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두고 꺼내보는 글이 있나요?
계절이 가을보다 겨울에 가까워지면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조용한 나의 동굴 안에서 그동안 수집해 온 것들을 펼쳐놓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여기저기 들리는 캐럴과 반짝이는 트리에 금세 마음이 어수선해지곤 하니까요.
12월은 역시 회고와 잘 어울리는 달입니다. 잔잔한 캐럴이 있는 플레이리스트와 조금 높아진 바닥의 온도, 은은한 시나몬향이 나는 당근 케이크,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필사를 위한 노트와 펜이 있다면 오늘 나의 동굴은 완성됩니다.
겨울을 맞아 오랜만에 좋아했던 글을 찾아 필사를 했습니다. 저에게는 자이언티의 노래 가사처럼 힘이 들 때 초콜릿처럼 꺼내 먹는 글이 있는데요. 그런 글들은 놀랍게도 유명 작가의 글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글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아마도 완벽히 다듬어지지 않은 진솔한 글에서 오는 어떤 울림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는 직업인의 글을 좋아합니다. 담백하게 서술하지만 자신만의 뷰포인트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단단한 글에 마음이 끌립니다. 본업 작가가 아님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질투 나는 재능이지만, 그 재능보다 반짝이는 것은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를 부리지 않고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담담하게 쓰인 글은 마음에 오래 남아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저의 보물상자 속 고이 보관해 둔 글은 <실패에 우아할 것>이라는 허지원 심리학과 교수님의 칼럼입니다. 이유 없이 불안했던 시기에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무려 2018년에 작성된 글임에도 여전히 최신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을 구한 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글을 접한 이후로는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모호한 단어보다 '실패에 우아하자'는 씩씩한 구호를 더 많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10
그 시절에 좋아했던 글을 다시 꺼내 보면 더러 그 당시의 고민들과 응어리진 감정들이 함께 따라오곤 합니다. 그러나 예전만큼 힘들지 않은 이유는 이미 그 시간을 넘어 한 페이지에 갈무리해 두었기 때문일 테지요. 그러니 좋아했던 글을 다시 꺼내보는 행위는 그때보다 더 자란 내가 할 수 있는 용감한 놀이이기도 합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동굴에서 그 시절 좋아했던 글을 꺼내 놓는 12월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