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권태로움이 지속되고 있다면
주말이면 침대에만 있는 날들이 몇 주째 이어지고 있다. 부쩍 차가워진 바깥 날씨를 탓하며 전기장판에서 귤이나 까먹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굳센 믿음 하나로 이불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가을은 한창이라 조금만 눈을 돌려도 청명한 가을 하늘과 알록달록한 단풍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애써 가을의 완연함을 무시한 채 포근한 이불이 주는 안락함만 누리고 있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감기처럼 가을의 냄새를 타고 또 왔나 보다. 지독한 권태로움의 시기가. 내 삶에 찾아온 권태를 감지하는 몇 가지 단서들이 있다.
- 무기력함을 변명삼아 게으르게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 때
- 도무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에너지가 없을 때
- 이런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될 때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표정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사람도 나를 보고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알았을 때 불현듯 도망치고 싶어졌다. 맞아, 이럴 때는 내 피부와 같은 애착 잠옷은 잠시 침대에 벗어두고 익숙한 집을 떠나 잠깐 도망치는 것이 좋다.
오랜 시간 나에게 맞춰진 집은 안정감을 주지만 이 안정감은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해서 때로는 새로운 공기를 맡으며 삶을 숙고해 볼 기회를 빼앗는다. 가출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외출이지만 오늘은 결연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서기 전과 후의 내가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바라며. 어디로 가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으면서 되도록 맛있는 디저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서교동으로 향했다. 가을에 읽으려고 사 두었던 얇은 책 한 권과 수첩 하나를 챙겨, 가보지 않았지만 조용하고 카페의 본래 목적에 충실한 곳을 찾아본다.
아뿔싸. 찾아둔 뺑오 쇼콜라 맛집이 문을 닫았다. 계획에 차질이 생겨 잠깐 절망했지만 괜찮다. 다시 지도맵을 켜 근처에 저장해 둔 별표를 찾아 방향을 다시 튼다. 바로 옆 골목에는 이미 가본 적도 있고 블루리본도 받은 완벽히 검증된 곳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안전한 선택지를 고르고 싶지 않다. 집을 도망쳐온 날에는 약간의 변수가 필요하다. 물론 그렇게 고른 곳도 지도맵에서 평점 4.8점을 유지하는 이미 검증된 곳이지만 그래도 첫 끼로 먹는 빵이 실패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직 본격적인 손님 러시가 시작될 시간은 아니어서인지 손님은 나 혼자이다. 어쩐지 벌써 지쳐 보이는 점원의 얼굴을 잠깐 올려다보고 쇼케이스로 눈을 돌린다. 후기에서도 맛있다고 했던 에그 타르트와 옥수수 타르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역시 오늘은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을린 옥수수 한 조각이 올라간 옥수수 타르트를 골랐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이미 테이블에는 타르트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놓여 있다. 옥수수 타르트를 칼로 가르니 콰직 하는 소리가 난다. 일단 눅눅한 타르트는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사등분한 타르트를 입에 넣어본다. 달콤하게 퍼지는 옥수수 크림과 이따금씩 씹히는 옥수수 알들이 서울 한 복판에서 만나기에는 꽤나 놀라운 맛이라 살며시 웃음이 피어오른다. 이 타이밍에 오늘 챙겨 온 책을 가방에서 꺼내본다.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 고른 필리프 들레름의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오늘의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린다.
봉지에서 크루아상 하나를 집어 든다. 따뜻한 기운은 여전한데 반죽은 조금 물러진 것 같다.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과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은, 그리고 사라져 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어쩌면 오늘 하루의 가장 좋은 부분일지도 모르는 마지막 타르트 한 조각을 먹으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나는 여전히 실패를 싫어하며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타고난 기질과 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항상성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라 이런 반나절의 작은 일탈로는 바뀔 턱이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했던 안전한 선택지들이 모여 나의 실험대를 완벽한 무균실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무균실은 안전하지만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지 않으면 작은 싹도 자라기 어렵다. 하물며 정보가 없는 새로운 세균의 침입에는 무척이나 취약하다. 그곳에서 매일 미세한 세팅값을 조절하며 연구일지만 쓰는 나는 작은 생명력도 틔워보지 못하고 조용히 말라가는 중이다. 그렇다. 나의 권태로움은 이 무균실에서부터 배양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연구원 같은 삶은 싫다. 부딪히고 좌절하더라도 툴툴 털어내고 까진 손으로 생명력을 틔워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오늘 내가 내린 결론이다. 조금 남은 아메리카노를 입 속으로 모두 털어 넣고 씩씩하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시 문을 밀고 가게를 나왔다.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번에는 꽤 오래 내 몸에 붙어 있던 권태감을 조금은 떼어놓고 온 것 같다.
역시 이런 날에는 잠깐 도망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