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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Oct 14. 2024

[職四] 명상을 통한 배움 - 묵언

직장인의 사계 - 봄(말을 하지 않는 삶)

    묵언(默言)의 사전적 의미는 '말을 하지 않음'입니다. 


    제가 참여한 위빳사나 명상코스의 원칙 중 하나는 코스 중 묵언입니다. 코스가 끝나기 하루 전에 묵언이 풀리기는 하지만 나머지 집중수행기간인 열흘간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참여자와 눈빛으로 소통하는 것조차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서로의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저는 난생처음으로 말 없는 열흘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묵언을 하니,


  단순해집니다. 

  말로 인한 실수가 없어집니다. 

  마음을 온전히 내면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주의 분산이 되지 않아 명료해집니다. 

  결정적으로 누구와 소통을 하지 않아도 전혀 외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제가 느꼈던 장점들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단순해집니다. 


    뭐 여러 가지 생각하고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있습니다. 하루가 지난 후부터는 당연스레 서로를 그저 그곳에 있는 사물처럼 인식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굳이 소통할 일이 없으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단순 명료해집니다. 


    말로 만들어 내는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말을 통해 수없이 많은 실수가 발생합니다. 생각 없는 말 한마디가 분란의 소지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수도 습니다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놀리는 말이 기분 나빠 친구를 살해하기도 하고 시비를 거는 말 한마디로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니 말이지요. 쓸데없이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옮김으로써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러니 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실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오로지 내면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하려 하다 보면 온갖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말할 대상을 찾아야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며,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편의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에너지를 밖으로 향하는 일들이지요. 그러니 정작 내면의 소리는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극단적인 'E'의 성향인지라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하고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어 한다면 잠시 멈춰 서서 마음을 둘러볼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외향적인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과의 균형을 맞히지 못하면 '요란한 빈 수레'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지요. 


    소통하지 않아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습니다. 


    모든 이들이 다 같이 수다를 떠는데 나만 참여하지 않았을 때의 불안감이 있잖아요. 저도 오랜 시간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집단에 참여해서 입방아를 찧어 대고는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입방아 후엔 마음 한 켠에 남는 서늘한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같이 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이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그래서 갈수록 그런 모임들에 참여하는 일을 줄여 나가고 있습니다. 가끔씩 저와 생각이 비슷한 도반들과 만나는 자리를 갖기는 하지만 순전히 사교적인 목적으로 어떤 모임에 나가거나 하는 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런 피상적인 만남들이 피곤해지더군요. 그러느니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들에서 더 위로를 받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명상을 통해 확실히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구요. 외롭다고 다른 이들을 찾아다니면 더 외로워질 뿐입니다. '늘 해답은 내 안에 있다'는 선현들의 말씀이 다시금 뼈저리게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늘 시끄럽게 살았습니다. 목소리도 크고 말도 많은 편이었습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고부터는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 집단에 속하지 못하면 도태되리라는 두려움에 그런 모임들, 특히나 불평불만 세력을 이끄는 선봉장 역할을 하곤 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명백해졌습니다. 제가 그런 잡스러운 활동들로 얻은 것은 '외로운 늑대'라는 이상하리만치 슬퍼 보이는 별명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묵언을 통해 다시금 입이 무거워야 함을 체득했습니다.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배운 게 아니라 몸소 배웠습니다. 이 배움을 제 삶에도 적용해 보려 합니다. 기존에 비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말을 줄여 나가는 방식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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