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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Dec 16. 2023

여덟 살, 엄마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건 아마, 엄마의 사랑

그때 그 분식집을 운영할 때에 엄마는 당신이 직접 자전거로 운전을 해 가까운 곳에 배달을 하기도 하셨는데, 엄마가 사고를 당한 그 당시에도 엄마는 자전거로 배달을 하러 가던 중이었다. 분식집 코 앞에 있는 신호다리를 건너는 중이었고, 그때에 신호등은 초록불이었다. 그것을 보지 못한 채 맹렬히 지나가던 택시가 그대로 엄마를 들이박았고 엄마는 그 순간에 숨이 멎었던 듯하다. 그 상황을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알게 된 건 나였는데, 당시 나는 하교하는 중이었다. 아마 늘 그랬던 거 같은데, 집으로 안 가고 엄마가 있는 분식집으로 곧장 갔었다. 분식집 앞으로 가니 엄마는 안 보이고 웬 남자 한 명이 네가 이 집 딸이냐며 대뜸 물어오길래 맞다 하니, 아버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거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아빠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고 그 남자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의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엄마는 사고 직 후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이모와 아빠의 말로는 아주 작은 생채기 같은 상처 하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바늘로 찔러서 나올 핏방울 흔적 하나 없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죽음에 가까이 가지 않았나 싶다. 몸속에서 피가 터져 나올 구멍이 없었을 테니까, 무언가 터진 피가 막혀버렸거나 했겠지. 내 추측으로는 그렇다. 아마 듣기로도 그랬던 거 같다. 내 기억은 웬 남자에게 아빠번호를 알려준 때까지로 머물러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 자주 의문이 들었던 점이 있는데, 커서 장례식장들을 가보니 보통 사람이 죽고 나면 화장을 하기 전에 시신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절차가 있었다. 그걸 입관식이라고 하지. 그런데 나는 왜 엄마를 보내기 전에 한 번 보여주지 않았나, 늘 궁금했다. 입관식이라는 것을 분명 엄마도 하였을 텐데, 내가 어렸기에 보여주지 않았나 싶기도 했고 하기나 하였나 싶었다. 그것이 궁금하여 이모에게 물어보았더니, 놀라운 말들을 많이 듣게 되었다.


일단  의문점에 대해서는, 결론적으로 나는 엄마의 입관식을 보았더랬다. 엄마가 숨을 쉬지 못하여 목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숨을   있도록 관을 끼워 넣었는데, 목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무서웠던지 엄마를 보자마자 소리치고 울며 뛰쳐나갔더랬다. 나는 그런 기억이 일절 나지 않고, 엄마가 잠시나마 있었던 병원에서의 모든 기억들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이모는 내가 충격이 컸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아마도 어린 너에게 충격이 커서  모든 기억들을 잊어버린  아닐까 싶다고.


 의문점에 대한 대답 말고도 놀라운 사실을 하나  들을  있었는데, 엄마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었을  눈을 감지 못하였더랬다. 가족들이 아무리 손으로 눈을 감겨보아도 엄마는 눈을 감지 못하였는데, 다들 ‘성희가 어린 막내 두고 세상을  떠나려나보다했단다.


건너들은 얘기들의 조각들이  맞추어지지 않아 정확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서  손을 부둥켜 잡고 엄마의 눈을 감겨주니 그제야 엄마의 눈이 편하게 감기더라고 이모가 얘기해 주셨다. 그때를 회상하며 나와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린것이 사람들 손에 붙들려 부들부들 떨며 얼마나 무서웠을까하며 얘기할 때에 이모의 눈은 이미 촉촉하게 벌게져 있었다.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것 또한 나에게는 의문이었지만 엄마가 그만큼 나를 끝까지 사랑했노라, 생각하니 끝내는 의문점으로 남지 않았다. 엄마의 사랑으로 기억할  있는,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추억이다. 물론 내가 직접  기억이 아닌, 건너들은  추억이지만.




그리고 그렇게 엄마를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남은  아빠와 , 언니  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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