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몸이 갑자기 안좋아졌다. 2014년 한러 무비자 협정 체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여행객들을 안내하느라 무리했는지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이후 가이드 일을 멈추고 집에서 요양 아닌 요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운동과 식단 조절로 체중을 줄이는 삶이 몇 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나의 조깅 코스는 집에서부터 성니콜라이 성당까지였다. 이곳을 매일 같이 뛰다 보니 같은 시간대에 산책하는 할머니들과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또한 그 전에는 무관심하게 지나치던 주변 풍경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니콜라이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트램이 운행한다. 조깅 코스인 사도바야 거리에는 3번 트램이 다닌다. 그런데 운동하는 몇 달 동안 도로와 전차 길을 수리하더니, 어느 날 부터인가 전차의 운행 속도가 빨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번 트램을 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운행 구간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조사해 보니 이 전차는 투르게네프 광장, 성니콜라이 성당, 센나야 광장, 넵스키 대로를 건너, 마르스 광장, 네바강을 건너, 표트르 파벨 요새, 오로라 순양함을 거쳐 마지막으로 핀란드역을 기점으로 순환하는 코스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전차 탑승 여행으로는 황금 코스였던 것이다. 이 중에서 센나야 광장은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무대이고, 핀란드역은 레닌이 봉인열차를 타고 도착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창한 장소임이 떠올랐다. 아, 바로 이거다!
3번 트램이 다니는 사도바야 거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설 죄와 벌의 무대이기 때문에, 그 무대를 답사하는 여행 코스가 오래전부터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한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전에 레닌그라드로 불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간혹 공산혁명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도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는 보편적인 관심을 끌 수 없기에 대중적인 투어로 만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더욱이 두 투어를 하나로 엮는다는 것은 도무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그 전까지 한번도 두 주제를 연결한 상품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없었지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번 트램이 문학과 혁명 두 지점을 연결해 주기 때문이었다.
3번 트램
그래서 회사 팀원들과 연구 끝에 나온 이름이 트로이카 문학과 혁명 투어이다. 트로이카는 러시아어로 3인데, 3번 트램을 의미한다. 어울릴 수 없는 두 투어는 이렇게 트로이카로 묶였다. 그리고 어떤 페친이 두 투어를 하나로 묶은 이유에 대한 좋은 해석을 내려 주었다.
"도스토옙스키와 레닌은 살던 시기도 다르고 사상도 다르지만, 둘 다 러시아의 구원에 대해서 고민했다는 점에서는 같죠. 도스토옙스키는 기독교를 통해서, 레닌은 공산주의를 통해서 말이죠. 이 지점에서 서로 다른 두 테마를 하나로 엮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핀란드역의 레닌 동상
꿈보다 해몽이랄까? 단지 3번 트램으로 두 지역을 묶으려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페친은 사상적 의미까지 부여해 주었던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고, 러시아에서도 없었던 투어는 이렇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투어가 가을부터 구상되었기에 자료 수집과 답사를 거쳐서 1월에 테스트 투어를 실시하게 되었다. 영하 17도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20명에 가까운 교민, 학생들이 투어에 참가해 주었다. 투어의 열기는 네바강의 언 강물을 녹일 만큼 뜨거웠고, 이런 투어는 반드시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렇게 세상에 없던 투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인생 새옹지마라고, 몸이 않좋아 쉬었던 시간들이 새로운 창작물 탄생의 마중물이 될 줄이야! 그러기에 트로이카 문학과 혁명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투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