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과 레나
가게를 운영하며 만나고 생긴 특별하고도 귀중한 인연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꼭 한 명만을 꼽으라면 단연 셀린언니와 톰! (역시 한 명은 무리다. 흐흐)
단순히 가게에서 만난 특별한 손님과 사장의 인연 그 이상으로 이제 내게 너무도 큰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서로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며 각별한 애정을 주고받기도 하며 일 년이 넘도록 긴긴 우정을 실제로 이어가고 있는 소중한 그 인연, 그중 단연 톰을 빼먹을 수가 없다.
톰을 처음 만난 건 10월 27일 가을날.
두시쯤. 손님이 아무도 없을 때에 찾아왔던 톰. 손님이 보이지 않는 안쪽 부엌에서 열심히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때였다. 너무 집중하느라 문소리가 열리는 것도 듣지 못했는데 아주 조심스럽게 “hello…?” 내뱉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황급히 나가보니 눈이 커다란 톰이 포스기 앞에 서있었다.
“앗, sorry! hi !!”
조용한 분위기가 낯설었는지 살짝이 “영업하지?” 하곤 물어온다. “그럼그럼!! 지금은 조용할 시간이야. 메뉴판을 줄게.”
그리고 받아 든 메뉴판을 앞에 두고서 톰은 이것저것 음식을 물어오고 나는 그에 따라 메뉴마다 설명을 곁들이고 보니 어느새 톰의 표정이 천진난만해지기 시작했다.(너, 벌써부터 이때 날 파악한 거였구나? 푸하하.) 점차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을 넘어 꼭 친구를 만난 듯 신난 톰은 어느새 개구쟁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때부터 메뉴얘기는 뒷전이 되고 우린 포스기를 앞에 두고 온갖 대화들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늘 이런 긴 대화들은 뜬금없어 보이지만 또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되고 이어진다. 참 신기해!) 이러다가는 한명은 음식도 못 내고 한 명은 배를 굶주린 채로 돌아가겠다, 싶어 (대화가 끊어질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까, 톰이 말을 끊을 생각이 없었고 나는 그때마다 또 즐겁게 대화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으니 우리는 장작 십 분을 넘게 주문도 잊고서 포스기를 앞에 두고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분명 시시콜콜한 대화였을텐데 말이야!) 잠시 말을 끊고 먼저 제안을 건넸다.
“톰! 네 이름 톰 맞지??! 우리 이러다가 서서 몇 시간을 보내겠어. 너가 메뉴를 지금 주문하면 내가 만들어서 네 테이블로 갈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면 같이 얘기 나누자. 어차피 지금은 조용한 시간이고 곧 있으면 문을 닫을 시간이라 가능할 거 같어.”
“oh, cool!! ok, so i want frenchtoast and americano hot. i will wait there!”
“ok!”
그리고 테라스에 앉은 톰에게 커피부터 건네주고 곧 만들어낸 달달한 프렌치토스트 한 접시를 내어주었다.
같이 앉아서 수다를 떨 거라면, 나도 커피 한잔이 필요할 테니 내가 마실 커피 한잔도 고숩게 내려, 이내 톰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삼십 분 정도 말동무가 되어줄 생각이었던 나는, 영업 마감시간까지 지나 장작 세 시간을 함께 떠들게 되었다. 장작 세 시간!!! 세 시간이라니!!!!
세 시간을 끊임없이 떠들 거리가 있나, 한다면… 우리는 이 날 분야를 막론하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일단 각자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이었다. 알고 보니 톰은 원래 러시아에서 사진작가로 활동을 했었고 이후엔 방송가로, 그리고 그 이후엔 마케터가 되어서 개인 마케터와 상담사, 그리고 카페나 작은 기업들의 브랜딩을 맡아주는 브랜드 마케터 프리랜서로 현재는 활동 중이었다. 러시아를 떠나 발리에서 산지 벌써 일 년. 흥미로운 것이 많았는데 톰은 일단 브랜드 마케터, 그리고 개인의 상담사로서의 본인 직업에 굉장히 큰 자부심과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 말미엔 계속해서 내 카페를 어떻게 하면 더 브랜딩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더니 내게 여러가지의 것들을 제안하거나 추천하기도 했다. 그 후 몇 번을 만날 때에도, 심지어 부산을 떠나 발리에 가서도 틈틈이 내게 연락을 건네 와 우리 카페의 이러이러한 부분을 이렇게 개선하면 더 좋지 않을지, 이러이러한 직원을 뽑으면 너무 좋을 거 같다든지, 나에게 쉼이 필요하니 영업시간은 이러이러하게 하는 것은 어떤지, 메뉴는 이러한 것이 추가되면 더 좋지 않을지, 간판을 이러이러하게 다는 건 어떠할지, 로고는 어떤 식으로 만들면 더 좋을지 등등을 정말 내 파트너 동료가 된 듯이 자기 가게마냥 생각하고 알려주었다. 그것이 또 얼마나 내게 큰 고마움으로 다가왔는지! 이미 많은 고객, 클라이언트들, 카페들을 두고 머리를 싸메며 부산 여행을 와서도 일을 하느라 바쁜 톰이었는데 톰은 그 와중에도 내게 어떤 돈을 요구하거나 바라지도 않고 진심으로 고민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톰은 이후에도 내게 연락을 주고받으면 자주 말하곤 했다. “언제든 가게 일에 있어서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 도와줄게!”) 마케팅이 필수인 요즘 시대, 특히 우리나라의 카페산업에서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 내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건들지 못했던 것은 자본이었다! 뭐든 투자를 해야 그만큼의 성과가 또 돌아오는 것이 마땅하나, 멋지게 전문적으로 마케팅을 하기엔 나에게 자본이 부족했다. 그래서 마케팅이라는 것은 접어두고 그저 열심히 내 색깔을 가꾸어가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던 내게 톰의 직업은 꽤나 멋져 보였다. 물론 여러 여건 상, 톰의 건의나 추천을 접목시키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톰의 존재가 꽤나 내게 든든했다.
그때에 나는 소위 잘 나간다는 멋지고 힙한 카페들이 마케터들과 협업을 하거나 한 팀을 이루어 카페의 정체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홍보를 할 수 있고 특출난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그것을 전문적인 사람들의 손과 생각을 거쳐 브랜딩화되어가는 모습들이 마냥 부러웠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언젠가 저런 멋진 팀을 꾸릴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 저런 멋진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그 생각에 작아진 적도 있고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더 빠이팅을 스스로 외치기도 했었다. 그랬으니 톰의 투철하고 세밀한 직업정신을 내 카페에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고맙고 든든했는지, 이해가 갈 만도 하다. (심지어 이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톰은 팔로워 2만이 넘는 인플루언서였다는 사실! 이건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톰의 전문성을 알려주는 수치이기도 했으니까, 더 흥미로웠다. 톰의 말로는 톰이 나고 자란 도시,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는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푸하하. 너 그걸 스스로 말할 수 있단 말이니, 이렇게??!! 그치만 그 자신감이 또 톰의 매력이었다. ‘멋진 자식!’)
그리고 러시아가 아닌 발리에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톰을 만난 시기 전 세계 뉴스에서 대서특필하고 있던 크나큰 일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내가 보던 기사 중 러시아에서 보이는 2-30대 남자들은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전부 잡아들여 전쟁에 보낸다는 것이었는데, 문득 그 생각이 난 것이다. 혹시 그것이 널 발리로 향하게 만든 계기도 되었냐고.
물론 그것도 큰 몫을 한다고 대답해서 날 놀라게 했다. 톰은 나와 딱 한 살 차이, 그러니까 이때에 30살이었는데 러시아에 있었다면 본인도 곧장 끌려갔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현 러시아 상황에 대해 개탄했고 마냥 해맑은 얼굴에서 푸틴대통령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또라이야. 미친자. 우린 다 그렇게 생각해. 러시아사람들 모두가.’ 그리고 사태가 심각할 때는 발리에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그리고 다시는 러시아에 돌아가고 싶지 않고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말도.
러시아상황과 정치에 대한 얘기를 지나쳐, 이번엔 한국문화와 러시아문화, 발리문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문화’에 대해서라기보단 어떤 논점에 대하는 국민적, 나라적 대응 방식이었는데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동성애,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화가 한참 흐르고 나서 직감적으로 느낀 것 중 하나는, 톰이 어쩌면 동성애자 그리니까, 게이일 수도 있겠다는 거였는데 그것을 불쾌하지 않도록 거리낌 없이 순수하게 물어온 나의 질문에 톰은 아주 캐주얼하게 대답해 주었다. “맞아. 나는 정확히 말하자면 바이섹슈얼이야.” 맞았다. 톰은 양성애자였는데 그 당당함도 난 참 좋았다. 움츠러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톰이 이어나간 말이 충격적이었는데, 요는 이러했다.
“러시아에서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면 총을 쏴 죽일 수도 있어. 정말로 그럴 수 있는 나라가 러시아야.”
“뭐???!?! 정말로 총을 쏜다는 말이야?????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말이야???!”
“어, 정말로. 그거 알아? 이건 좀 나한테도 흥미로운 건데, 한국에서는 여자들이 다들 귀여워 보이려고 하잖아. 내 눈에는 다들 귀여워 보이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그게 좀 이상하고 특이해. 러시아 여자들은 죄다 섹시해 보이려고 애쓰거든. 그리고 남자들은 다들 남성미를 뽐내야만 하는 존재야, 러시아에서는. 우는 남자는 용납이 안 돼. 자고로 남자라면 사람들 앞에서 울면 안 되고 강인하고 힘쎈 모습만을 보여야 해. 그게 한국과 러시아에서 가장 다른 점이야.”
“야, 그건 오해야! 귀여워 보이고 싶어 하다니! 넌 그건 너무 단적으로 본 예시인 거 같은데. 뭐 아이돌이야 그런 컨셉이 많긴 하지만 모든 여자들이 대개 그렇진 않아. 아마 네 말의 요지라면, 귀여워 보이고 싶어 한다기보다 귀여운 모습에 대해 우린 반감이 없다는 거겠지. 반감이 없는 걸 넘어서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귀여운 걸 보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잖아! 근데 귀여운 사람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행복해지겠어! 그건 좋은 거기도 해! 어쨌든 귀여움에 대한 인식이 너희 나라랑 우리나라랑 너무도 달라서 생긴 단적인 모습이기도 하겠다. 아니, 그리고 남자도 사람인데 어떻게 눈물이 없을 수가 있어? 그건 너무 가혹하고 말도 안 돼. 그럼 남자들은 눈물이 쏟아질 듯한 슬픔을 대체 어떻게 감당하고 있단 말이야??”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여튼 러시아는 그렇고, 그런 분위기가 난 너무도 싫었기 때문에 발리로 갔고 지금의 생활이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기 때문에 더 이상 러시아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거야. 그리고 아까 그 총에 대해서 말인데. 참고로 내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러시아사람들은 아무도 몰라. 물론 내 가까운 친구들은 알지만 공적으로 알려진 내 모습으로는 절대로 알려져선 안되고 그럼 나는 러시아에서의 모든 일자리를 잃게 될 거야. 내가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되면 아무도 나에게 일을 맡기지 않을 거거든. 그럼 지금 나의 러시아클라이언트들은 다 사라지겠지. 여튼 뭐 그게 현 상황이야.”
“세상에.”
이 이야기를 필두로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절절한 톰의 첫사랑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와 그 오랜 시간 연인으로 지낼 수 없었던 환경과 그로 인한 결별, 또 그로 인한 상처에 대해. 아주 어렸던 시절 톰의 사랑이야기지만 어느덧 푹 빠져 듣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에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길게 만나거나 우정을 쌓아온 사이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내 이야기를 편하게 하게 만드는 사람. 톰이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 인생사에 자신의 인생과 비슷한 점이 꽤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그 인생사를 공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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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써가며 우리는 세 시간이 넘도록 밀도 있는 대화를 이어나갔고 톰은 톰 성격대로 내가 이해하기 쉽고 들리기 쉬운 단어들과 문장들을 써가며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누구라도 톰과 함께 한 시간만 있어보면 알 것이다. 얼마나 배려심이 많은 친구인지, 눈치가 빠른 친구인지,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눌 때 얼마나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파악하며 그 사람에 맞춰 편안하게 대하는지. 감각적으로, 감정적으로 아주 섬세하고 세밀한 친구라서 그렇다. 비슷한 사람은 단번에 비슷한 사람을 느끼고 알아보니까.
그래서 우리가 단번에 친해지고 편해지기도 했던 거 같다. 훗날 우리는 어떤 논점이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결론적으로 끝은, “soulmate!!!!!” 하고 외치게 되는 것인데, 이렇게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톰은 이 날 이후 마지막으로 부산을 떠나는 날까지 총 7일을 꼬박 함께 했다.
꾸준히 가게에 들렀고, 아쉬움에 발리로 떠나는 새벽비행 전날은 함께 휴무날에 만나 긴긴 대화를 또 이어가기도 했으며 우정을 다지기도 했다. 톰과는 지나간 인연이 되지 않고 그 이후에도 참 자주 안부를 주고받았고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그로부터 일 년 뒤, 카페를 정리하기 한 달 전쯤, 나에게 말도 없이 서프라이즈(정말로 서프라이즈였다!! 이 발칙한 친구 같으니!!!!)로 조그만 책선물과 편지를 들고 영상크리에이터답게 가게가 있는 동네에 도착해서부터 우리 가게에 오는 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내가 깜짝 놀라는 반응까지 핸드폰을 들고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영상을 찍기도 해 날 더 놀라게 했다.
“wha…..what?????????????!!!!!!!!!!!!”
“why, why, how, how can you come here?!!!!!!!!! what…???? is it really?????? really are you tomm?????!!!!!!!!!!”
하기사 톰은 서프라이즈의 귀재 아니던가.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한국에 온다는 말은 일절 없었으니 내가 놀랄 법도 하지!
돌이켜보면 참 신기한 인연인데 너무도 귀중한 친구를 만났으니 앞으로의 우리 우정도 난 참 기대된다!
톰을 몽상가에서 손님으로 만났었다니!
우리 가게엔 게이가 잘 어울릴 거 같으니 게이직원을 뽑으면 좋을 거 같다는 말을 이렇게나 캐주얼하게 하기도 하고.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하는 탓에 다른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을뿐더러 쉬지도 못하니 직원을 뽑아 내가 마케팅도 할 수 있고, 적어도 가끔은 남편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내가 일을 많이 하니 남편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기억하고 한 말. 그리고 남편이 주말 내내 도와주는 것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기억해, 남편도 쉬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늘 피곤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그리고 "너는 너의 창의성을 따라야만 해!!" 라고 했다.
톰이 내게 계속 건넨 말 중에 가장 감동이었고 힘이 되었던 말이었다. 너에겐 훌륭하고 멋진 잠재력과 능력이 있다는 말. 이 말을 톰은 내게 참 많이 해주었는데,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 너의 재능을 써먹지 않는 게 아쉬워!"라고 몇 번이나 얘기하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내 재능을.. 뭔가 너는 알아본 거니??! 푸하하!'하고 웃었지만, 사실 이 시기에 가장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고 스스로 작아지던 시기였기에 나에게 능력이 있음을 봐주고, 믿어주는 친구를 만난 것에 참 감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끝내 우리는 외친다! soulmate!!!
한국에 살던 러시아친구와 그녀의 아들을 내 카페에 불러내기도 하고, 발리로 돌아가기 전 휴무날 만나 못다 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일 년이 지나, 서프라이즈로 가게에 찾아오기도 했다. (며칠을 만나 우린 신~나게 놀았더랬다.)
러시아에서 놀러 온 톰의 절친, 레나!
톰은 레나와 내가 분명 잘 맞을 거라고 했다. 만나자마자 친해질 게 분명하다고!
그리고 톰의 예상대로, 레나와 나는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다. 밝고 열심히 살고 배려심이 많은 레나는 이 동안얼굴에 아이가 둘이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셋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랑스러운 둘을 크고 멋진 베이커리 카페에 데려가기도 하고.
훗날 레나에게 머리컷트를 받기도 했다. 푸하하-
ㅡ
feat.
이게 또 어찌 된 일이냐면...
레나는 러시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고 꽤나 유명한 헤어디자이너였는데, 톰과 마찬가지로 미용하는 영상을 편집해 sns 올리곤 했다. 그것이 레나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레나와 톰은 도전하는 것을 아주 즐기고 그것으로 '일'을 더 프로페셔널하게 해 나가는 친구들이었다.
셋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데 문득 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이내 내게 제안을 한다.
"한국에서 한국사람에게 미용하는 영상을 찍어서 올리고 싶어!!!! 이거 당장 프로젝트로 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겠어?!"
그리고 잠시동안 공간을 빌릴 수 있는 동네 미용실까지 구했건만, 예상치 못하게 한국모델이 구해지지 않았고 망연자실하던 둘 앞에 "그럼 내가 모델할게!" 하고 겁도 없이 제안한 것이다. (내 머리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둘이 실망한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기에 기꺼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프로젝트날! 내 머리는 아주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이렇게 남겼다. 이건 레나의 작품이야!!!
배울 점이 많은 친구
내 세계관을 넓혀준 친구
어릴 적 한 책에서 읽은 구절이 참 와닿았다.
‘나의 세계관을 넓혀준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톰이 그런 친구 중 한 명.
겉으로 보면 그저 유쾌하고 남들이보면 꽤 괴짜같기도 한 톰은, 그 누구보다도 일과 삶과 관계에 있어서 진정성이 넘치는 친구이다. 그 어떤 일과 관계에 있어서도 ‘진정성’을 빼놓고는 톰을 말할 수 없었다. 매우 진지했고 그 진지함과 통찰력이 몸 속 깊이 베어있는 친구.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서로에게 빨려가듯 이야기가 끊임이 없었던 건 단지 즐겁고 재밌어서가 아니었다. 서로가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던 어떤 주제에 대한 관점이 서로를 넓혀주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삶의 ‘주제’가 아주 비슷했다는 것도 한 몫했는데 그것은 주로 ‘사랑’, ‘인간 애’, 그리고 각자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톰은 그런 것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특히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용기를 일깨워주는 일을 많이 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단지 일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한 가치와 개성이 있으며 그건 그 누구도 폄하하거나 평가를 절하하거나 깍아내릴 수 없으며 남들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려서도 절대 안된다는 톰의 강한 신념이 아주 많이 뿌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당함’에 대한 주제가 자연스레 따라나왔고 그것을 열띠게 설파하는 톰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걸 아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에 대해 아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걸.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톰의 어떤 시절엔 그 역시도 스스로 이겨내려는 시기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도 있었다.
‘의리’빼면 시체인 친구.
바쁘게 지낸다고 연락을 못한지 길어질 때쯤이면 안부를 곧잘 물어오며 사랑을 건네는 친구. 섬세하게 그때그때의 나에게 요즘의 기분은 어때, 요즘의 생활은 어때, 하고 멀리서 걸어오는 다정한 안부. 그것이 지나가는 인사가 아님을 느낄 수 있는 친구.
일년이 넘어 내가 가게를 곧 정리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 발리에서 다시 부산으로 찾아왔을 땐, 톰의 친구 레나도 함께 했다. 레나는 우리보다 몇살이나 더 많았지만 나이의 격차는 느껴지지 않았으며 다정하고 밝은 친구였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답게 레나 역시 배려심이 많은 친구이기도 했고 그 덕에 우리는 아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레나가 한국에 여행을 온 것은 생에 첫 해외여행이었다. 레나는 여전히 러시아 하바롭스크에 살고 있었으며 일찍이 낳은 아이 둘이 함께 했으며 동네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톰만큼이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던 레나는 거의 한번도 쉬지 않고 십년을 넘게 일을 해왔으며 여행이란 건 꿈도 꿔본 적이 없다고 했다. 톰 말로는 나와 참 비슷하다고.
그런 레나의 생일날, 톰이 레나에게 멋진 선물을 한 것이다. 한국을 너무 좋아하던 레나에게 부산행 티켓을 선물하고, 약 일주일간의 부산여행동안의 모든 숙박과 음식을 다 제공해준 것. 그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든 내가 톰에게 “와, 너 대단해!!” 라고 외쳤더니, "사랑하고 소중한 친구에게 이런 선물은 내게도 귀중해! 친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잖아."하곤 말해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였다.
레나와 톰과 함께한 며칠동안에 내가 가장 많이 배웠다고 할 그들의 모습이라면,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 '생각을 생각으로 그치지않고 과감하게 추진하는 행동력과 추진력', '될 때까지 희망하며 끈기있게 진행하는 끈기력', '진취력'과 같은 것이었다.
레나와 톰은 여행을 하면서도 내내 레나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어떤 순간 나에게 "우리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하고싶은데, 도와줄 수 있어?" 라고 물어온 뒤, 그들은 남아있는 며칠의 한국여행을 내내 프로젝트(사실은 엄연히 일이기도 하다.)에 힘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온갖 sns를 이용해 부산에 있는 한국모델을 구하러 다녔고, 나를 이용(?)해 하루동안 빌릴 수 있는 미용실을 구했으며, 발판뛰며 레나가 원하는 미용도구와 염색약을 구하러 다녔다.
그들의 프로젝트 구상과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땐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 '음.. 좀 어려울 거 같은데.'
러시아와 한국의 문화차이와 환경차이가 그 이유인데 아무래도 진행이 안될 거 같은 일마저도 그들은 될때까지 힘을 썼다. 심지어 레나의 첫 해외여행에다가, 그렇게 꿈에 그리던 한국여행이었는데 그들은 그 시간에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일에 진전이 없고 진행이 무뎌지니 둘 다 조금씩 지쳐보였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레나가 러시아로 돌아가는 이틀 전까지도.
그 모습이 내게 너무 큰 감명으로 다가왔다.
일을 즐기는 모습,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고 곧장 실행이 옮기는 그 추진력과 믿음에, 끈기와 도전성에.
그리고 그 노력들이 허투로 돌아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응원의 마음을 보태어 내가 모델이 되길 자처했고 레나가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날, 우리는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끔 내게 만들어낸 영상들과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내오며 "너무 값진 경험이야!!!" 하고 고마움을 표하곤 한다.
이 날 그들에게 받은 감동과 나에게 건네진 영향은 아주 크다.
무엇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해보기 전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부터 가지는 것이 아니라 될 것이라고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움직여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너무도 즐겁게 즐기는 것.
그래서 그들이 멋져보였고 그들을 보면서 나도 용기를 가졌다. 또다른 도전들에 대하는 내 태도에 대해, 삶을 대하는 유연함에 대해, 실패하더라도 과정에서 겪는 유익함을 즐길 줄 아는 지혜에 대해!
레나는 하바롭스크에서 여전히 미용실을 운영하며 귀여운 딸과 멋진 아들과 함께 보낸다. 여전히 힙한 생활을 유지하며 즐겁게 인생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연락을 보내온다.
"잘 지내지??!"
"몸은 어때? 배가 많이 나왔지?"
"언젠가 정말 꼭 하바롭스크로 놀러와!! 하바롭스크까지 오는 비행기는 없으니까 네가 러시아로 온다면 내가 차를 끌고 공항까지 널 픽업하러 갈게. 6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안되!!! 꼭 한번 와."
하곤.
몽상가에서의 레나-
끄끝내 성공할 수 있었던 레나와 톰의 프로젝트!
나는 머리가 변신해가는 과정을 볼 수 없었다.
레나의 신중한 손길이 하나하나 다 느껴지던 날.
톰은 미용실 사장님, 레나, 나의 커피와 주전부리까지 사오더니 내가 커피를 잘 안마시는 걸 보고는 물었다. "커피 맛없어?"
"그런건 아닌데 개인적으로 내가 콜드브루를 별로 안 좋아해."
"oh,really??!"
그러더니 얼마 안있어 톰이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그제야 나와 레나는 "톰이 대체 어딜 간거야" 하곤 했는데 한참을 지나 다시 모습을 드러낸 톰은 커피 한잔을 더 들고 왔다.
"네가 임신중이라 디카페인이 필요한데, 디카페인을 하는 카페가 암만 돌아다녀도 없는거야. 있어도 콜드브루만 있길래 한참을 더 돌아다녔는데 반갑게도 디카페인을 에스프레소로 내리는 곳을 찾았지!!!!"
'... 세상에. 그냥 콜드브루 좋아한다고 할 걸!!!'
그게, 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