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사계 - 봄( 나 자신에 대한 공부가 내 삶의 기본이다.)
직장인에게는 매일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의 종류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정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습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밥은 먹고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노력한다는 것은 회사의 필수 교육 등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배움을 위해 별도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젖은 낙엽처럼 철썩 달라붙어 있어서 어지간한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20년 정도 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과거 베이비 부머 분들이 직장생활을 할 때는 30년도 가능했지만 자꾸만 사람들이 급해집니다. 저도 이미 20년이 거의 찼기 때문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언제고 느닷없는 방식으로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준비를 합니다. 회사를 떠날 준비를 말이죠.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한 다고 해서 이직을 준비하거나 하는 류의 일들을 하는 건 아닙니다. 현재 일도 물론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좀 더 벼릴 뿐입니다. 언제고 칼을 뽑을 시기가 왔을 때 '스르렁' 하는 맑은 소리를 내며 칼집에서 빠져나온 칼이 무서운 속도로 무라도 벨 수 있도록 칼을 열심히 갈아 두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자기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생각만 해도 몸이 짜릿한 것들이 있는지 곰곰 추려 봅니다.
그리고는 당장 떠나지 못하더라도 그 길로 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봅니다. 기회를 잡는다는 건 결국 라디오 방송을 수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열심히 이리저리 다이얼을 돌려봐야 싸구려 해적방송이라도 수신할 수 있습니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제 맘은, 제 마음속 깊은 곳의 근원에 대해서는 본인만큼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뇌에 분석 가능한 장치를 심어서 읽어낼 수는 있겠지만, 무시로 변하는 제 맘을 그런 장치로 정확하게 잡아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 탐구가 필요합니다. 나의 현 내밀한 곳을 면밀히 살펴봐야 됩니다. 내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떤 모습인지, 나는 언제 행복한지와 같은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나'와 관련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음으로써 '나'라는 사람을 좀 더 객관적으로,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요즘 잘 나가는 잘생긴 배우보다는 당연히 객관적인 외모는 떨어집니다만, 그 친구보다 품의서는 잘 쓸 자신이 있습니다. 유명 테니스 선수보다 테니스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오늘 당장 술자리는 더 빨리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과 부족한 영역에 대하여 끊임없이 리뷰합니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만나는 접점에 꿈의 직업이 있다는 신념으로 5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방황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조급해지고 때로는 현실에 치이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고이 접어둔 제 꿈이 있기에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매출 부진사유와 온갖 손익개선 방안에 허덕이고 있어도 점심시간의 산책길에, 출퇴근 길의 지하철 안에서 씨익 웃을 수 있는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늘 기분 좋은 일입니다. 아직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고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아주 저 멀리 어렴풋이 나마 나를 기다리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발걸음이 그리 고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아깝습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거든요. 자는 시간 빼고 어쩌고 하면 정말 손바닥 만한 시간들만 남습니다.
그러니 늘 자신을 포함한 여러 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배움은 꼭 어떤 기술이나 특정분야에 관한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읽고 나 자신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는 시간 자체가 배움이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시각이나 가치관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도 배움이자 공부입니다.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곧 가을이 올 테지요.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삶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봄에 씨 뿌리고 뜨거운 여름을 견뎌내지 못하면 과실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 오늘 하루 마음 한켠에 씨를 뿌려 보는 건 어떨까요. 모든 씨가 다 자라나 열매를 맺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씨를 뿌려 놓고 기다리는 것과 씨조차 뿌리지 않는 것엔 분명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