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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Jul 02. 2024

[職四] 감기가 준 교훈

직장인의 사계 - 겨울(한달에 15번 술 마시면 알콜중독이지...)

    저번주부터 목이 간질간질했습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통설을 믿으며 설마 하고 넘어갔는데 코가 막히고 목이 아파지기 시작하더니 기침까지 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에 가서 약을 먹었으나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말이 되어 좀 쉬어 볼까 했는데 아내가 큰 아이를 잡아대는 통에 영 시끄러워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하라고 여러 차례 얘기해도 듣지 않아 언성이 높아지고 또 시끄러운 하루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집을 나서 근처 산에 올라 4시간여를 걸었습니다. 산을 걷다 보니 많은 분들이 맨발로 걸으시기에 저도 그렇게 해 봤습니다. 처음엔 발바닥이 아팠고, 계속 걸으니 발목 전체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땅과의 접촉이니 건강에 최고라느니를 떠나 걷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여를 무식하게 걷다 보니 그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묵직하고 차가운 상쾌한 느낌이 들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산행을 마친 다음날이 되니 올 것이 왔습니다. 감기에 된통 걸려 버렸습니다. 푹 쉬어도 모자랄 판에 무리하게 싸돌아 다녔으니 뭐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침을 삼키면 저절로 인상이 써지고 너무 아파 불편했습니다. 코도 자꾸 마르고 기침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약을 먹으면서 보니 제가 한 동안 너무 거칠게 제 자신을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근도 많았고 술자리도 많았습니다. 온갖 핑계를 찾아 술자리를 찾은 건 아닌가 반성이 됩니다. 제가 제 자신을 판단해 보건대, 알콜중독 초기 단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틀 정도가 지나면 다시금 술을 찾아 헤매는 단계 말이지요. 다행인 건 매일매일 찾아 마시지는 않는다는 거지만 이틀이 하루가 되는 건 그리 멀지 않은 날의 얘기가 될 것 같아 관리가 필요한 상황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다이어리를 보니 7월 달력에 이미 7번의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이어리의 6월 트래커를 살펴보니 15회의 술자리를 가진 걸로 나와 있네요. 이 추세 대로라면 이 번 달도 한 달의 반 정도는 젖어 있는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큰 탈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어쩐지 올해 들어 부쩍 피곤함이 심해졌었는데 간이 쉬고 싶어서 제게 메시지를 보낸 것 같습니다. 고1 때 처음 술을 접했지만, 대학생이 된 후로 정말 거의 매일 마실 정도로 마셨고, 직장인이 되어 보니 이건 뭐 산해진미 안주에 술자리도 많아 너무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술에 쩔어 오늘까지 살아왔건만 막살았다는 걸 전혀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마실 수 있는 술의 양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젊은 시절 과하게 마시면 늙어서 건강이 받쳐주지 않아, 혹은 그런 노년을 맞지 못하고 요절할 수 있어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꽤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보다 양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술을 어느 정도 마시면 계속해서 달리는 좋지 않은 습관으로 너덜너덜해져 집으로 향하는 제 자신을 보면 여전히 위험한 상황인 건 맞습니다. 


    7월엔 음주 횟수가 10회를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겠습니다. 10회라고 해도 적지 않은 양입니다. 늘상 다이어리에 기록되어 있는 제 삶의 흔적은 저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곤 합니다. 감정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잠은 잘 자고 있는지, 어떤 일들로 맘이 안 좋았는지 등 자신을 모니터링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도구가 없습니다. 불렛저널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후 돌고 돌아 현재의 다이어리로 발전해 왔습니다. 로이텀이라는, 나름 고급진, 점으로 가득 찬 라벤더 색의 노트에, 줄도 긋고 한 땀 한 땀 삶을 기록하다 보면 어느샌가 노트가 제게 알려 줍니다. '형~ 이제 좀 쉬셔야 될 것 같아요'라고 말이지요. 


    감기 걸린 김에 피부관리나 해야겠습니다. 술도 멀리하고 잠은 많이 잘 터이니 절로 피부는 좋아지겠지요. 건강은 역시 건강할 때 지켜야 되는 건가 봅니다. 올해 9월에 예약해 둔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다시금 삶의 습관을 조정해 봐야겠습니다. 감기에 걸렸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네요. 개 같이 막 살아온 날들을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줬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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