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박김치와 쌀라면과의 조화
2월인데 달라스 날씨는 섭씨 25도나 된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기온 차가 심하다. 봄이 가까이 오는 것 같아 바깥에 나가 마른 나뭇가지도 자르고 바닥에 남아있던 낙엽도 긁어모았더니 땀이 많이 났다. 시원한 게 먹고 싶어졌다.
시원하게 먹을 거라면 냉면이 생각나지만 집에 냉면은 없다. 뒤져보니 쌀라면 사다 놓은 게 있다. 한국 라면 봉지 안엔 수프가 들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산 타일랜드 산 유기농 현미 쌀국수 봉지엔 수프가 들어 있지 않았다. 라면은 사실 수프 맛인데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일단 쌀라면을 끓였다. 뚜껑을 열어 놓고 끓이다가 자꾸 젓가락으로 몇 올 건져 올려 보게 된다. 속히 익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 거다. 시간이 돼야 익는 건데 괜히 조급하게 군 것이다. 드디어 면이 약간 말갛게 변해 가는 것 같아 불을 끄고 찬물에 헹궈서 체에 밭쳐 물기를 뺐다.
국물을 뭘로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냉면 김치말이가 생각났다. 얼른 냉장고에서 지난주에 담은 나박김치를 꺼냈다. 적양배추 몇 잎 넣고 배추와 양배추랑 섞어서 담아 놓았던 나박김치가 알맞게 익었다. 다행이다. 쌀라면 먼저 대접에 담았다. 그 위로 나박김치를 부어 주었다. 분홍빛으로 물든 김치 국물이 곱다. 그 위에 삶은 계란 반 잘라서 얹어 주니 비주얼이 끝내 준다.
여기 얹은 계란은 유기농 청란이다. 운 좋게도 가까운 식료품 점에서 풀어 놓고 키운 유기농 청란을 발견하였다. 좋다는 얘긴 많이 들었기에 좀 비싸긴 하지만 사 왔던 것이다. 청란의 영양가가 얼마나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약간 파르스름한 색을 띤 청란의 작고 갸름한 모양에도 호감이 가서 사게 되었다.
나박김치와 쌀라면이 만난 맛은 어떨까 궁금해하면서 블루베리랑 샐러드 한 접시 같이 차렸다. 블루베리 먼저 먹고 샐러드를 먹었다. 로메인 상추 채 썰고 생고구마 채 썬 것에 올리브유와 레몬즙 뿌리고 코코넛 아미노스로 간 맞춘 샐러드가 입맛을 돋운다. 드디어 나박김치와 쌀라면의 생소한 조합을 맛볼 차례다. 국물 먼저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었다. 새콤하게 잘 익은 핑크빛 나박김치 맛이 환상적이다. 쌀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오돌오돌하게 씹히는 식감에 국물맛과 잘 어우러져 입안을 감싼다. 내 입맛엔 아주 좋다. 여름에 얼음 넣고 먹으면 냉면에 버금가는 이런 별미가 없을 것 같다. 단 것을 즐긴다면 매실청 헌 숟가락 넣어 주어도 좋겠다. 난 나박김치 맛 만으로도 만족스럽게 먹었다. 나박김치를 담글 때 홍시 하나를 넣었더니 다른 단맛은 필요가 없다.
요리를 할 때 가끔은 생소한 것들의 만남을 시도해 본다. 얼핏 어울리기 힘든 것들이 만나 특별한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음을 볼 때 요리도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또한 창작의 묘미라고 한다면 생떼 쓰는 걸까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