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몽상가의 한 단락이 끝나가던 가을날들.
카페를 운영한 지 일 년이 지나가는 여름, 이상하게도 그 해 여름은 유독스러울 만큼 피로함이 온몸을 감쌌다.
‘이상하네, 난 여름이 되면 몸과 정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반짝이며 깨어나는 시기인데!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지고 나른해지는 거지?’
이상했다. 빠르게 밝아오는 하늘을 마주하는 아침인데도 눈을 뜨질 못했다.
평소면 그 밝은 이른 햇볕이 반가워 새벽부터 바지런을 떨어 기지개를 한가득 켜며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걷어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 막 깨어난 자연을 예찬하며 새소리를 음미하고 아침공기를 찬양했을 모습인데, 아침 새소리에도, 이르게 밝아오는 여명에도 잠에 취해 여름 아침을 맞이하기가 힘들었다.
몸이 너무도 무겁고 눈꺼풀은 자꾸만 무게를 실어 눈을 감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나면 집에 도착해서 쓰러지듯 그 자리에 누워 몇 시간을 잠들곤 했다.
아무래도 여름에 이러는 내가 요상스럽긴 해도 그냥 ‘이상하네’ 생각하고는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아, 그런 생각은 했다.
‘겨울이 더 좋아지는 건가? 겨울에 몸이 더 깨어나는 내가 되어가는 걸까? 여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겨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꽃바람이 살랑일 봄에 스위스에서 예상치 못하게 맞이한 눈폭풍과 겨울왕국과 같은 풍경들을 마주하며 낭만을 알아버린 탓일까.
겨울이라면 치를 떨고 두려움에 잠식하던 내가 몸속을 파고드는 추위에도 신난다며 스카프를 둘둘 둘러메고 하루에 몇 번을 나가 젖은 신발을 동동 거리며 ‘겨울이 좋아지려 해’ ‘아니, 겨울이 좋아졌어!’ 외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여름에 다가온 이 피로감은 잠시 다가와 머무르다 가는 피로라 생각했다. 지나가겠거늘, 생각하며 어느 때와 다름없이 움직이던 어느 날.
그날은 7월 10일 월요일이었다.
생일이 며칠 지난 친구를 축하해 주기 위한 저녁 약속이 있었고, 휴무 전날이었기에 모처럼 화장품까지 챙겨서 나섰던 날이었다.
이렇게만 듣는다면 그날의 아침이 꽤나 상쾌하고 가벼운 발걸음이 연상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요 몇 주 계속해서 피로감이 나를 잠으로 몰긴 했지만, ‘아무래도 몸이 이상하다’라고 느낄 정도로, 아니, ‘나 아무래도 아픈 거 같애’ 라고 느낄 정도로 피곤하진 않았는데.. 뭐랄까…. 정말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면 아프다고 느낄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몸의 이상한 변화를 느끼며 기어코 식은땀까지 동반해 차를 운전하고 출근을 했던 날이었다.
아프다고 느낄 만큼의 피로감을 동반해 출근까지 완료했는데. 식기를 정리하고 오픈을 준비하려던 그때,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머리가 팽글팽글 돌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아니라 줄줄 흐르기 시작했으며 구역질이 날 거 같은 기분이 휩싸였고 왠지 이 공간에 조금만 더 있다간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상에!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그날의 아침이었다!)
이렇게 당일날 갑작스럽게 가게를 닫는 날이 없었고 그럴 내가 아닌데도 긴 망설임 하나 없이 곧장 핸드폰을 열어 몽상가sns에 ‘하루 쉬어갑니다, 죄송해요’라는 공지를 띄우고 가게를 나왔다.
차를 운전할 컨디션이 전혀 아니었고 그 와중에 택시비는 아까워, 기어가듯 몸을 움직여 기어코 버스를 탄 나는 조금만 긴장을 풀었다면 버스 안에서 구토를 여러 번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마나 울렁거리고 머리가 팽글팽글 돌았는지.)
집까지 몇 정거장 남지 않았거늘 더 버틸 자신이 없었고, 가던 도중에 내린 나는 언니에게 곧장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내게 날아온 언니의 말은,
“너 임신 아니야?”였다.
임신…?
임신이라니?
임신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건, 이미 여러 번의 실망을 겪어본 터라 기대를 안 하고 있었고 임신의 기대와 계획을 뒤로하고 나는 몽상가에 더 열중하고 즐거움을 배로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여행에서 얻어온 새로운 활력과 에너지, 그리고 카페에 대한 애정에 더 물들어가던 때라 임신은 내 머릿속에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고 있었다.
“너 당장 약국가서 테스트기부터 사봐!! 당장!!!”
언니의 말을 들고 보니 바로 앞에 보이는 것도 마침 약국.
전화를 끊고 코 앞에 보이는 약국까지도 기어가듯 식은땀을 동반해 걸어갔고, 나는 임신테스트기 두 개를 사서 약국을 나왔다.
집에 도착해서는 아무런 힘이 남지 않았고 정말 쓰러지듯 나는 거실에 곧장 누워 몇 시간을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 눈을 떴을 땐, 핸드폰에 언니의 부재중이 여러 통이나 와있었고, 지체 말고 바로 확인해 보라는 언니의 연락이 남겨져 있었다.
그제야 몸을 간신히 일으켜 일말의 기대도 없이 테스트기를 챙겨 화장실로 향했는데…!
테스트기에 흐릿하지도 않고 선명하게 뜬 빨간 두줄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니까, 그간 나를 혼돈스럽게 만들었던 커다란 피로감이 다름 아닌 뱃속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상에. 나.. 그러니까, 내가.. 엄마가 된 거야? 내 뱃속에.. 내 아이가 생긴 거야????!!!”
보면서도 믿기지 않고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그 와중에 그것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던 나는 갑자기 또 다른 생명력을 얻은 듯 활기를 얻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그간의 내 몸상태가 단번에 이해될 수 있었다.
참으로 생명은 놀랍고 인체의 신비도 놀랍다. 다음날 병원으로 향했던 나는, 6-7주 정도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뱃속에 동그랗게 자리 잡힌 아기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초반엔 필시 조심해야 한다는 여러 경고를 들으면서도 몸을 움직이는데 큰 거리낌을 두진 않았다.
아이를 보호하면서도 내 몸을 움직여 카페를 건강하게 운영하는 것이 이 시기에 나의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뱃속에 안고서도 몇 달을 혼자 더 운영해 간 나는, 점점 배가 더 불러오는 시기가 되어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는데, 카페는 문을 닫아야겠다는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훗날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와, 아쉽지 않냐고, 섭섭하지 않냐고들 물어왔지만 나는 카페를 닫으면서도 사실은 알고 있었던 나 혼자만의 비밀이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카페를 운영한 기간은 1년 반. 정확하게는 1년 5개월.
가게를 운영하는 기간으로는 너무도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출을 못 내서도 아니었고, 작은 가게였지만 경영부족의 문제도 아니었고, 손님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손님분들이 작게 작게 입소문을 타고 와, 찾는 이들의 폭이 넓어졌으며 단골이 되어 동네 이웃처럼 얼굴을 자주 마주하는 따뜻한 손님들도 조금씩 많아졌으며 내가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느끼고 깨닫고 터득하는 요령과 배움이 점점 많아졌다.
그렇지만 내가 가게를 닫는 이유는 당장 카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생겨서였고, 그건 다름 아닌 내 뱃속에 자라나고 있는 새 생명, 내 아이였으며 나는 적정 기간, 지금 나에게 더없이 중요하고 집중해야 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이 순간은 아이 곁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내가 이 시기에,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기 전, 아주 깊게 고민하던 부분이 있었다. 내가 애정을 들이고 공을 들여 공간을 만든 만큼 이 공간에서 오랫동안 카페를 운영한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공간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때가 온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건물의 여러 문제점과 얽힌 문제들이 상당수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매출을 올리면 올릴수록 나에게 마이너스가 생기는 부분까지 생기기 시작해, 경영적인 부분에 고민이 깊어지던 때였다. 또한 내가 운영하는 동안 더 좋은 쪽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디벨롭시킬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 아쉬움이 내게 큰 발목을 붙잡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말이 길어질 거 같으니, 생략을 해야 할 듯하다. 가게를 운영해 본다면 알겠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단지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매출을 잘 내고, 좋은 질을 유지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 뒤에서 이루어지는 재정문제, 예를 들어 세금문제, 그리고 건물에서 발생되는 문제점과 그것을 다루는 건물주와의 상황들 등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고려해야 되는 부분은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다. 인생은 언제든 어떻게 어떤 상황이 내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중요한 건, 그것들을 어떻게 좋은 쪽으로 가능한 상황 내에서 더 발전시켜 내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10월 말을 마지막으로 카페를 닫게 되었고, 그 소식은 아쉬움보다 반갑게 손님들에게 알리게 되었다.
정말로 아쉬움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다.
나는 훗날 더 발전되고, 더 멋진 모습으로 카페를 만들어낼 테고 그때를 기약하며 다시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할 상상도 다 되었으니까.
긴긴 훗날의 모습도 마음은 준비를 마쳤다.
그러니, 우리 아쉬움보다는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날 기대를 하길..!
sns에 아이의 소식과 함께, 10월 말 카페를 닫게 되었다는 소식까지 올리고 나니, 내가 카페를 마무리 짓는 그 마지막날까지 한동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해서 카페에 마주했다.
반가운 손님들, 지인들, 이웃들.
그렇게 나는 정말 축복과 행복 속에, 카페의 한 단락을 마무리했으며 신나게 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향해 갈 준비를 마쳤다.
정말로,
1년 반동안 동화였고, 꿈같았던 여행이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나는 참 복이 많다.
짧은 시간마저도 고생했다며 예쁜 꽃들과 축복을 건네주는 이들이 많았고 며칠 내도록 싱글싱글한 꽃들의 향연이 카페를 에워쌌다.
오픈한지 며칠이 지나서 처음 이 곳을 들렸다가 단골이 되어 먼 진주에서 참 여러번 오고, 예쁜 손편지까지 건네주었던 단골손님도 마지막을 찾아와 함께 해주었으며, 여러 손님들이 마지막인사를 위해 발걸음을 귀하게 건네주셨다.
또다른 시작, 내 아이를 축복해주었고
많은 분들이 카페를 문 닫은 이후도 자주 이 공간과 나와 그들을 추억해주셨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난다면 그때엔 어떤 모습과 어떤 행복과 어떤 꿈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