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는 거울은 결국 나 자신이었네
아침마다 양재천(良才川)을 걸었다.
양재천은 과천 관악산 기슭에서 시작되어 서초구와 강남구를 가로질러 개포동까지 흐르는데 지난 90년대부터 냇물을 따라 생태공원이 조성되었고 그 양쪽 냇가 길이 아주 성공적인 산책로로 모습이 바뀌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강남의 명소이다. 약 3년 전에 큰 딸네가 강남으로 이사를 왔기에 한국에 오면 딸네 집에 머무는 우리 부부도 아침마다 이곳으로 산책을 나온다. 아파트에서 나와 5분쯤 걸으면 양재천을 만나는데 개천의 오른쪽으로 가면 도곡동을 지나 시민의 숲 쪽으로 가게 되고 왼쪽을 택하면 영동 5교 쪽으로 가다가 한강과 합류하는 방향으로 가는 데 어느 쪽을 택하건 모두 훌륭한 산책길이다. 양쪽의 산책로 한가운데를 흐르는 냇물은 제법 넓고 깊어서 물고기들도 많고 물도 꽤나 맑아서 때때로 주변에 사람들이 없을 때는 제법 호젓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여하튼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강남 한구석에 이런 훌륭한 휴식처가 있다는 것은 너무도 고마운 일이었고 특히 뉴질랜드와 같은 자연 지향적인 나라에서 온 우리 부부에게는 아침마다 하루를 살아갈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곳이었다.
그날 아침도 날이 밝자 아내와 더불어 아파트를 나왔다. 딸네 집에 키우는 강아지도 같이 데리고 나왔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강아지이지만 어찌나 우리를 잘 따르는지 아침 산책엔 꼭 데리고 나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를 치며 따라다니는 강아지가 있기에 우리 부부의 아침 산책은 심심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하늘은 높았고 냇가 양쪽에 도열하듯 심어진 버드나무들은 그 풍성한 머리채를 마음껏 앞으로 숙여 인사를 하듯 우리를 맞았다.
양재천의 돌 징검다리
'송사리가 꽤 많아요, "하고 강아지와 더불어 먼저 징검다리를 건너던 아내가 냇물 한가운데의 돌 위에 서서 내게 말했다. "아, 그래! 어디 봐요, "하면서 다가가 나도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아내의 말대로 맑은 물속에선 작은 송사리 떼가 무리무리 지어 한가롭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 복잡하고 혼탁한 도심의 한가운데로 냇물이 흐른다는 것도 감사한데 그 속에서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송사리 떼를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감회가 가슴속을 오갔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송사리 떼들은 어느덧 사라졌고 물속에선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조금 뒤 모든 얼굴들은 사라지고 낯익은 사내 얼굴 하나만 남아있었다. 그 사내의 얼굴 위로 잔잔히 흐르는 물결과 더불어 지나간 세월의 그림자도 같이 흘렀다. "뭐 하세요? 그만 오세요." 벌써 냇물을 건너간 아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나도 내를 건넜다. 냇가를 따라 벋어 나간 산책길에는 좀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그 사람들 속에 섞여 나도 아내도 양재천의 아침을 걸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시를 한 편 적었다.
그 아침에 냇가를 걸으며
그 아침에 냇가를 걸으며
나는 물만 보았네
흐르는 물을 보며 난 생각했네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인(鑑於人)
냇가를 걷는 많은 사람들
나를 비춰 볼 사람은 누구일까
둘레둘레 둘러보았지만
난 만날 수 없었네 날 비춰줄 그 누군가
그래 난 다시 생각했네
무감어인(無鑑於人) 감어수(鑑於水)
나는 다시 물을 들여다보았네
이윽고 물속에서 떠오르는
누군가의 얼굴 얼굴 얼굴……
그중에 나를 닮은 얼굴 하나
그 아침 흐르는 냇물 속에서 나는 나를 찾았네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기(鑑於己)
나를 비추는 거울은 결국 나 자신이었네.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인(鑑於人)
거울이 흔치 않던 옛날에 물은 거울 대신이었다. 그러나 물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겉모습일 뿐이다. 그래서 내 참모습 혹은 속모습을 보려면 물 대신 사람들의 마음에 비친 나를 보라고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였던 묵자(墨子)가)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인(鑑於人)’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참으로 귀한 말씀이지만 오늘의 현실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물(水)은 묵자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변함이 없지만 사람들(人)은 변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나를 비추어 줄 사람들이 올바른 거울이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엔 사방을 둘러보아도 올바른 거울 역할을 할 사람들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어디나 비슷하지만 이런 불행한 상황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정치판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입만 열면 상대방을 욕하기에 바쁘고 뒷구멍으로는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쁘다. 소위 사회의 지도층에 있다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과연 저들 중의 누구를 나를 비추어 줄 거울로 삼아야 할까 생각할 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자신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비추어보기(鑑於人)’보다 우선 스스로를 돌아보며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위에 쓴 졸시(拙詩)의 마지막을 ‘무감어수(無鑑於水) 감어기(鑑於己)’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침 양재천 흐르는 물속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얼굴 속에서 끝내 만난 얼굴이 나였기에 “나를 비추는 거울은 결국 내 자신이었네’라고 고백한 것이었다.
2016. 10. 7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