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라는 이름은, 윤우가 지었어.
요즘따라 어린이집을 나서면, 내 손 한쪽을 꼬-옥 잡고서 윤우가 날 데려가는 동네 한 바퀴 산책 코스가 있다.
어린이집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뒤, 다시 왼쪽, 그리고 다시 오른쪽, 그러고 나면 보이는 커다란 교차로.
대각선 두 개,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나있는 횡단보도가 모두 한 번의 초록불로 건널 수 있게 되어있는 이 교차로를 윤우가 유독 좋아한다.
언젠가부터 초록불이 되면 일제히 모두가 횡단보도를 따라 길을 건넌다는 것을 인지한 뒤, 윤우가 즐기는 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초록불만 보면 멀리서도 건너기 위해 뛰어가기 일쑤고, 길을 걷다가 마주한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을 맞이하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걸 아는 듯 멈춰 서 초록불을 기다린다.
여하튼 그런 연유로 최대한 자주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는 코스를 나름 제 스스로 만든 듯하다.
언제나 하원을 하고 나면 매일같이 내 손을 잡고는 앞장서서 늘 같은 코스로 나를 끌고 움직이는 것이다.
몇 번은 이 코스길을 함께 한 아빠가 입을 여셨다.
“야~ 이거 보니까, 윤우가 항상 가는 코스가 있네? 이거 윤우 산책길인가 보네. 허허허허 - -“
어제도 여느 때와 같이 ‘윤우 코스’로 산책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한참을 걷다가 문득 우리 모자 옆에 나란히 길을 동행하고 있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져
옆을 돌아보니, 한 아이가 우리를 따라오며 눈을 마주치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엇, 안녕!”
“안녕하세요! 동생이에요. 동생!”
“응, 맞아~ 동생!
윤우야~ 형이네~ 안녕~하고 인사해야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렇게 꼬마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아이의 어머님이 멀리서 뛰어오셨다.
“아이구구구, 죄송해요. 아이가 말이 좀 많아요. 동생이 예뻤나 봐요. 저희 아이도 같은 어린이집을 나왔거든요~!“
내가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윤우의 어린이집 가방을 보고 꽤나 반가웠나 보다. 그것이 나는 또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저는요~ 태권도를 다니고 있어요. ~~단 이었는데 지금은 ~~단이 되었어요. 그리고 또 곧 있으면요…!”
아이가 차분한데도 무언가 열띤 모습으로 나에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차근차근 다 들어주고 싶어서 귀를 최대한 쫑긋쫑긋 열었는데도 명확한 아이의 띠색깔은 듣지 못하였다.
아이의 말을 완벽하게 알아듣진 못했지만 최대한으로 호응을 해주고 싶었다.
멋지게 자랑하고 싶은 귀여운 마음에 보답을 해주고 싶었던 건데, 기특하게 윤우도 가만히 서서 형아의 소리에 귀 기울여 듣는다.
“아우~~ 뭘 별 걸 다 얘기해. 얘가 좀 tmi가 많아요. 하하”
괜스레 멋쩍게 너스레를 펼치시는 어머님의 인상이 너무도 선하고 편안했다.
“저는 이렇게 듣는 거 좋아해요!!! 즐거워요~~!!”
“오~ 그래? 멋진데!!! 우리 윤우도 커서 형아처럼 멋지게 태권도했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갑자기 어머님께서 눈이 동그래지셨다.
“어머. 아이 이름이 뭐라구요? 윤우라고 하셨어요?“
“네! 맞아요. 윤우에요.”
“어멈머머머! 웬일이야!! 우리 아들도 윤우에요!!!! 노윤우!!“
“어머! 정말이세요??!!! 저희 아이는 황!윤우에요.“
“세상에, 세상에. 너무 반가워요!!!! 둘 다 성이 흔한 성은 아니네요. 너무 반가워요. 어쩜 이런 인연이~~“
“그러게요!!! 아이가 같은 이름이라 괜히 끌렸나봐요~세상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엄마 둘이 우연히 같은 이름의 아이들이 서로를 맞대고 인사하는 바람에 깔깔깔, 즐겁고 어쩐지 풍요로운 대화가 연신 퐁당퐁당 이어졌다.
그렇게 신난 엄마 둘이 꺄르르 하며, 이 즐거운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윤우는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 윤우가 예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귀엽다, 귀엽다 한다.
곧 활기찬 인사로 서로의 아파트로 향했는데, 잠시였으나 이 즐거운 만남이 내게 또 큰 기쁨과 따뜻함을 안겨다 주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었다.
동네 놀이터에서 윤우가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도와주며 놀고 있었는데, 또래로 보이는 아이 한 명이 곧이어 합류했다.
작은 아이들은 모르는 사이에도 같은 공간에서 놀다 보면 무언의 교류들이 이루어지는데, 엄마들은 흐뭇한 미소들을 감추지 못하고 인사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각자 아이들의 나이를 묻고 여러 인사들이 오간 뒤, 아이를 부르는데 내 소리에 인사를 나누던 어머님이 깜짝 놀라셨다.
“엇! 아이 이름이 윤우인가요~? 저희 아이 이름도 윤우에요!!!”
그날도 그 만남이 너무 유쾌하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놀이터를 나온 후에도 즐거운 마음이 이어져 하루를 보냈던 날이었다.
윤우.
윤우의 이름이 이렇게 꽤나 흔한 이름인지는 몰랐지만, 그것은 아무렴 상관이 없는 것이, 너무도 윤우에게 완벽한 이름이 되어서 그렇다.
황-윤-우.
누를 황, 인륜 윤, 옥돌 우.
윤우의 이름은 내가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아이가 스스로 고른 이름이었다.
윤우를 낳기 정확히 2주 전. 늦은 밤 남편과 책상에 앉아 이름을 정해 보기로 했다.
불교이신 시댁에서 작명소나 철학관에서 사주를 받아오실 거라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리 ‘무엇이든 괜찮으니 너희가 정하라’는 대답을 듣고 신난 마음으로 정말 우리 부부가 함께 아이의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처음엔, 어떤 의미들을 너무 생각하지 않고, 아이의 성에 붙여 지어질 만한 떠오르는 이름들을 모두 나열하며 공책에 쓰기 시작했다.
황혁, 황이현, 황이한, 황지호, 황지후, 황재혁, 황하준, 황시우, 황희준, 건호, 근후, 건우, 근우… 떠오르는 이름들을 모두 스물 일곱개 노트에 줄줄이 적어보았다.
그리고 여러 이유들로 원치 않는 이름들과 마음이 느낌을 따라가지 않는 이름들은 하나씩 지워갔다.
그래도 둘 다 명확하게 마음에 드는 이름이 보이질 않았는데, 갑자기 남편이 외치는 거다.
“황윤우!!!!”
“윤우 어때??? 나 갑자기 방금 막 떠올랐는데. 예쁘지 않아???!!”
“오!!!!!! 윤우 너무 예쁘다!! 좋다!!!!”
남편이 문득 불현듯 꺼내든 이름이, 나 역시도 듣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거다.
둘 다 아무래도 여러 이름들은 수없이 나열해 봐도 마음이 이끌리는 이름이 도통 보이질 않았는데
둘 모두에게 마음이 이끌리는 이름이 생긴 거였다.
그렇게 해서, x자로 지워진 이름과 남겨진 몇몇 이름들 맨 밑에, ‘황윤우’라는 이름도 선택지로 하나 더 넣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즐겁고 행복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이 이름들을 드림이(태명이 드림이였다. 꿈꾸며 살라고, 너의 꿈대로 살라고 지은 태명이었다.)에게 하나씩 들려주고, 아이에게 마지막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너의 이름이니, 최종 선택은 네가 하렴, 드림아.’
정말 출산이 얼마 안 남은 만삭 때였기에, 아이의 태동이 강렬하던 시기였고
아이가 발차기와 같은 태동으로 반응을 해준다면 더없이 멋진 이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디어로, 남편에게 하나를 제안했다.
“자기야.
우리, 지금 이렇게 쭉 나열된 이름들을 드림이한테 하나씩 불러주는 거야.
그리고 마음에 들면 엄마한테 알려달라고 그러자.
그럼 드림이가 마음에 드는 이름이 나왔을 때 나한테 수신을 보내지 않을까??!!“
곧장 남편도 좋다고 했고 내 의견을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나는 입고 있던 맨투맨을 가슴팍까지 올려두고 커다란 배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배꼽 언저리에 내 손바닥 하나, 남편의 손바닥 하나를 포개어 올렸다.
“드림아~
엄마가 지금부터 이름들을 하나씩 너에게 불러줄 거야.
마음에 드는 이름이 생기면, 엄마한테 적극적으로 알려줘, 알았지?
네가 마음에 드는 게 생기면 엄마 아빠가 그걸로 네 이름을 정할게.
그럼 엄마 아빠, 그리고 네가 다 같이 지은 이름이 될 거야. “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서
노트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주었다.
“황혁~”
“황이현~”
“황이한~”
.
.
.
그렇게 하나씩 이름을 부르다 보니 어느덧 “황은우”, 27번째 이름이 나왔다.
그럼에도 윤우의 태동에 반응이 없고 조용해,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으려나..
혹은 잠들어 있으려나.. 싶었던 찰나,
딱 하나 마지막 선택지가 남아있었다.
유일하게 우리 부부 모두 마음에 들어 했던 이름, ‘황윤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러낸 이름, “황 윤 우~”에서 갑자기 깜깜하게 조용하던 뱃속에서
힘찬 발길질이 마구마구 시작된 거다.
배 위에 손바닥을 하나씩 얹고 하나부터 스물 일곱까지 선택지의 이름이 불리는 동안
변함없던 아이를 느끼고 있던 우리는, 이 순간 너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아이가 본인의 이름을 직접 선택한 것이다.
너무 놀라, 남편은 ’황윤우~‘ 이름을 부르고 아이의 태동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그 순간,
손을 떼고 벌떡 일어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 이 순간이 너무도 마법 같아서 동화 속에 사는 주인공 엄마가 된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건 정말 일어났던 일이었고, 나는 그 순간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해 신나게 sns스토리에 공유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은 여지없이, 지금의 이름, ‘황윤우’가 되었다.
엄마 아빠, 아이가 모두 함께 고른 이름.
그 순간 나는 내밀한 생각을 하나 더 보태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한 아이.’
나중에 아이가 많이 크면, 꼭 이 일화를 남편과 함께 들려주고 싶다.
“윤우야. 네 이름 말이야,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네가 직접 정한 거 알아?
그것도 아주 명확하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