 츄리닝 멋있네요.”

“아 그럼 뭘 입어. 근데 이게 예술이냐? 나는 모르겠다... 우리 작품 감상은 월요일까지 써서 서로 보내주자고. 말 놔.”

그가 말했다.

“나도 영 별로야. 그래 편하게 하자.”

“근데 너 카톡 사진 뭐야?”

“sns도 하지만 카톡에도 사진 열심히 올려야지. 우리같은 애들은 자기PR 열심히 해야 하잖아. 누가 내 작품을 어떻게 볼 줄 알고.”

그는 시각디자인과, 나는 사진과. 내 카톡 프로필은 내 사진으로 도배돼있다.


“너가 찍었어? 자화상이야?”

내 이름 세은이인거 잘만 알더만 이름을 안 부르네...


“어, 나를 가장 잘 찍는 건 나야. 이걸로 계속 작품 활동 할 거야. 자화상으로 밀고 있어. 나보다 좋은 모델은 본 적이 없어. 반응도 나쁘지 않고.”


“장난 아니더라. 볼 때마다 자극돼.”

면전에서 내 사진에 자극받는다는 남자는 이 새끼가 처음이었다. 나는 왜 특이성에 미치지? 좋아. 근데... 자극되는데 어쩌라고? 그 다음은 뭐야?


“언제 또 봤대?”

“우리 번호 교환 한 날부터.”

“팬이냐? 영광인 줄 알아라. 내 사진 좋다는 애랑 교수가 한 둘 인줄 알아? 오빠, 야 백주, 여기 적당히 시커멓고 좋다. 여기 잠깐 인간 삼각대처럼 내 카메라 좀 잡고 있어봐.”

“이렇게 찍었구나. 사진보다 실제가 더 야해. ‘우주와 혼돈’은 너다 너야. 원래 깜깜해야 하는데 여기 너가 들어오니까 혼란스러워.”


전시를 나오니 정오였다. 점심시간.


“거기 있다 나오니 눈이 다 침침하네. 전시 진짜 돈 아깝다. 성욱이가 니 소식 묻더라. 혹시 학교에서 본 적 있냐고.”

“뭐라고 했어?”

“귀찮잖아. 그냥 본 적 없다고 했어.”

“어...잘했어.”

“이제 뭐 할 거야?”

“집에 가야지.”

“그래.”


그래애? 끝? 뒤도 안 돌아보고 헤어졌다. 혼자 맛집 검색을 해 분노의 점심을 씹어 먹었다. 보리밥 밥알이 뭣같이 안 씹히네.


며칠 뒤 백주가 내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충무로.”

“뭐하러?”

“필름 사러 왔다.”

“나 근천데 잠깐 볼래?”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 나 지금 꼴이 말이 아니야.”

“뭐 어때.”

“좀 심각해. 다음에 미리 좀 말해.”


백주가 시간을 두고 정상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간간히 톡을 날렸다. 보기 좋다, 예쁘다. 대화에 살아있는 나는 없고 내 사진 얘기만 했다. 예술을 한다는 애가 작품평을 하려면 주제의식이라도 좀 끼워넣지 지가 얼마나 꼴리는지에 대해서만. 진짜 그만 좀 봐야겠다는 등 이상한 말만 계속 했다. 여기 왜 십자가가 있다던가, 이 그림자 쪽에 사람들은 왜 있는지 그런 질문은? 아 예의상이라도, 쌍놈아. 밑도 끝도 없기는.


근데도 백주와 연을 이었던 건 나도 그쪽으로 미친 과였기 때문이다. 백주는 매주 일요일 아침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조기축구를 했다. 교내 까페테리아에서 훤히 보이는 곳이다. 이 시간대에는 손님이 나 말곤 없다. 5천 원짜리 싸구려 망원경까지 사서 그를 쳐다봤다. 아무리 동네축구라지만 지가 수비도 하고 공격도 하고 다 한다. 미식축구인지 축구인지 모를 정도로 다 깨부수며 그라운드를 누빈다. 체력도 좋아. 반바지 밑으로 보이는 근육이 축구공처럼 튀어나와 내 망원경 알을 깨부술 것만 같다. 머리도 좋아, 말근육이야, 섹시해. 미쳤다. 미쳤어.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지하철을 타려고 학교 정문 쪽으로 걸어 내려가고 있는데 누가 빵빵 거렸다. 백주였다.


“태워줘?”


냉큼 탔다. 말은 떠벌떠벌 잘 한다. 날씨 나부랭이보다는 중요하지만 우리의 관계성은 동 떨어진 이야기라서 문제지. 어떤 신호를 주길 바랬다. 어깨나 손, 얼굴, 다리에 손이 간다던지, 요새 통 안 보여서 보고 싶었다는 감정 표현 같은. 남녀라는 긴장감은 있는데 대화는 친구와의 그것같은, 속이 참 울렁거리는 20분이 날아갔다. 속도라도 줄여서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나, 좀 돌아가려나, 커피라도 테이크아웃을 하려나... 나의 이런저런 기대를 백주는 운동장 잔디마냥 짓눌러 버리며 택시 기사 뺨치게 목적지에 골인시켰다.


“집이 여기야?”

“어.”

“... 잘 가.”


눈빛은 아련한데 더 이상의 말이 없었다. 여기서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다면 내가 먼저 신호를 준 셈이 된다. 전남친의 베프에게 내가 신호를? 날 밥도 안 먹이고 보낸 너한테? 멈칫하면 내 마음을 읽힐 것 같아. 1.5초 안에 모든 생각을 끝냈다. 안 돼. 그건 아니야. 차 문을 세차게 닫으며 나갔다.


그날 이후로 백주는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를 다시 본 건 한 달 후 학교 앞 술집에서. 이미 거나하게 걸치고 나온 듯 했다. 백주는 날 보더니 함께 온 친구보고 먼저 집에 들어가라하고선 내 손을 골목으로 잡아 끌었다. 제발 보고 싶었다고 말해줘. 아니면 네 방식대로 야한 꿈이라도 꿨다고 하던가. 이제 네 감정 표현을 좀 해 봐.

“송세은, 너가 그렇게 다 한다며? 안 해주는 게 없다매. 아 X발, 내 앞에서는 존나 도도하게 굴더니.”


불알을 차버리려다가 집에 돈이 없어 참았다. 날 잡았던 손을 주먹으로 내리치고선 인파 속으로 나갔다. 백주 이 시방새. 이름에 술 주자가 들어갔나. 그래서 인성이고 술버릇이고 다 개같나.


우리 성욱이, 구남친 개성욱이가 우리 성관계를 술안주 삼았군. 글렀다. 무난함을 뛰어 넘은 알파남과 사귀겠다는 내 학창시절 마지막 꿈이 깨졌다. 알고 보니 머저리였던 적토마가 새벽녘 길거리 피자 부침은 비비지도 못할 토악질을 하며 내 마굿간에서 뛰쳐나갔다.


제목: 남친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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