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흘러가는 시냇물을 껴안은 듯
유연하게 내 품을 빠져나갔다가도
금세 돌아와 무릎 아래 몸을 비비며
그릉그릉 말을 건네던 너였는데
네 몸짓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나는
흘러간 시냇물은 돌아오지 않는단 사실을
한참 늦어버린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고
그때 넌 이미 저만치 흘러가 버린 뒤였다
쉴 새 없이 제 몸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발치에 걸리는 무엇이든 밀어내던 네가
나는 그저 신기하고 기특한 마음에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만 보았는데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는 네 본능이
내 흔적까지 모두 지워버리진 않을까
틈만 나면 다가가 귀찮게 했던 내가 미워
저 멀리 밀어내지 않을까 두렵다
네가 바라지 않을 걸 빤히 알면서도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라 태어나라
옷장 깊숙한 곳 배냇저고리를 꺼내어
잡을 온기도 없는 작은 몸에 끼워 넣으니
갓난아이와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도
나를 떠나려 하는 네가 다시금 야속해
가까스로 넘긴 슬픔이 목에 걸린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가슴을 내리친다
이토록 어리석은 나의 모습 때문에
혹여 네게 슬픔이 번졌을까 걱정도 잠시
너를 닮은 연갈색의 흙더미 너머로
활짝 핀 팬지 한 송이가 꼬리를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