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공시생의 자기 고백
잘못한 게 없는데도 이상하게 부끄러운 날들이다. 요 며칠 마음이 어지럽다. 바로 원인 모를 악취 때문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메스꺼움이 목과 코를 괴롭히고 있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금방이라도 토악질이 올라올 것 같아 코와 목에 힘을 주고 있다. 코끝에서 겉도는 갖가지 향들이 비릿하게 내 숨통을 쥐어 잡고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다. 당연히 호흡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라 원인불명의 메스꺼움이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개가 주인집의 고기 냄새를 훔쳐 맡듯 열성적으로 깨끗한 공기를 찾아 숨 쉬고 있다.
이런 투정을 부리기 전까지 내가 별다른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혹시나 제 몸에서 나는 냄새일까 싶어 청결에 부단히 애쓰고 있다. 평소보다 더 목욕용품의 양을 늘리고, 샤워 후 향수까지 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악취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더욱더 존재감을 부각한다. 내 집 세탁기는 소음을 내며 하루의 6시간을 돌고 있다. 이불도 세 번씩 빨았다. 하지만 악취를 없애기 위해 넣은 섬유유연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꽃향기 대신 운동화에 짓이겨진 비릿한 풀내음을 강하게 내뿜어대 고통스럽다. 그뿐이랴, 온갖 쓰레기란 쓰레기는 생기는 대로 바로 내버리고 있다. 냄새가 날 만한 쓰레기들은 물로 헹군 뒤에 버리는 정성마저 들인다. 화장실의 배수구는 물을 채운 비닐봉지로 막아두었다. 신지 않는 신발들은 방향제가 든 신발장에 다 담아뒀다. 식사 후의 그릇도 그 자리에서 씻어내고 정리해둔다. 그럼에도 악취는 여전하다.
혹시 이 건물에 사는 누군가가 급사라도 한 것이 아닐까 별 생각까지 다 든다. 예전에 아는 선배형네 옆집에 혼자 살던 할아버지가 비명횡사하고 사흘 뒤에 발견된 적이 있었다. 바퀴벌레가 꼬이고 건물에 알 수 없는 악취가 남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도통 모르다 구급대가 와서야 간신히 사정을 알고 엄청 놀랐다고 한다. 그 후 주인집 내외가 열심히 방을 닦고 흔적을 지우려 애썼지만 방과 벽지에 묻은 냄새가 떠나지 않아 부랴부랴 방을 빼 다른 자취방을 구했다고 했다. 그때 당시엔 연고도 없는 노인네가 자기 죽음이라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온몸으로 발악하며 악취를 열심히 내뿜어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멋몰랐던 새내기의 쓸데없는 감상이다.
직접 겪어보면 악취가 가득한 공간에 감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온갖 향조차 검은 악취에 사로잡혀 비린내만 남기는 공간에선 잠시나마 가졌던 연민마저 구역질과 혐오감에 잊힌다. 거기다 악취는 고약하게도 갖가지 냄새나는 것들을 시각화하고 두뇌에 잔상을 남긴다. 오전 여덟 시 길거리의 채 마르지 않은 토사물, 초등학교 현장학습으로 찾아갔던 하수처리장, 쥐약을 먹고 죽은 고양이의 시체, 냉장고 깊숙이 넣어뒀다 잊어버린 뿌연 우유병처럼. 거기엔 어떤 낭만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원래의 형체를 순식간에 갉아 내 온갖 잡다한 냄새들을 그러모아 압축하고 욱여넣은 채로 생의 숨결이 붙어있을 때 미약했던 존재감이 억울하다는 듯 열심히 악취를 내뿜어대는 거다. 끝까지 얼마나 명예롭지 못하고 얼마나 미련이 많은지. 악취란 그런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악취에 대한 내 원망은 차치하고, 날이 점점 추워 가는데 만날 창문을 활짝 열고 잠을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편하다. 힘들다. 지친다. 사는 것이 다 지치는 일이라지만 악취 때문에 그만두고 싶을 지경이라니 내가 이렇게 나약한가 싶기도 하다. 그냥 내 주거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것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만약 이 악취가 나 자신한테서 나는 거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어제는 끊이지 않는 악취를 피해 친구를 만나러 상수동으로 갔었다. 그런데 거까지 가는 동안에도 온갖 잡내가 진탕 섞여서 내 숨통을 쥐어 잡고 흔들어대던 것이다. 결국 나는 중간역에서 내려 벤치에 앉아 쉬어가야 했다. 다시 지하철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만약 이 냄새가 나한테서 나는 거면 어쩌나, 내가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기라도 하면 창피해서 어쩌지 하며. 그런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내 주위 사람들의 안색을 살피게 했다. 혹 그들이 코끝을 찡그리지는 않는지. 조용하게나마 욕을 내뱉지는 않는지. 그러는 와중에도 악취가 내 머리에서 난다면 샴푸를 바꾸고, 내 바지에서 난다면 이참에 새 바지를 사고, 운동화에서 난다면 운동화를 빨래방에 맡겨야지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코로 가는 신경을 부단히 외면하며 메스꺼움을 참아내야 했다.
어쩌면 나는 절망적으로 내게 나는 악취를 확인받고 싶어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저 원인을 나로 단정 짓고 ‘드디어 악취의 원인을 찾았구나!’ 호승감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 이 악취가 나한테만 느껴지는 것이라면?‘의 문제로 넘어가니 내 존재 자체가 역겨워졌다. 이상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혹여라도 눈이 마주칠까 화급히 눈을 내리깔면서. 마치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너무 창피하다고. 그래서 모두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그 죄송스러움을 차마 말로 꺼내지 못하고 냄새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너무나도 구차하게 잘난 거 하나 없이 그렇다고 죽지도 못한 채 그저 내가 이렇게 미안해하고 있다고 남들이 알아주기라도 바라면서 원인 모를 악취를 뿜어대는 게 아닐까.
어쩜 사과 방식마저 그렇게 이기적이고 비겁한지. 왜 이렇게 이기적인 인생일까 왜 남을 생각하지 못할까 부끄러움에 또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며 발걸음을 재촉하며 뛰어 걷듯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또다시 방안의 악취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악취는 나로부터 떠나지 못한 채 공기 중에 부유하며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악취를 지우기 위해 다른 역겨운 것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담배를 피워 보는 것은 어떨까. 담배 냄새는 역하니까 이 악취를 가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담배를 피워대기에도 베짱이 부족하다. 그것마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라고 생각하면 또 너무 부끄러워서 그냥 숨어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나는 그냥 이런 팔자인 것이다. 악취를 피우며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내가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들 여기 좀 보소 내 인생 좀 보소 하며 땅바닥을 치며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마른 눈물을 흘리는 그런 수치심이 없는 아낙네 같은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요 며칠째 느꼈던 악취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게 충격으로 돌아와 후각까지 마비시켜 버린다. 왜인지 악취는 옅어지고, 홀가분함이 느껴진다. 외면하는 것인지, 인정하고 극복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참 부끄러운 날들이다.
2015년 9월의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