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존경해"
내게 정말 의미 있는 활동의 순간은 어떤 순간이냐고 묻는다면 곧장 떠오르는 순간은 “걷고, 산을 오르는 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살아있음을 완연하게 느끼고,
깊은 내면에서 나 스스로와 진실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
그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신뢰와 믿음을 심어주는 가장 강력하고도 건강한 순간, 그 순간을 어떠한 방해도 없이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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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답을 찾지 못할 거 같은 물음표를 스스로에게 가득 쥐여줬을 때, 혹은 내 안에 가득 담겼을 때, 나는 곧장 걸었고, 떠나곤 했다.
제주도 한라산으로, 집에서 열두 시간을 넘게 걸어야 갈 수 있는 다른 지역으로, 산이 있는 곳으로 혹은 긴 호흡을 걸음으로 옮길 수 있는 곳으로.
목표점을 잡고서 혹은 목표 없이 길고 긴 호흡으로 다리 하나하나를 움직여 걸음걸음들을 옮겨내고 길을 만들어낼 때 곳곳에 보이는 새로운 풍경들을 마주하는 일, 혹은 늘 같은 풍경에 새로운 시각과 관점들이 피어오를 때,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 둘 날아갈 때, 무거웠던 호흡이 점차 가벼워짐을 느낄 때, 몸과 정신이 깨끗한 공기로 다시 건강하게 들어찰 때 그 상쾌함은 이루어 말할 수 없고 말로 가볍게 꺼내기엔 느끼는 바가 너무 크다.
등산도 그렇고 걷는 것도 그렇고 일정한 순간이 지나면 개인마다의 한계점이 오고 그쯤이 다다르면 다리도, 발바닥도 점점 굳어가기 시작한다. 처음 시작과 다르게 온몸이 무거워져서 그만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근데 그 순간을 지나쳐 더 긴 호흡을 이어가다 보면 무거워졌던 몸이 점차 다시 가벼워짐을 느끼고, 어느새 처음 걸음을 시작할 때보다도 더 가벼워진 몸과 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건 “나는 해낼 수 있다.”라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희망을 엿보는 순간이기도 하고, 용기를 받는 순간이기도 하며, 믿음과 신뢰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만큼 긍정적이고 가치로운 순간이 또 있을까.
이 희열과 감동은 스스로만이 안다. 긴 걸음을 옮기고 몸과 정신이 모두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상쾌해짐을 느껴본 자기 자신만이 안다.
그래서 이 경험을 가져봤다면, 한 번으로는 그칠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그렇게 첫 경험 이후로 수많은 순간을 걷고 올랐던 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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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에서 오로지 등산만을 위해, 트래킹만을 위해 한국으로 날라온 멋진 손님분들을 여럿 만났다. 엄마, 아빠, 딸, 아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오로지 등산여행을 위해 먼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날라와, 한라산•설악산•지리산•북악산•북한산 그리고 지역지역을 돌며 그 지역의 산을 꼭 한 곳 이상 오르며 여행하는 멋진 손님분들도 만났고, 홀로 등산여행을 위해 먼 미국에서 날라와 각 지역마다 산을 오르는 미국 손님도 만났다. 그리고 등산만을 위해 온 것은 아니지만 짧은 한국여행 중에 꽤 많은 산들을 오르내렸던 여정을 가진 멋진 독일커플분과 미국부부분도 만났다.
그 만남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흥분과 즐거움과 큰 영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신남과 동시에 또다른 격정의 에너지를 받아내는 일, 신체적 영감과 시너지를 받아내는 일! 그런 순간을 여럿 가졌다. 여러 손님들을 마주하며.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있다. 그 멋지고 아름다운 에너지를 물씬 풍겼던 두 손님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레이첼은 이제 막 3월에 들어서는 아직은 좀 춥고 쌀쌀한 겨울 같은 봄날 아침, 이곳을 찾았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가게에 들어와 당근라페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 한 잔을 주문했는데, 워낙에 추웠던 날씨라 음식을 기다리며 따뜻한 차 한잔으로 몸과 손을 녹이길 바랬다.
그래서 서비스로 따뜻한 허브티 한잔을 내어주었고, 레이첼은 음식과 함께 나왔던 차가운 오렌지주스는 한 두 모금만 마신 채 따뜻한 차만 깨끗하게 비워마셨더랬다.
'얼마나 추웠으면. 역시 추운 날엔 따뜻한 걸 마시며 몸을 릴렉스시켜야 해!’
추운 날 이른 아침이라 손님이 없었다. 그래서 레이첼과 나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레이첼은 미국에서 홀로 여행을 왔고 오로지 등산만을 위해 왔다고 했다.
등산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고 있었던 것인데, 훗날 주고 받은 레이첼의 sns계정 속엔 등산 중인 레이첼의 모습, 등산길을 올랐던 멋진 나라들의 산등성이 풍경들, 자연의 한 폭 한 폭 그림같은 모습들, 그리고 레이첼의 등산화 사진이 아름답게 놓여져 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산이 있다니.’
너무 아름다워 연신 감탄하며 레이첼의 멋진 등산길을 훔쳐보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 길을 나 또한 걷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좋을까!’
이른바 [간지 난다]라는 유행어가 있다지.
나에게 ‘간지 철철 나는’ 사람들의 삶이란 이런 삶의 모양이다.
나에게 있어 '간지가 흘러 넘친다' 라고 표현할 사람이 바로 레이첼이었다.
오직 등산만을 위해 국경을 넘고 넘어 이 멀리까지 오다니. 그게 너무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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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렇게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꼭 그 나라의 지역을 돌며 등산을 하는거야?"
“맞아! 부산에 와서는 장산, 황령산, 백양산이라는 곳을 올랐고 오늘 아침엔 금정산이라는 곳을 오르는데 여기는 투어를 신청해 놨거든. 투어시간이 곧이라 얼른 먹고 투어가 시작되는 곳으로 가야 되~!”
“아침부터 등산 투어가 있단말이야? 여기에 그런 게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렇게 대화는 시작되었다.
당장 오늘 아침엔 금정산을 오르기 위한 투어가 있다며 신나는 모습으로 내게 설명하던 레이첼.
그 모습을 보며 '그래서 급하게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아침식사부터 하러 나왔구나! 멋진 걸.’ 하곤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등산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부산 내에 산도 다 둘러보지 못한 나였다. 부산에 사는 나보다도 더 많이 다닌 걸.
이 기운이 좋아 또다시 신이 나버린 나는 나 역시 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홀로 등산을 얼마나 다녔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내 말에 이젠 레이첼이 신나하기 시작했다.
“미국이야말로 정말 멋진 산들이 많지 않아??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론 많이 접했어! 언젠가 미국에서도 등산을 한 번 꼭 해보고 싶어! 너무 멋질 거 같아!”
“당연하지. 미국에 오게 된다면 연락해. 멋진 곳들을 많이 알려줄게. 문제없어!”
“신난다!!!!!!!!”
이럴 때면 가슴이 쿵쾅쿵쾅, 이미 미국에 산을 오르기로 결심하고 비행기티켓까지 다 끊어놓은 사람처럼 설레이기 시작하는데 이내 ‘현실은…’ 생각하며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바쁘다.
그렇게 ‘등산’이라는 취미 하나로 마음 다해 신나게 대화를 나눈 우리는, 레이첼의 투어시간이 가까워져서 즐거운 모습으로 헤어졌고 그로부터 며칠 뒤, 몽상가 구글지도에 레이첼의 글이 달린 것을 보았다.
Cozy, cute, delicious clean food, and the nicest owner!!!
Who is very knowledgeable about hiking and travel and food. Highly recommend :)
누구지??
그러다가 ‘who is knowledgeable about hiking and travel’ 이라는 문장을 보고, ‘rach’라는 이름을 보고서야 그것이 레이첼의 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리뷰가 또 얼마나 반갑고 흐뭇하던지!
[아늑하고 귀엽고 맛있고 깔끔한 음식, 그리고 가장 친절한 주인!!!
하이킹, 여행, 음식에 대한 지식이 매우 풍부한 사람입니다. 강력 추천 :)]
레이첼도 나처럼 그날의 만남과 수다가 정말 즐겁고 신났던 게 맞았구나!!! 생각하며 '하이킹, 여행, 음식' 이라는 단어에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힌다.
먼 나라에서 취미가 같은 사람과 만나서 흥분하며 대화를 나누기란 또 쉽지 않으니까!
그리고 약 두 달 뒤쯤, 한 달간 가게 문을 닫고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이태리에서 하이킹을 한 적이 있었다. 매일을 엄청난 거리를 걷는 건 기본이었고 이 날은 말그대로 하이킹을 위해 떠났던 날인데 바로 이태리 친퀘테레에서였다. 친퀘테레에서 코르닐리아-베르나짜라는 마을을 등산하는 코스가 있는데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리브나무로 우거진 숲, 햇빛 가득 받아 크고 울창한 야생선인장들과 알로에들로 가득한 등산길. 가파르고 순탄한 길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길. 짧지만 그 멋진 자연을 온몸으로 한껏 느끼고 경험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곳.
재밌게도 이곳을 걸으면서 레이첼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레이첼도 이곳을 와 봤을까?’
‘레이첼에게 이곳을 소개해주고 싶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레이첼에게 안부인사를 건네며 이곳을 소개해줘야지. 나중에 이태리를 여행하게 되고, 친퀘테레를 오게 된다면 꼭 이 구간으로 등산을 해보라고. 네가 아마 매우 매우 좋아할 거라고 확신한다고! 멋진 자연이 넘쳐흐르는 곳이라서 짧은 시간 이곳을 등산만 해도 힐링이 가득할 거라고. 이 순간을 같이 나누고 싶다!’고.
그 생각들을 하면서 등산길을 오르는데, 왠지 내가 생각해도 우습고 즐거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여기까지 와서도 손님들 생각을 하네.’
가게에 한참을 멀리 떨어져 나온 여정에서도 카페 생각을 하는 내가 웃겼고, 그 와중에 떠오른 손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겨 신난 나 자신이 웃겼고, 그것이 또 즐거워서 웃었다.
그리고 또 ‘하이킹’하면 잊지 못할 손님분들이 있다. 바로, 캐나다 가족분들!!
잠시였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삶을 대하는 에너지.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에너지가 가족 네 분 모두에게 풍겨졌던 멋쟁이 패밀리. 그 에너지가 온 가족에게 퍼져 나오니 그건 또 얼마나 멋진가, 소름이 돋기도 했다.
서툰 영어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폴짝폴짝 여러 가지를 묻던 내가 생각난다.
이날 네 분은 한여름, 7월 중순에 오셨는데 대화의 시작은 어머님이셨다. 식사를 끝낸 네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갑자기 어머님께서 내게 다가오셨다.
"너무 좋은 음식이었어요. 맛있고, 공간도 좋았어요!" 그리고 멋진 미소로 내게 또 심쿵을 날려주신다.
예상치 못한 손님에게 예상치 못하게 심장 폭격을 당한 날에는, 그 감동이 배가 되어서 감사함도 배가 된다.
"앗!! 너무 감사해요!!! 네 분은 가족 다 같이 여행오신거에요~?"
"네 맞아요. 우리 모두 캐나다에서 왔고 남편과 아들, 딸이에요. 우리는 모두 등산을 좋아해서 매일 하이킹을 하며 한국을 여행 중이에요."
그쯤 되니 자리에서 일어난 아들과 딸, 남편분도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나와 그녀 사이 옆에 어느새 함께하며 대화를 거들었다.
"와, 멋져요!!!!! 그러고 보니 의상도 딱 그러네요. 한국엔 얼마나 있으시는 거예요~? 어디 어디 다니셨어요???"
"진주도 가고 안동, 경주도 가고, 제주도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여러 군데를 갔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그 곳을 이렇게 네 분 다같이 등산하고 여행하신 거에요??! 아드님이랑 따님도 같이 등산길을 오르구요?"
"그럼요. 우리 딸과 아들도 등산을 좋아해요."
'세상에... 너무 멋지다. 산들을 그렇게 가족 다 같이 즐기며 등반여행하는 것도 멋지고, 여행다닌 지역이 안동, 진주, 경주라니.'
그들의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멋졌던 건, 비단 이 취향과 취미가 엄마와 아빠만의 것이 아니라 아들과 딸의 것이기도 했다는 것. 딸과 아들 모두 이 여정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억지로 따라가는 여행길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이 여정을 즐기고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고, 이내 부러웠다!
사진 속 그들의 미소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들의 삶과 같았다. 진정 가치로운 삶이 무엇인지 그들은 그들의 삶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듯, 그 여정을 다 함께 꾸려나가고 있음을 나 역시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아이를 낳고, 아이가 크기 시작하면 이런 순간이 올까? 함께 가치로운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멋진 여정의 순간이!
그런 여정이 온다면 참 멋지겠다, 생각했다!
이들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여유롭고 아름다운 미소처럼. 그들의 여정처럼, 나도 아들과 남편과 그런 여정이 삶 속에 함께 하기를-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가 가득 지어지던 그런 날.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받는 이 순간. 이런 순간들을 잊지 말아야 해 !
인생에서 이런 순간들이 점점 더 귀해지고 소중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