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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Mar 29. 2024

[職四] 거꾸로 처박히는 회식

직사 - 봄 (영한 직원들과의 핫한 회식)

Young 한 팀원들과 Hot한 회식을 


  저희 팀에는 저를 포함해서 총 8명의 직원이 근무 중입니다. 그중 20대가 4명으로 가장 많고, 30대 2명, 40대 2명으로 상대적으로 영(Young)한 조직에 속합니다. 제가 처음 회사에 와서 접했던 회식 장면은 넥타이를 셔츠 주머니나 셔츠 단추 사이로 밀어 넣고 연기 자욱한 삼겹살집에 앉아 부어라 마셔라 하는 그야말로 '같이 모여서 마시는 자리'였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팀장님께 가서 술잔을 드리고 받아 오는, 지금은 거의 잊혀진 옛 놀이인 '잔 돌리기'가 성행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죠. 대부분 많이 마셨습니다. 3차 정도까지는 기본이었고 선배들이 흥이라도 올랐다 치면 노래방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곤 했었구요. 그러다 보니 기억에 남는 회식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술을 과하게 마신 선배들끼리 멱살 잡고 싸웠던 장면이나, 술상에 엎어져 온 얼굴로 쌈장을 드시던 동기의 모습들만 뜨문뜨문 기억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팀장이 되면 함께 추억할 수 있는 회식을 하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서로 기억하며 웃을 수 있는, 언제 떠올려도 미소가 살포시 지어지는 그런 모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진 재량하에서 회식의 모습을 아주 조금 바꿔 봤습니다. 




1. 회식 장소 선정

  우선 회식 장소는 직원들이 결정합니다. 여기서 장소는 술집이나 음식점이 아닙니다.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8명이 모두 장소를 제안하고 다중투표를 통해 회식 장소를 선정합니다. 외부 교육을 통해 배운 의사결정 기술을 활용하여 선정하기에 더 민주적입니다. 


  우리 파릇파릇한 친구들이 올해 1분기 회식 장소 투표를 완료했습니다. 장소는 '롯데월드'가 선정이 되었네요. 최근 모 회사가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전세를 냈다고 하는 그 장소입니다. 저는 일개 팀장이라 전세 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입장권 정도는 회사의 재원으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늘 선배들에게서 듣던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다'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던 터라 편한 맘으로 장소를 픽하고 준비를 합니다. 저희 팀 재간둥이 혁대리가 미리미리 할인받는 방법과 동선 식당까지 이미 싹 다 세팅해 두었습니다. 역시 팀에는 오락부장 역할을 할 친구가 꼭 필요합니다. 


2. 회식 주기

  팀 전체 회식은 분기에 한 번만 합니다. 매달 나눠서 자원을 찔끔찔끔 쓰기보다 한 번에 제대로 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니 예산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회식보다 비용면에서도 절감이 됩니다. 예전에는 월마감 회식이 거의 디폴트 값이었지만 다들 개인 일정들이 많은 요즘 분들인지라 나름 신경 써서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서커스단 같은 회식을 합니다. 


3. 회식 멤버

  당연히 자율 참석입니다. 예약을 위해 미리 인원을 조사하기는 하지만 철저히 자율입니다. 이번 회식에도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아쉽게 참여하지 못한 팀원이 있었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시대의 부름에 맞춰 개인 생활을 최대한 보장해 보려 노력합니다. 가끔은 주변 팀의 게스트를 모집해서 인원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한두 명 정도의 외부인을 초청해서 함께 교류하고 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드디어 그날입니다. 야간개장을 가야 하니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만 팀원들끼리 마주 보면 그저 웃습니다. 팀원끼리 마주 보며 자주 웃으면 괜찮은 조직이라고 하더군요. 팀장으로서 뿌듯합니다. 점심시간에도 오늘 갈 놀이공원에 대한 얘기들로 꽃을 피웁니다. 다들 미소를 머금고 말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택시 2대에 나눠 타고 약속된 땅으로 향했습니다.


  평일 저녁인데도 데이트하러 나온 앳된 얼굴의 친구들과 외국인들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근 20년 만에 간 그곳의 첫 느낌은 '별로 넓지는 않구나'였습니다. 그렇게 커 보였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성인이 되어 다시 가봤을 때, 앙증맞기 그지없는 그런 느낌처럼 아담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24년도 1분기 회식은 시작되었습니다. 


  바이킹을 시작으로, 아틀란티스, 자이로 스윙, 자이로 드롭을 순서대로 탔습니다. 바이킹부터 사실 속이 좋지 않고 다리도 후들거리긴 했지만 이 악물과 팀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거꾸로 처박히는 회식이 성대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아틀란티스의 경우 거의 40분 가까이 줄을 서야 했습니다. 저희 팀의 건정한 성인 남성 두 명은 도저히 못 타겠다며 다른 곳으로 가긴 했습니다만 6명이 함께 기다리며 깔깔대고 재잘대며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예쁜 프사를 찍어야 남자 친구가 생긴다며 해맑은 표정을 짓던 막내둥이부터 늘 근엄한 표정을 짓던 친구가 츄러스 타령을 하며 조잘거리는 밝은 모습들까지 누구 하나 불평불만 없는 그 표정들에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탑승한 아틀란티스. 맞습니다. 이 기구는 엄청난 스피드와 낙차 큰 강하로 유명한 최고의 인기 코스였습니다. 기다린 40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즐겁게 소리치며 팀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건장한 사내 둘도 합류하여 범퍼카에 올랐습니다. 연령, 직위, 성별 다 잊고 아이처럼 깔깔대며 서로 부딪혀 봅니다. 맘껏 사고를 쳐도 처벌받지 않는 좁디좁은 도로에서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에너지만큼 일탈을 했습니다. 


  석촌호수변을 걸어 치킨을 뜯으며 다 같이 하루의 추억을 곰곰 뜯어봅니다. 사진들을 공유하고,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즐거운 시간을 가슴속 깊이 간직해 봅니다. 


  이런 형태의 회식이 벌써 세 번째네요. 처음에는 배드민턴을 쳤고, 두 번째는 볼링을 쳤네요. 이번에는 놀이공원이구요. 차기 회식 장소는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도심 캠핑으로. 멀지 않은 서울 근교로 떠나 숙박은 개인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하고, 맑은 공기에 목살 한 점 하고 오자고 하네요. 3개월이 생각보다 빠릅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1분기 회식 식사 자리에서 벌써 캠핑 준비를 끝냅니다. 고기 장인이라 지칭하는 혁대리와 장보기 달인이라 나서는 막내둥이, 그리고 본인은 목살을 가장 맛있게 먹을 줄 안다며 잘 먹겠다며 너스레를 떠는 친구까지 우리의 마음은 이미 캠핑장에 와 있네요. 


루스벨트의 말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지금 여기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모두들 지금 가진 재량 안에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즐거운 일을 찾아보시는 그런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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