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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는 Jun 29. 2022

20대의 나에게

나와, 화해하자

 옛날에 그렸던 낙서를 친구에게 보여주려다 10  썼던 일기장들을 보게 되었다. 3 나는 굉장히 목표지향적이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성격이었다. 페이지마다 반복적으로 적힌 계획서와 돈과 성공을 좇는 격언까지. 한량인 지금의 나와 멀고 낯설게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20대의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었다. 촛불을 들기 위해 광화문에 출근 도장을 찍었고, 여성주의 공부를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여성 재단에서 인턴을 가장한 무급 영한 번역 노동도 해봤고, 대학 여성주의 공부방에서 등록금 시위를 위해 삭발해보지 않겠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때는 “정의라는 가치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 있는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하게 해야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동지”들 겪을수록 점점 사람이 ‘ ‘정의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불편해졌고,   불편함을 느끼자 그들의 무장된 사고방식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하튼 나의 동료 찾기 여정은  가정사로 인해 멈추게 되었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세상은 상식보단 감정으로 돌아가며, 사람은 쉽게 변하진 않지만, 개인에겐 다양한 면이 있어 선악으로 쉽게 정의할  없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을    사람의 과거나 지금보다 앞으로  사람이 추구하는 ‘방향성 봐야 한다는 것을.


  또한 수많은 무례와 잘못을 남에게 범하며 나의 정의를 추구해왔다. 자신이 추구하는 선을 지키려다 감정이 격해지고, 타인의 정의를 검열하고, 나의 정의만이 답인 것마냥 상대를 가르쳐 상대가 질려 도망가는 것도 봤다. 그렇게  결과는 나의 동지가   있었던 사람을 잃는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만큼 타인들의 정의도 유의미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와 의견이 달라도 알아보고 들어 보고 이해하려 한다. 세상사에  떨어지는 정답이란 없고, 결국 선을 추구하는 우리들은 서로의 의견차를 좁히며 함께 가야 하는 동지다.




 그런 고로 요즘의 나는 뜨겁고 단단했던 과거와는 달리 온화하면서 물렁하다. 누군가에겐 답답해 보일  있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속도와 강도로 꾸준히  정의를 추구하고 있다. 20대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세상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화내거나 지치지 말고 주저앉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은 꾸준히 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세상엔 내가 모르지만 나와 비슷한 정의를 위해 애쓰는 수많은 ‘들이 있다.


 그러니 현재의 순간에 집착하지 말고, 타인과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때로는 과정을 관망하듯 여유를 부리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의 정의를 추구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나의 동지들도 만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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