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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Jun 29. 2024

“뉴스에서만 봤나요?” 이스라엘부부의 열띤 토로

전혀 몰랐던 그 나라들. ep2

멋진 두 여성분을 맞이한 며칠 뒤, 나는 또 다른 이스라엘 부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리를 크게 다치셨는지 발끝부터 무릎까지 꽁꽁 싸멘 깁스를 한쪽 다리에 맨 여성분과 유럽에서 자주 맡았던 진한 페라리향수로 온몸을 감싸 안은 남성분이 함께 하셨다.

‘엇, 이 향은!’

코 끝을 한가득 에워싸는, 손님이 먼 곳에서부터 머금고 온 향수향 덕에 이 공간에서 먼 이국의 향을 맡는다.

잠시간 유럽여행의 추억에 젖으려 할 때쯤, 두 분의 부름에 테이블로 향했다.

무언가 심각해 보였는데, 메뉴판을 한참 보고는 내게 물어온 질문은 “샐러드를 먹고 싶은데, 소스가 뭔가요?”였다.

말에는 비단 ‘글자’뿐만이 아닌 표정과 억양, 말에 담긴 힘, 악센트와 같은 모든 뉘앙스가 담겨있어 글귀만으로는 ‘말’을 담기란 한계가 있다.

“샐러드에 소스가 뭔가요?”라는 글자로는 담을 수 없는 그들의 뉘앙스에는 뭐랄까, 글로만 볼 때는 느낄 수 없는 심각하고, 진지하고, 어딘지 모르게 좀 격앙되어 있는 어투가 느껴졌는데 그건 그들의 개성이 담긴 어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은 개성이라는 말은 순화에 가깝지만 말이다! 푸하하. 눈썹이 한껏 화가 나 있었다! 물론,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맛을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동양에서 자주 사용하는 간장베이스에 와사비가 들어가 있어서 알싸한 향이 있는 소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샐러드가 안되어요. 소스가 안되어서..”


내 대답을 듣고는 두 분은 다시 심각한 표정에 빠지셨다.

(그냥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다시 눈썹이 한껏 화난 모습이 되었고 엄지와 검지가 펼쳐져 턱을 괴고 있었다.)


“어차피 우린 그런 거 못 먹겠어요. 샐러드가 먹고 싶은데 혹시 가벼운 레몬소스는 없나요? 레몬드레싱? 샐러드는 그냥 야채만 있으면 돼요. 우린 샐러드가 너무 먹고 싶거든요. 음식에 샐러드가 없을 순 없어요.”


‘앗.’

그러니까, 그들이 원하는 드레싱이 무엇인지 간파가 되었다.

지중해식 샐러드에 많이 올라가 있는 아주 기본적인 드레싱. 레몬과 식초가 주가 되는 드레싱을 원하는 듯하였는데 아뿔싸, 샐러드야채에 가능한 재료들로 가니쉬를 만들어 드릴 순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드레싱을 만들어드릴 수 있는 재료가 없다.

당장 있는 재료로 만들어드리려니 어설픈 모양새로 만들 바에는 없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여 무척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모든 선택지를 건네 드릴 수 없는 내 작은 실력과 요리 폭에 대해 스스로의 아쉬움이 너무도 크게 들었다.

‘어려운 레시피도 아닌데…. 그러게 왜 난 그 흔하디 흔한 드레싱을 좀 더 연구하거나 공부하지 않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두지 않았을까. 재료들도 말이야.’


그런 생각까지는 과하지 않나, 생각한다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생각해 보면 그들에겐 아주 기본적인 드레싱이라 필요로 하는 경우가 꽤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가 어디서든 김치를 찾는 거처럼 말이다.

여태껏 찾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거나 행운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내 마음이라면.. 이런 모든 상황에서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능력과 준비가 항상 되어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것이 꽤나 하루를 아쉽고 속상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돌이켜보면 내 욕심이기도 했거니와 부족함과 자질에 대한 채찍질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날 저녁부터 다시 묵혀두었던 많은 레시피책들을 다시 꺼내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요리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여러 것들을 수용하고 접목해 보면서 내 것이 되기도 하고 발견이 되기도 하고. 혼자 운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메뉴개발에는 지쳐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시기엔 새로운 공부보다는 지금의 것들을 잘 유지하자,라는 마음이 더 컸으니.)


짧은 고민 끝에 나는 두 분에게 레몬드레싱은 없지만 간단한 발사믹오일은 드릴 수 있는데 그렇게라도 괜찮으시겠냐는 물음에 그것도 아쉬워하신다.

한참을 씁쓸한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가 그렇게라도 달라는 요청에 내심 상처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내 역할은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응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주문한 음식들과 함께 발사믹드레싱, 그리고 취향껏 믹싱하실 수 있게 깨끗하게 세척한 생레몬을 챙겨드렸는데 레몬을 보고는 두 분의 얼굴이 이내 화사하게 펴지셨다.

“thank you!”

“good”


그 짧은 만족감이 꽤나 쿨했는데 그것도 두 분을 잘 드러내는 쿨함이었달까.


처음엔 숨김없는 표정과 직선적인 표현들을 한껏 버무린 요청들이 꽤 까다롭고 날카로워 날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그것들이 내 능력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줄 것임을 분명하게 알았기에 난 오히려 그 불편함을 가져다주신 두 분께 감사했고 죄송했다.

‘이런 모든 요청과 니즈에도 ‘of course! no problem!’ 하고 당당히 내 능력껏, 메뉴에도 없는 소스들과 요리들을 척척, 내어줄 수 있다면 너무도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능력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그렇다. 어떤 순간도 머물러있을 수 없다.

아주 조금이나마, 미세하게라도 전진해 나가며 끝없이 우리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어쩌면 인생이 공부인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나가는 모든 것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공부를 요한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그런 당찬 다짐을 마음에 힘차게 다지고서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일을 하고 있으니 두 분은 어느새 음식을 비우고 내게 다가왔다.

계산을 하려는데 두 분이 이스라엘에서 오셨음을 알았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낯익은 나라였던가?’

아주 멀고 먼 뉴스에서만 보던 나라가 갑자기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연속해서 만난 그들이 어쩐지 친숙해지려 한다.


“반가워요. 얼마 전에도 이스라엘에서 온 손님분들을 만났어요.”


“oh? 그래요? 와본 적 있어요?”


‘앗, ‘이스라엘에 가보다..’ 전혀 생각도 못해봤다. 이스라엘을 여행지로 말이다.’


“아, 아니요. 실은 이스라엘에 대해 아는 게 잘 없어요.”


“이스라엘을 뉴스에서만 봤나요?”


이 질문에 대한 어떠한 답도 미안해질 참에, 갑자기 두 분의 눈빛이 반짝 타오른다.


“이스라엘에 여행객들이 많아요. 휴양지도 많고요.

뉴스에서만 봤다면 아마 전쟁에 관련된 모습만 알겠네요.

그게 다 미국때문이죠. 미국의 abc뉴스 따위가 온갖 과장된 내용들을 쏟아내고 있거든요. 그건 실제가 아니에요.”


갑자기 여성분의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고양되는 것을 느꼈는데 그 모습에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왜곡된 진실에 대한 분노, 아쉬움, 안타까움, 그 모든 것들이 섞여있는 그녀의 개탄스러움이 담긴 열띤 토로였다.


그 열띤 그녀의 이야기에 표정을 읽지 못했다면 분노만 느껴졌을 테지만, 그녀의 표정에 진심이 너무도 많이 묻어나, 나의 무지함에 대한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생각해 보니, 내가 외국에 나가 “한국인입니다.”라고 했을 때 “north korea? south korea?”라는 질문을 받고 ‘여전히 전쟁 중인 위험한 나라, 발달이 더딘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마주 대했을 때의 당황스러움, 알게 모르게 차오른 분노, 씁쓸함, 등등이 지금 나의 태도와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어쩌면 그들에게 나는 너무도 무지하고 몰상식해서 무례한 외국인일지도 모른다.

단지 뉴스에서만 접한 위험한 나라.


그곳도 사람이 사는 우리와 같은 한 나라인데, 나는 아주 한 그림만을 보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까지 미쳤을 때, 나는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호기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애착을 가지고 나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그녀의 모국에 대한 이야기와 정보들, 크나큰 몸짓과 손짓, 다양한 표정들을 한껏 버무려 내게 가져다준 것들을 즐겁고 신나게 들었다.

나의 집중이 느껴졌는지, 어느새 두 분은 핸드폰을 켜서 그들의 나라에 가장 아름답다는 휴양지, 여행객들이 사랑하는 도시들의 사진들을 구글에서 검색해 여럿 보여주기 시작했다. 영어가 미숙해 모든 말들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나에게 성심성의껏 온 마음을 다해 열정적으로 알려주는 이스라엘은, 뭐랄까, 그쯤 되니 꼭 살면서 한 번은 가봐야 하는 나라처럼 느껴진다. 신성하고도 아름답고, 역사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지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나라.


어느새 전쟁이란 단어가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내가 뉴스에서만 본모습과 실제의 이스라엘은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처참하고 비극적인 전쟁현실이 사실이 아닌 건 아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사실을.



참 즐겁다.

몽상가에서 만난 손님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으며, 새로운 사람도 만났으며, 여전히 작은 나의 시선의 폭에 부끄러움을 알았으며, 몰랐던 이해의 폭이 조금은 더 넓어지기도 했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좀 더 알아가게 되었다.


처음엔 까다롭고 어렵게 느껴졌던 손님에게서 또 다른 깊은 진심을 느끼게 되고 나의 부족함도 느끼게 되었으니 여러 가지로 이로운 하루이기도 했다.


그들 역시 가게를 나서는 순간의 흡족스런 표정과 산뜻하게 가벼워진 발걸음을 보고 있자니, 나에게 알려준 ’이스라엘‘이라는 모국의 모습이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아마도, 그들 역시 하루가 산뜻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이라면 아마 다른 곳에서도 아주 열정적이고 열띠게 무언가에 대해 토로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무언가 화난 거 같고 불만스러워 보이던 그 모습 아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열정이라는 모습을 쓴 하나의 가면일 뿐이라는 걸!

그들의 열정의 한 모습이라는 걸!


인상 깊었던 그들이, 어쩐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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