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몰랐던 그 나라들. ep2
이스라엘!
이스라엘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지금 생각하면 꽤 무지하고 미안할 정도로) 전쟁에 대한 뿐이었다. 그것 역시 깊은 지식이 아니라 뉴스에서 흩어지듯 바라본 모습만이 전부였던 나. 그리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모가 성지순례로 이스라엘을 다녀왔다는 것, 이스라엘이 기독교인들의 뿌리와 같은 곳이라는 것 정도가 내가 이스라엘에 대해 아는 다였다. (훗날 이모에게 물어보니 이모가 다녀온 곳은 예루셀렘, 나사렛이라는 곳. 위험하지 않았냐고 하니, 그곳 중에서도 위험한 지역이 있고 안전한 지역이 있단다. 유대인지역, 이슬람지역이 나눠져 있기도 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리고 참고로 현재는 팔레스타인 전쟁 중으로 이스라엘로 출국이 금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이스라엘에서 멋진 손님분들을 몽상가에서 만났다.
그것도 다섯 분이나!
제일 처음 만나 뵈었던 이스라엘 손님.
한국인 친구분과 동행중에 들려 식사를 하셨는데 말이 없고 표정이 무덤덤해, 혹여나 식사가 입맛에 맞지 않으신 건가 싶어 걱정을 했었다. 가게를 나서는 길까지도 표정의 변화가 하나 없어 ‘입맛에 맞지 않으셨나 보다..’ 하며 내심 아쉬워했던 손님이셨다.
그리고 다음날, 놀랍게도 손님 두 분은 다시 한번 더 이른 시간에 들려주셨고, 예상 밖으로 전날 먹었던 음식을 세 개나 더 포장주문해, 하나는 두 분이서 가게에 앉아 다 드시곤 두 개는 숙소로 돌아가 또 드실 거라며 챙기셨다.
그것이 신나고 놀라워 가슴이 한가득 뛰었더랬다! (맞다, 신나고 놀라워한 내 마음은 표출을 참고 참아 내 마음속에서만 펄쩍펄쩍 거리며 오도방정을 떨고 있었다.) 그치만 뭐랄까.. 아무리 신난 마음을 숨겨도 궁금함은 또 못 참겠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던 나. 음식을 만드는 동안 꾸-욱 참고서, 포장을 건네드리며 수줍은 말을 건넸다.
“놀러 오신 거예요? 어제 음식이 입맛에 맞으셨나 봐요. 너무 다행이에요.”
“아, 네! 잠깐 한국에 들린 동안 여기저기 다니고 우연히 어제 여길 온 거였는데 크로와상 샌드위치 너무 맛있어서 둘 다 생각나서 또 왔어요. 오늘 서울로 돌아가요.”
웬걸.
꽤나 소심한 나는, 가게에서 손님분들께서 식사하는 동안 표정이 안 좋거나 변화가 없거나 말없이 식사만 하시고 가면 뭐랄까… 즐거움을 주지 못한 나의 잘못이나 책임처럼 느껴진달까. (무표정이 꼭 즐겁지 않다는 뜻도 아닌데 말이야!! 평소 리액션이 크고 표현하길 즐기고 좋아하는 나에겐 꽤나 어려운 부분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친근함을 앞장 세워 말을 거는 걸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더욱이 정중하게 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의 모습으로 짐작컨대 두 분은 대화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아주 용기 내어 조심스레 말을 건네었는데.
환하게 표정이 바뀌며 너무 친절하고도 예상치 못한 대답을 또 들은 것이 아닌가.
‘또 생각나서. 또 생각나서 라니!!!!’
그거 아는가.
나처럼 표현과 감정이 많은 사람이 꽤 담담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담담한 사람이 전혀 예상치 못하게 호의를 보여주면 갑자기 마음속에서 무지개, 꽃이 가득가득 피어올라 뭉글뭉글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짧은 대화 끝에 여성분은 이스라엘에서 오신 분이라는 걸 알았다.
“이스라엘이요!! 처음으로 만난 이스라엘 손님이세요!!!”
반가움이 가득. 이스라엘 손님분을 처음으로 만난 것이었는데 신나서 여러 대화를 하다 보니, 또 두 분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졌다. 이 순간은 또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추억인가, 싶어 두 분 앞에서 카메라를 드니 멋진 포즈를 남겨주셨던 손님.
이 날의 반가움이 여전히 생생한데, 그로부터 약 일 년 뒤, 또 다른 이스라엘 손님분들을 두 번이나 맞이하게 되었다.
다음 해 여름의 끝자락.
팔월의 끝을 향해 가고 있을 무렵, 커다란 배낭가방을 이고 온 두 명의 아릿따운 손님분들이 가게에 들어섰다.
부엌 앞 테이블로 자리를 잡은 두 분은 메뉴판을 보더니 내게 와사비토푸샐러드 두 접시와 오렌지주스 두 잔을 주문하셨다.
가끔 ‘아주 놀라운 타이밍!’이라고 외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 날도 그런 날이었다. 어떤 놀라운 타이밍이었냐면, 내가 오픈 때부터 변함없이 유지해오고 있던 메뉴 중에 비건손님분들이 (특히 외국 비건손님분들께서) 가장 좋아해 주셨던 메뉴가 [와사비토푸샐러드]였다.
알싸한 와사비향이 감도는 소스는 아마 그들에게 아주 생소하고 처음 맛보는 달짝지근하고도 쎄한 맛이었을 텐데 이것이 간장베이스를 두고 만드는 것이라 동양에서 맛보기에 더 즐거움을 주기 충분한 소스였다. 거기에 시장에서 만들어진 탄탄하고 속이 꽉 찬 우리나라식 손두부와 그들에겐 익숙한 병아리콩볶음까지 더해지니 든든하고도 이색적이면서 속에 부담이 없는 건강식으로 즐거움을 맛보기에 충분한 메뉴였다. 그런 메뉴였거늘, 와사비소스를 더 이상 지속시킬 수가 없는 형편이 되었다. 내가 공급받아 온 식재료가 어느 순간 가격이 두배로 뛰어오르더니, 급기야 공급이 멈춘 것이 아닌가.
다른 식재료로 대처할 수 있으면 좋았을련만 아무래도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상태에 따라 너무도 다른 맛을 내기에 똑같은 소스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샐러드는 재료의 싱싱함은 물론이거니와, 소스의 맛이 음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길고 긴 고민 끝에 이 메뉴는 이번에 만들어 둔 소스가 할당되는데 까지만 내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 두 분이 오기 전, 마침 소스가 딱 2인분의 양만 남아있었고 결론적으로 나는 이날 남은 시간 동안 두 접시의 토푸샐러드를 내고 나면 더 이상 한동안은 이 메뉴는 볼 수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웬걸. 두 분이 이 ‘마지막’ 와사비토푸샐러드의 주인공이 되셨고, 그것이 너무도 의미 있고 충만한 마지막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두 분이 샐러드 접시를 깔끔하게 비운 뒤, “너무 맛있고 만족스러운 비건 식사”였다며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온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이렇게 만족스럽게 식사한 두 분에게 이 마지막 메뉴를 건네드릴 수 있었던 게 나에게도 행운, 두 분에게도 행운이었던 것이다. 참 절묘하고도 멋진 타이밍! (가끔 인생에서 우린 이런 순간들을 마주한다. 이것도 마법같은 순간이 아니겠는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두 분은 이스라엘분이었고, 모두 비건이셨다.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고 현재는 한 분은 런던에, 한 분은 미국에 사신다고 하셨다. 그러니 이렇게 다른 지역에 살면서도 함께 먼 지역을 우정여행으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겠던가. (신기하고 또 아이러니하게도) 여느 손님과 같이 두 분에게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건강한 에너지가 가득 뿜어져 나왔는데, 그것들이 어떠한 말들이나 행동으로 비춰지는 것 이상으로 단지 그 사람의 미소, 눈빛, 긍정적인 에너지같은 기운들이 뿜어져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신비롭고 아름답다. 두 분 역시 그러함을 느꼈기에 이 작은 만남조차 나에게 참 좋은 에너지가 되어오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 또 다른 좋은 에너지가 생기고, 그 에너지를 또 다른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가지고, 그런 만남이 선순환되면서 참 좋은 기운들을 몽상가에서 많이 느끼고 가졌음은 입 아플 정도로 말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감사하고 큰 복이었음을 또 한 번 생각한다.
두 분은 가게를 나가다 말고 잠시 뒤를 돌아 나에게 와 멈춰 섰다.
“나, 당신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가수가 있어요.”
“오, 그래요? 누구예요?”
“laufey. 정말 이 공간이랑 잘 어울리고 당신과 잘 어울려요. 너무 근사하게 어울려요. 당신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라… 철자가 어떻게 돼요?”
종이에 펜까지 동원해 내게 가수의 이름을 써서 보여준다. l a u f e y .
“꼭 들어봐요. 당신이 좋아할 거라고 확신하고, 이 공간에서 더없이 멋질 거 같아요.”
그리고 두 분과 인스타그램을 주고받은 뒤 우리는 즐겁게 헤어졌다.
두 분이 가게를 나선 뒤 그녀들이 종잇장에 써주고 간 가수의 이름을 유튜브에 검색해,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의 노래를 하나 틀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노래를 듣자마자 감격이 아닌 감동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공간과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라니.
이건 관심과 애정이 담긴 노래추천이 아닐까.
그리고 그 뒤, 내가 영업을 끝내는 순간까지 laufey의 노래는 참 많은 순간 가게에서 울려 퍼졌다.
feat. 내가 laufey노래를 자주 즐겨 듣고 가게에 틀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 sns계정으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한 분이 하버드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산다고만 했는데, 글쎄 하버드학생이었다니.
내가 하버드학생이었다면 당장에 “난 하버드에 다녀!”라고 묻지도 않았을 자랑을 신나게도 했을 텐데 말이야!
어쩐지 그러고 보니 두 분이 더 멋지고 당당해 보이는 건, 당연한 거겠지!
이스라엘의 멋진 만남이 그렇게 또 하나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날 이후,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로페이의 팬이 되었다.
“당신이 분명 좋아할 거예요.”라고 한 그녀들의 확신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가끔 혼자 늦지 않은 저녁에 로페이의 노래를 틀어놓고 와인 한잔 홀짝이며 분위기에 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