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사계 - 가을(이직한 동료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벌써 1년이 넘은 일입니다. 옆팀 팀장이,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자그마치 이직을 한다길래 다들 놀랬습니다. 물론 그즈음 품질 이슈다 채권 이슈다 시끄럽긴 했었지만 그래도 20년 가까이 근무한 직장을 떠나, 심지어 이직을 하는 동갑내기 팀장을 보며 맘이 영 서운했습니다. 그 옛 동료와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연봉도 20% 가까이 오르고 진급도 해서 이직을 한 데다 이미 1년이 넘게 그곳에서 지냈으니 자리를 잡았으리라 생각하고 한잔 거하게 얻어먹어야겠다 내심 기대하며 술자리에 마주 앉았습니다.
"못해먹겠어. 별 같지 않은 것들이 유세 떠는 꼴 볼라니까 눈꼴셔서 아주 그냥. 윗놈 아랫놈 가릴 거 없이 무시해 대는 통에 우울하다. 에휴."
최근에 부쩍 제게 연락을 자주 해서 어디 자리 좀 없냐던 그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 정도로 힘든 줄은 몰랐습니다. 이직 후에 휴가는 고사하고 연차도 한 번 써 본 적 없다는 얘길 들으며 10일 가까이 휴가를 다녀온 제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살이 10kg이나 빠졌다고 하니 정말 많이 힘든가 봅니다. 나름 열심히 운동을 해도 살이 계속 붙어만 가는 제 모습을 보며 세상 편하구나 싶어 작은 반성도 해 봅니다.
50 가까운 나이에 의지할 곳 없는 곳에 가서 무언가 퍼포먼스를 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제 자신에게 물어봐도 영 신통한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선후배로 엮여 있고, 같은 사업부에서 근무했던 이력으로 엮여 있고, 동호회 등 업무 외 활동으로 엮이다 보니 사실 큰 불편 없이 살아가지요. 업무에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얻고 추출할 수 있는지 알기에 큰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자는 시간을 빼고 나면 제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새삼스레 작은 공간이나마 제게 주어진 익숙한 이 자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더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있을 걸 그랬다는 그에게 곧 나아질 거라며 말뿐인 위로를 해봅니다. 제가 그 입장이라고 해도 깝깝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두렵습니다. 말뚝에 묶인 코끼리가 묶인 곳에서 풀어줘도 말뚝 근처를 못 떠나듯이 저도 이곳에 단단히 묶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늘 조직을 떠나고 싶다고 말을 하고 살았는데 이미 뼛속까지 조직원이 되어 버린 제 모습을 발견하니 사실 좀 놀랍기도 했습니다.
손을 꼭 잡아주고는 마지막 지하철을 타러 빠른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다행히 12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막차가 있어 쓸데없는 택시비를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겨봅니다. 쓸쓸해 보이던 옛 동료의 뒷모습을 보며 내 뒷모습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단 한 번도 찬찬히 바라보지 못했던 제 뒷모습을 이번 연휴를 틈타 한 번 곰곰 바라봐야겠습니다.
시간이 해결이야 해주겠지만 생채기 투성이가 될 그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니 비 오는 아침, 맘이 무겁습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좀 더 나아지리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