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그대의 모든 철학 가운데서도 여전히 인간이어라.
오늘 학교에서 열린 창업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다.
흥미로운 발표들을 지나,
행사를 주최한 측의 장께서 폐회식 때 이런 말을 하셨다.
'저출산이 해결되지 않으면 2030년이면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률은 1%대, 2050년이면 잘하면 0%대, 못하면 마이너스라고 합니다 ...'
그리곤 참석한 사람들을 향한, 거창한 느낌이 있어 다시 표현하기엔 약간 남사스러운 응원의 메시지를 붙였다.
대한민국에 대한 비관적인 소리가 많이 들리는 시기이다. 그러지 않았던 적을 찾는 게 더 어렵겠지만 요즘엔 출산율이나 정치 관련 이슈들에 대한 정량적 통계가 구체적으로 제시되니 무시하기 어렵겠다. 다만 이젠 또 익숙해져 버렸다.
선택지는 세 개다.
안 되겠어. 하고 어딘가로 떠나거나.
안 되겠어. 하고 대책 같은 것을 위한 노력을 하거나.
그리고
모르겠어. 하고 잊어버리거나. 자극에 둔감해지고, 익숙해지는 것이다.
일단 나는 세 번째다.
나는 지금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복학한 대학생인 나는 내가 무얼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평범해 보이면서도 아주 스트레스를 받는 고민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질문이 타고 타고 들어가 결국 나는 왜 살고 있지? 란 질문에 다다랐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던가?
몰랐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출발하려고도 했으나, 행복한 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이 허무해지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절망적인 사고실험을 하고 행복이라는 것에 조금 다르게 접근하기로 했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행복이 목적이라면 모든 것이 정량화된 세상에서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그것이 자본주의, 자유주의, 생활 여건 향상의 상호연관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서 최고의 삶을 위해서라면 최강의 행복감을 느낀 순간 삶을 종료시켜야 할 것이다.
그럼 목적은 무엇인가?
더러는 목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 강사는 목적보다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한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 영상이 이 글을 쓰는 시발점이 된 것 같다. 그 영상은 수 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맹목의 위버멘쉬.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며, 결국엔 포기하게 될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행위와 마인드셋을 수단으로 가지는 것은 가능하다. 대략적으로라도 전제된 방향선상에서. 방향 없는 그런 행위는 가학적인 자기 계발이 아닐까.
우리는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크고 작은 꿈을 지녀야 한다. 꿈이라고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나만의' 꿈이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누구나 꿈은 있다. 어떤 철학에 매료돼 그것을 부정하는 시기가 있을 뿐. 하지만 결국 그 부정도 꿈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을 위해 노력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그것은 어떤 철학적 논리의 도구적인 사용으로써 달성될 수 있겠으나, 속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는 인물은 그 신념 자체를 위해 살기는 어렵다.
출산율 얘기에서 멀리도 왔다.
나중에 정말로 우리나라가 아주 힘들어지게 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적어도 나는 강철 같은 철학적 논리로 외부의 역경에도 꿈쩍 않는 위버멘쉬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을 인정하고, 나의 감정 욕심 꿈 모두를 인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도구는 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비관적이어도 떠나지 않는다. 나의 꿈은 가족과 역사를 저버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고, 외부의 스트레스가 나를 부시어도 끊임없이 보완하고 붙잡아야 하는 철학적 논리가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꿈, 삶의 방향은 죽는 한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인문학이 쇠퇴하고, 일각에선 강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강조하는 쪽(수로 서양 철학)에서도 인문학을 우리의 삶의 지표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것으로 홍보를 하곤 하는데, 사실 나는 이것에 약간의 의심을 가진다. '논리' 기반의 철학은 그리 튼튼하지 않다. 논리라는 것은 중요하지만 항상 맞지는 않다. 당장 보이는 내 휴대폰을 언어로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 문장이 필요할까? 고작 휴대폰이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회의주의 철학의 선구자였지만, 그는 현실적 삶은 철학과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은 기존 인간의 사고방식(특히 서양)에 반기를 들었지만 실제로 그는 좋은 풍채와 재치 있는 말솜씨로 주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Be a philosopher, but amid all your philosophy be still a man.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그대의 모든 철학 가운데서도 여전히 인간이어라.
- 데이비드 흄
추후 글에서 다룰 내용:
이 글의 '꿈'에 대한 정의.
종교는 꿈의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