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스콘과 나의 인사로 달라질건 없겠지만•••. 그래도!
23년도 8월에 열렸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기억하는지_.
잼버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퇴근하고 집에서 뉴스만 틀면 한동안 매일같이 쏟아지던 기사와 보도로 처음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의 잼버리사태가 얼마나 심각하고 부끄럽게 이어지고 있는지 또한 검색과 인터뷰, 기사들로 알게 되었다.
ㅡ
23년 8월의 어느 날.
유독 눈에 띄는 복장의 두 손님이 가게에 들어서셨다. 두 분은 보기에도 꽤나 무겁고 두둑한 배낭가방을 한쪽과 양쪽 어깨에 짊어지고 스포티한 차림으로 자리에 앉으셨는데, 그때부터 자꾸만 하나둘 무언가의 것들이 나의 시선을 빼앗기 시작했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형형 색색의 칼라풀한 뱃지들, 그리고 연이어 티비에서 계속해서 마주쳤던, 스카우트 스카프가 두 분의 목에 내가 보던 형상 그대로 걸려 있었던 것이다.
‘앗! 잼버리참가 손님분들이다…!’
갑자기 순간적으로 화끈화끈거리며 저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나와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운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나의 존재도 몰랐을 테고 지금 처음 만난 그저 한 가게의 주인일 뿐일 텐데 나는 마냥 죄인이 된 것 같은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는 심정이 되었다.
손님 두 분이 가게에 들어서고 메뉴판을 드리며 두 분이 잼버리참가 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드리고 싶은 말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마치 본능처럼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 너무 건네드리고 싶었고, 그 이후에도 줄곧 “죄송합니다”와 같은 말들이 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매일같이 티비를 보며, 이 나라의 국민으로써 부끄러움이 매번 쌓여가던 차였다. 먼 이국에서 이 나라까지 찾아와 즐거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즐기러 왔을 터인데 무능력하고 대책없는 진행과 비리로 휩싸여 고생하고 아파하고 난장판이 되어, 상처만 가득했던 어린아이들부터 청소년, 학생들, 어른들까지. 티비를 볼 때는 내가 저곳에 가서 사과를 하고 뭐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부산에 있으니, 잼버리 참가손님분들을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 부끄러움을 혼자만의 몫으로 가지고 있겠거니, 하며 분노만 있었을 뿐이었다. (이 분노란 자국에 대한 개탄스러움, 아쉬움, 그리고 참가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부끄러움, 미안함, 등등이 다분히 서려있는 감정이었다.)
그런 내 앞에 잼버리에 참가한 두 분이 손님으로 가게에 들린 것이 아닌가.
조그만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왠지 그것을 상기시켜드리고 싶진 않았다. 지금은 즐겁게 나라를 탐방하며 여행을 즐기고 있을 시간이었을 테니까. 그러니 부산까지 왔겠지, 생각하며 나는 내가 '가게 사장으로써 즐거움과 만족감을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다.
두 분이 주문하신 음식과 커피, 음료를 정성껏 준비해서 건네드렸고 두 분은 식사를 즐기며 나란히 대화를 나누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셨다.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안도하고 돌아서는데….
아무래도 내 마음에 그냥 보내드리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는 안될 거 같았다.
당장 냉장고를 열고, 냉동실도 열고, 메뉴판도 한번 쑥 훑어보기도 하고, 디저트들도 무엇이 있나 보다가 전날 한가득 만들어두었던 초코스콘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참 이것저것 레시피를 또다시 만들어보고 있었던 새로운 메뉴 중 하나였다. 비건 디저트를 늘리고 싶어서 스콘 중에, 또 내가 좋아하는 초코로 비건초코스콘을 테스트로 만들어보고 맛이 좋아 한가득 더 구워두었던 디저트. 모양은 예쁘지 않아 어설픈 조각케이크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건강하고 맛이 좋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연신 손이 가는 아이였다.
두 분 중 한 분이 주문하는 메뉴와 음료를 보건대, 비건이신 게 분명하다 싶었다. 그렇다면 비건디저트를 드려야 두 분 다 즐길 수 있으니까, 딱이겠거니 생각하며 가장 큰 모양의 스콘 두 개를 하나씩 접시에 예쁘게 담아 조심스레 두 분께 건네드렸다.
‘갑자기 이게 뭐지?’싶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시던 두 분께 황급히 인사를 드렸다.
“아, 이건 비건초코스콘이에요. 판매하는 건 아니고 제가 먹으려고 가득 만들어둔 것인데 서비스로 드리고 싶어서요.”
“oh, thank you so much!”
그제야 두 분이 활짝 웃으신다.
그리고 뒤돌아 소심하게 일하며 살짝살짝 두 분을 바라보니 스콘을 꽤 즐겁게 즐기시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이다..!!!!'
입맛에 맞으신 거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고작 이런 스콘 하나에 여태까지의 고달픔이 가시진 않겠지만 나의 소박한 마음만은 깃들기를.
남은 여정만큼은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한 한국에서의 시간들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어느새 두 분은 서비스로 내어드린 스콘 두 개도 깔끔하게 드시고 자리를 일어나셨다.
남자분 손에는 가게에 들어오실 때부터 아주 커다란 피자판이 하나 들려있었는데, 어쩐지 새로 산 피자는 아닌 듯하였다. 애매하게 남아서 버리고 싶은데 버릴 곳을 마땅히 찾지 못해 들고 다니는 거 같았달까! (신기하게 판을 들고 있는 모습만 봐도 느낌이라는 게 있으니까!)
뭐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었던 마음에, 말을 건네버렸다.
“그 피자판 버리는 거야? 그런 거라면 나에게 버려주고 가도 되!”
“어, 정말? 그래도 되겠어? 너무 미안한데… 그래도 된다면 부탁해. 이걸 버릴 곳이 없어서 난감했거든.”
“문제 안되지. 나에게 줘!”
“고마워!”
그렇게 아주 조금 남아있던 피자조각들이 담긴 커다란 피자판을 건네받고 그들이 돌아서려던 그 참…!
도저히 내 마음에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고 싶었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정말 내 마음이 그랬다. 나라도 미안하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입을 열고야 말았다.
“저기…!”
“응?”
“혹시 잼버리에 참가하러 온 거 맞지?”
“아, 맞아.”
“어디에서 온 거야?”
“나는 독일에서 왔고 이 친구는 칠레에서 왔어.”
남자손님께서 말했다.
“아 그럼 한국에서 만난 거야?”
“응, 맞아!”
“그렇구나. 반가워. 그.. 다름이 아니라…”
“응?”
“저기.. 미안해!
사실 뉴스로 봤어. 몇 날 며칠 뉴스에 계속해서 이번 잼버리사태에 대해서 기사가 떴거든. 나도 잼버리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이번 일로 인해서 알게 되었어.
한국인으로써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게 생각해. 고생 많이 했지? 아까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하고 싶었는데 말을 못 했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번 일로 잼버리에 대해 알게 되었고, 너희에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을 거야. 그 마음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너네가 남은 시간만큼은 좋은 시간들로 가득 채우길 바래! 다시 한번 정말 미안해.”
이렇게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할 생각은 없었는데 뉴스로 매일같이 보던 미안함이 차곡차곡 마음에 많이도 쌓였는지, 그 마음이 한 번에 터져버린 듯 ‘미안하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몇 번을 읊조리고 말았다.
혹여나 나의 인사가 부담스럽거나 당황스러울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두 분은 이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편안한 웃음을 지어보냈다.
그리고 아주 솔직한 심경도 드러내며.
“그래. 기사가 많이 떴다는 걸 알아. 우린 너무 힘들었고 정말 오랫동안 지쳐있었어. 여태까지 있었던 그 상황들은 모두 다 싹 잊고 싶어.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이전까지의 잼버리는 기억 속에 싹 잊고 지금은 남은 여행을 즐기고 있으니까! 잼버리는 일찍이 선을 그었어! 이제 남은 시간은 즐겁게 보낼 거야.”
“그리고 덕분에 너무 따뜻한 시간이었어! 고마워.”
이 말을 듣는데, 마음 한켠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또 한 편으로는 '정말 그 기사들이 사실이었구나' 체감하며 미안한 마음과 그래도 내 마음과 진심이 전달된 것만 같아 다행스러움이 섞인 감정들이 교차했다.
부디 남은 시간은 즐거이 한국을 즐기기만 하기를! 좋은 사람들만 만나기를! 바랬다.
그들은 이제 동해로 떠난다고 했다. ‘그 여행 속에서 가슴 푸근한 정을 안고 조국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바라며 나는 그들을 배웅했다.
나의 작은 호의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기억 속에 조금이나마 좋은 것들로 채워주길 소소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