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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Jun 21. 2024

[職四] 일탈의 소중함

직장인의 사계 - [삶을 조금만 비틀어 보기]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날들 괜찮으세요? 아주 같지는 않겠지만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남는 하루는 정말 비스무리할 겁니다. 이런 단순한 일상에 작은 돌멩이 하나 던져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일반적인 직장인의 하루입니다. 

    눈 뜨면 출근 준비하고 출근길을 거쳐 회사에 옵니다. 회사에 와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됩니다. 보통은 1시간 정도가 점심시간이니 늘 허망하게 사라져 갑니다. 밥 먹고 차 한잔 하기에도 빠듯합니다. 소중한 점심시간은 그렇게 급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이제 나른한 오후입니다. 배도 부르겠다 날도 따뜻하겠다 졸음과의 사투가 시작됩니다. 벌써 몸은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상태인데 아직도 꽤나 긴 시간이 남았습니다. 어렵사리 오후 시간을 버텨내면 드디어 퇴근 시간입니다. 정시퇴근해도 집에 가면 7시 전후가 되고 저녁 먹고 나면 이제 더 이상 뭔가를 생각하거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티비나 휴대폰에 시선을 주고는 맥주 한 잔에 영혼을 달래 봅니다. 어느새 잠들 시간입니다. 한없이 아쉽지만 또 자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삶을 구경하는 시간을 잠시 갖다가 아쉬운 마음에 잠자리에 듭니다.


    이제 잠시 일상에서 작은 일탈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일탈을 시작합니다.

 

    제 첫 일탈은 점심 거르기입니다. 처음에 거를 때는 정말 배가 고파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온갖 맛있는 것들이 생각이 나고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모든 식당에 눈길이 갔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굶어 본 제 몸은 이제 기억합니다. 좀만 기다리면 맛있는 음식이 오니 호들갑 떨지 말라고 말이죠. 밥은 건너뛴 점심시간에 내내 걷기도 하고, 바람 좋은 벤치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람만 맞을 때도 있습니다. 근처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이 책 저 책 지분거리기도 하며 좀 색다른 마음의 식사를 하곤 합니다. 


    퇴근길에 마냥 걷습니다. 아마도 더 멀리 훌쩍 떠나버리고 싶지만 현실이라는 핑계로 용기를 내지 못하는 제 초라한 모습에 아쉬워 마냥 걷는 것 같습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여를 정처 없이 걷다 어느 순간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근처 지하철역을 찾아 나섭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그냥 그러려니 바라만 봅니다. 어떤 가치판단은 하지 않기로 하고 무작정 걸어 봅니다. 


    출근길에 계단을 오르며 또 일탈을 시도합니다. 사무실이 위치한 13층까지 대략 5분 정도 오르던 길을 10분 정도로 넉넉하게 잡고는 눈을 감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난간을 잡다가, 계단이 몇 개인지 파악하고 나면 아무것도 잡지 않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처음엔 두렵기도 했습니다. 넘어질 뻔하기도 했고요. 사람은 참말로 적응에 빠른 동물인 것 같습니다. 어느샌가 조금 편안한 맘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또 눈을 감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계단에서 울리던 바람의 속삭임, 제 숨소리와 심장소리, 발바닥의 감각까지 그동안 눈을 뜨고 살면서 인지하지 못했던 여러 감각들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출근 전에 눈을 감고 샤워를 합니다. 어색합니다. 마치 타인의 몸을 만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듭니다. 처음 제 손길을 느끼는 것처럼 예민한 감각이 살아나 정말 구석구석 씻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개운해집니다. 눈을 뜨면 보이지 않던, 제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욕심이나 고집들이 씻겨 나가는 듯한 느낌으로 살포시 제 살의 한 꺼풀을 벗겨 냅니다. 샤워기의 물이 몸에 닿을 때 비로소 왜 '샤워'인지 알게 됩니다. 정말 소나기가 내리듯 타닥타닥 빗소리도 나고 몸에서 흐르는 빗물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민망하지만 발가벗고 일탈을 즐겨 봅니다. 




    매일매일이 모두 같다면 과연 어떨까요? 그럼에도 의미야 찾을 수 있겠지만 뭔가 근사한 일은 삶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삶을 다소 비틀어 보세요. 약간의 꼬아보는 행위만으로도 분명 삶이 꼬여버리는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꼬이면 풀어야 하냐구요? 아닙니다.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는 게 우리네 직장인의 삶인데 굳이 풀고 자시고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네 삶도 꼭 무언가를 풀어나가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소 찌그러져도, 꼬여 있어도 그게 제 삶이니, 이 또한 제가 받아들여야 할 제 몫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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