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등대지기 Jun 18. 2024

[職四] 작전명 : 위대한 멈춤

직장인의 사계 - 가을 (12일간의 명상을 통한 비워내기 프로젝트)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상코스 신청일이 왔습니다. 정성을 다해 지원서를 작성하고 3일을 기다렸더니 참가 확정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을 때 하셨다는 '위빳사나'명상 코스에 신청을 했습니다.   

    지인의 추천으로 반야심경을 읽다가 문득 부처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금강경 및 그분의 생애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게 되었습니다. 헤세의 싯다르타도 다시 읽었구요. 처음 읽었을 때는 이런 감동이 없었는데 어떤 뜨거운 것이 몸속에서 솟아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처라는 분에 대한 삶과 깨달음의 스토리를 알고 나니 더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이 깨달으셨다는 명상법을 배우기 위해 알아보던 중 '담마 코리아'라는 명상센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늘 삶은 제게 필요한 것들을 적절한 시기에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저는 간절한 마음만 품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그렇게 저는 명상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혼자서 책 보고 영상 보며 해봤는데 뭔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늘 의구심이 일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간절히 원하기에 꼭 한 번은 제대로 배워서 제 남은 삶에 작은 쉼표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작년 연말에도 신청했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큰 아이 졸업식과 겹쳐 눈물을 머금고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취소메일을 보내면서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작년 한 해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경영개선이란 미명하에 여려 명의 밥그릇을 찰 수밖에 없었고 물리적인 일의 양도 많아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었습니다. 우울증이 온 시기도 있어 자주 눈물을 흘리기도 했구요. 50이 가까워진 나이이지만 저도 사람이기에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연말에 잡아 둔 비움의 시간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는데, 여의치 않아 참석을 못하다 보니 가슴속에 응어리가 뭉친 듯한 느낌으로 불안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붙잡고 버텨 왔습니다. 


    제가 신청한 명상 코스는 총 12일이 소요됩니다. 그런데다 메인 코스가 진행되는 10일간은 휴대폰 사용도 어렵기에 외부와 연락이 철저히 차단됩니다. 책도 없고 어떤 전자기기도 없이 그저 하루 종일 명상만 하는 코스입니다. 그러니 직장이나 가정에서 12일간의 부재를 반길 리가 없습니다. 아내도 뭔 놈의 명상을 그렇게 길게 가냐며 그냥 주말에 템플스테이나 다녀오라고 성화였습니다. 직장에서도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추석 연휴를 빼더라도 거의 5일 가까이를 비워야 하니 당연한 반응이긴 했습니다. 사이비 종교 집단 아니냐는 주변사람들의 터무니없는 비방에도 그저 '부처님의 명상법을 배우러 갑니다'라며 애써 웃어넘겼습니다. 


    남들이 뭐래도 저는 꼭 이 명상 코스를 완수하려 합니다. 20여 년 직장생활을 하며 제 마음에 묻은 분노, 상처, 슬픔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가능하면 다른 이름을 붙여 보내주려 합니다. 제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마음의 평화라는 것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을 테니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불평을 하기보다는 행동하는 걸 더 가치 있게 여기기에 움직이려 합니다. 하루 종일 짜여진 코스에서 명상을 해야 하는 힘든 여정이 되겠지만 한 번은 비워내야 하기에 떠나 보려 합니다. 


    아직 석 달 정도가 남았지만 벌써 기분이 좋습니다. 오롯이 저 자신을 바라보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위대한 멈춤의 시간이 예정되어 있으니까요. 이번 코스를 통해 가족이나 직장동료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임하고자 합니다. 저 혼자만 잘 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고 아내에게 설명합니다만, 아내분께서는 이번에는 보내 주겠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계십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내년 코스는 내년에 가서 설득하면 되니 말이지요.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데 1년 뒤의 일까지 걱정하기에는 제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너무도 소중하니까요. 


    그렇게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위대한 멈춤'의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일주일 정도의 단식으로 제 몸과 마음에 완벽한 휴식을 줄 수도 있을 것이고, 템플 스테이를 가도 되고, 혼자만의 짧은 여행을 떠나도 되니까요. 다만 그 시작인 올해는 꼭 12일간의 완벽한 비워냄을 달성해 보려 합니다. 기계도 일정시간 가동을 하면 전체를 분해해서 닦고 조입니다. 오버호울이라고 하지요. 사람에게도 이런 오버호울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또 고장 없이 달릴 수 있으니 말이지요. 꼭 저처럼 오랜 시간의 멈춤을 하실 필요는 없겠지만 잠시라도 한 켠으로 비켜서서, 조용히 쉼표를 찍는 것만으로도 비움의 효과는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職四] 배움으로써의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