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룽거리는 빗물 사이로 이런저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선다. 그 생각 언저리를 맴돌다 보니 문득 쓸쓸해진다. 늘 마음 내려놓을 데 없이 안으로 쌓기만 하고 살아온 세월의 더께가 이제는 좀 무겁게 느껴진다. 나도 이럴 땐 따스한 위로가 필요하다. 갑자기 마음이 허해졌나, 입이 심심해졌나?
기름에 바삭하게 구워지며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빈대떡 생각이 난다. 오늘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녹두를 꺼냈다. 따뜻한 물을 부어 속성으로 불린 다음 믹서기에 갈았다. 녹두 간 것에 급한 대로 배추 나박김치 담아 놓은 것을 꺼냈다. 한 번 더 썰어가지고 큰 그릇에 담았다. 냉장고에 있는 파, 버섯 꺼내고 양파도 가져와서 씻어 가지고 썰어 넣었다. 돼지고기 넣으면 더 맛있겠지만, 나는 황태채를 물에 적셨다가 잘라 넣었다. 껍질도 있기에 좀 불려 넣었다. 녹두 빈대떡 만들 때 쌀가루도 조금 넣어야 반죽이 잘 어우러진다. 계란도 하나 깨 넣었다. 소금 한 꼬집도 넣어 준다. 여기에 팁이 있다. 참기름 한 숟갈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 준 다음에 물을 조금씩 부어 되직하게 반죽한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궈지면 작은 국자로 하나씩 떠 넣고 부친다. 비 오는 날에는 그 고소한 냄새가 더욱 진하게 퍼진다. 비가 내리는 소리와 함께 잘 어우러진 반죽이 뜨거운 팬 위에서 빈대떡으로 구워지는 모양과, 지글거리는 소리는 마치 한 편의 시가 익어가는 것 같다. 그 속에 잘난 것 없고 내보일 것 없는 서민들의 애환도 펴 오른다.
비가 내리는 날, 사람들은 집 안에 갇혀 불안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그럴 때 빈대떡이 주는 따뜻함은 마치 작은 위안과도 같다. 바삭한 겉과 부드러운 속은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 주고, 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또 비가 내리는 날 사람들이 빈대떡을 부쳐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여러 가지 재료들이 어우러져 내는 맛과 고소함, 부드러우면서도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 이러한 것이 그 생각만으로도 따뜻한 위안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빈대떡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정이 어린 추억도 소환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