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무 고려 없이 떨어진 작은 상자 안엔
쳇바퀴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어
정해진 운명의 굴레에 오를 수밖에
이따금 입을 벌려 숨을 크게 들이켜면
시간을 좀먹던 앞니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금세 뜨거운 속살 아래로 자취를 감춘다
새끼손가락 한번 걸어본 적 없건만
소리 없는 알람의 파도에 등이 떠밀리듯
똑같은 어제가 차곡차곡 나를 이루고
무수한 복제품 중 하나일 뿐인 내게
하늘이 일방적으로 선사한 예지력은
내일의 내 모습까지도 가늠하게 만든다
상자 너머를 지향하는 불투명한 동경
그에 반해 이 공간은 말간 지옥이요
다른 말로 나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