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사계 - 봄(출근시간 엘베를 기다리는 무리를 바라보며)
늑장 부리다가 평상시보다 30분여 늦게 회사에 도착했더니 완전 다른 모습니 펼쳐집니다. 7시 54분. 제가 회사 현관에 들어선 시간입니다. 저는 9시 출근이지만 일찌감치 다니는 편인지라 이런 혼란을 자주 맞지는 않습니다만 오늘은 그 혼란과 분주함을 보며 잠시 미소를 머금어 봅니다.
8시에 출근하는 회사가 있어서 그런지 다들 바쁩니다. 얼른 엘베를 타고 사무실에 가야 하건만 쉼 없이 도는 6대의 엘베로도 일시에 몰린 바쁜 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연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어느 엘베가 올 지 눈치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엘베를 기다리는 공간이 가득 찼습니다. 시커먼 그 덩어리(대한민국 직장인의 겉옷은 대부분은 검은 계열이지요)가 웅성거리며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합니다. 추운 새벽을 뚫고 직장에 나온 옹종옹종 모여 있는 그 무리들의 입김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저는 그들과 출근 길이 약간 다릅니다. 엘베 대신 계단을 오르는지라 붐빔이 없습니다. 계단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노래를 하기도 합니다. 눈을 감고 벽을 더듬으며 오르기도 하고 빠른 속도로 뛰어오르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노래를 듣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구요. 여하튼 대략 10여분의 시간을 온전히 저 자신과 함께합니다. 나름의 고요함을 품고 말이지요. Peace~
이 조그마한 다름이 제겐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하기도 하지만 때론 오롯이 자신의 선택으로 고독을 택하는 것이 나를 맑게 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다들 버스를 탈 법한 거리를 걸어 보기도 하고, 다들 '~해야 한다'는 말로 가두려 할 때도 슬며시 빠져나가 나름의 자유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제게 '똘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사전적으로는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하니 이 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겠습니까. 모두 다 똑 부러지게 생각하고 바르게만 행동한다면 세상살이가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저 같은 놈 하나 정도는 가끔 나사 풀린 사람처럼 헛소리도 하고 모자란 놈처럼 헤헤 거리기도 해야 직장생활이 덜 팍팍하지 않을까요.
13층까지 오르고 나면 여름엔 땀이 나기도 하고 요즘 같은 겨울에는 적당하게 몸을 데워줍니다. 잠시 창을 열고 맑은 공기를 사무실에 넣고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따뜻한 도라지차와 함께합니다. 은은하게 향을 풍기는 도라지가 오늘따라 퍽이나 큰 위안이 됩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지내면서 늘어진 정신을 끌어올려줍니다. 이제 예열은 완료되었으니 달릴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모두들 충만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