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전쟁갤러리
엄청나게 많은 초상화들을 보고 계시죠. 이렇게 많은 초상화를 그리다 보면 한두개 쯤은 대충 그린 것이 있을 법도 한데, 이 그림들은 하나같이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네요. 조지 도우의 작품입니다. 조지 도우의 지도 하에 알렉산드르 폴랴코프(Alexander Polyakov), 빌헬름 골리케(Wilhelm Golike)의 협동으로 그렸습니다. 총 332점의 초상화가 5열로 배치되어 있고요. 중간에 비어 있는 녹색 칸들도 있어요. 그런데 잘 보면 액자틀 밑에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빈칸으로 놔 두었지만, 기념은 하고 있는 것이죠. 이들은 대부분 러시아의 전쟁 영웅들이지만,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했던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황제들과 장군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방은 1812년 전쟁 갤러리로 불립니다. 러시아에서는 나폴레옹과 싸워서 이긴 이 전쟁을 조국수호전쟁이라고 부르죠. 나폴레옹은 이 전쟁 초반에 전격전을 사용하여 크레믈린을 쉽게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항복하지 않고 버텼죠. 러시아가 나폴레옹을 물리칠 때, 2명의 장군이 있었다는 한국식 유머가 있습니다. 1명은 쿠투조프 장군, 다른 1명은 동장군입니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용하여, 러시아는 나폴레옹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죠.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살아났기 때문에, 러시아는 이 전쟁을 2차 세계대전 다음으로 크게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 갤러리는 1826년 카를로 로시의 설계로 세워집니다. 나폴레옹을 물리친 러시아의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갤러리는 벽의 장변에 한쌍의 기둥들을 2개씩 배치하여 세부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중간 부분은 성게오르기방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이루고 있고요. 고전적인 무늬가 그려진 궁륭에 채광창이 설치되어 조명 역할을 합니다. 벽에 걸린 대형 초상화로 4개의 전신 초상화와 3개의 기마상이 있군요. 전신 초상화는 미하일 쿠투조프 장군( M. Kutuzov), 미하일 바클레이 드 톨리(M. Barclay de Tolly) 장군,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Grand Prince Konstantin Pavlovich), 영국의 웰링턴 경입니다. 웰링턴은 나폴레옹과의 마지막 싸움인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하여 나폴레옹을 체포하는데 성공하는 인물이죠. 웰링턴은 나폴레옹 전쟁 승리 후에 러시아 군대의 사령관으로 승격됩니다. 쿠투조프 장군은 나폴레옹 전쟁을 승리로 이끈 러시아의 장군으로서, 러시아는 그의 유해를 카잔 성당에 안치하는 등 특별하게 기리고 있죠.
3개의 기마상은 나폴레옹 전쟁을 승리로 이끈 3나라의 황제들입니다. 그 중에서 벽 끝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당당히 서있는 기마상을 볼까요? 이 방에서 저는 손님들에게 벽 끝에 있는 기마상이 누구냐고 묻곤 합니다. 많은 분들이 나폴레옹이라고 대답하죠. 우리는 다비드의 그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에 익숙한데요, 기마상은 그것과 매우 비슷한 자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폴레옹을 이긴 것을 기념하는 갤러리에 나폴레옹을 그릴 리가 없죠? 나폴레옹과 싸워 이긴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기마상입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 기마상과 프로이센의 프레데릭 빌헬름 3세 기마상은 프란츠 크루거가 그렸고,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 세 기마상은 피터 크라프트가 그렸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유럽에서 위상이 드높아 집니다. 1814년 알렉산드르 1세를 따라 파리에 입성한 러시아의 젊은 귀족들은 위대한 러시아를 생각하며 가슴 벅차 올랐죠. 하지만, 대륙 혁명의 심장부에서 이들은 러시아의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러시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민의 정치참여라는 엄청난 신분제도의 변화를 목도하며, 러시아 전제주의 체제의 몰락을 예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를 너무 사랑했던 젊은 귀족들은 조국의 개혁이라는 큰 이상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을 1812년의 아이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결국 1825년에 데카브리스트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전제주의 정부는 1812년 전쟁의 승리가 1825년 혁명으로 이어지게 될지 전혀 예상치 못했겠죠. 그러나 그 혁명은 실패합니다. 그 다음 해인 1826년 오히려 니콜라이 1세는 나폴레옹 전쟁 갤러리를 대대적으로 조성함으로써, 러시아 전제주의를 옹호하며 혁명의 분위기를 억누르는데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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