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는 Jul 11. 2022

몸의 우울 vs 지구의 우울

채식과 기후우울

 오늘 아침 식사에 닭가슴살을 얹어 먹었다. 채식을 지향하며 주말에만 고기를 먹자고 다짐한 내 규칙과 어긋난다. 삶의 불확실성을 좇으면서도 규칙을 중요시하는 인간인 나는 이런 자그마한 식단의 변화에도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오늘의 불편한 식단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서에 공복혈당장애가 떴기 때문이다.


 가족력이 없고 정상체중인 만 33세 나이. 당뇨를 걱정하기엔 이르다 생각했는데 덜컥 몇 년 안에 당뇨병 환자가 될 수도 있다니 머리를 댕 얻어맞은 것 같다. 그동안의 일상 습관과 내가 먹은 것을 뒤돌아보니, 채식이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굶고 제대로 밥을 챙겨 먹지 않는 내 몸의 우울 탓이다.



 채식을 시작한 때는 2020년 여름이었다. 그때 제주도엔 연달아 슈퍼 태풍이 왔다. 평소 태풍에 면역이 된 나조차 그해에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얼마나 세찼던지 비가 수평으로 꽂히듯 내렸다. 결국 건물 입구 인터폰이 침수가 돼 고장이 났다. 수리 기사님은 유난히 이번 태풍으로 이런 인터폰 고장이 몇십 건이라 이상하다고 하셨다. 이후 슈퍼 태풍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현상이라는 기사를 읽고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당시 나는 코로나로 인해 고꾸라지던 자영업자라 저절로 몸의 우울 수치가 증가하고 있었다. 잘 안 풀리는 딸을 지켜보며 걱정하는 부모님의 표정과 몸짓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갈려 나갔다.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라 근심거리가 되는 내 존재 자체가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지구의 위기 앞에서 내 슬픔은 너무 작게 느껴졌다. 나 하나 슬프고 우울한 것도 이렇게나 힘든데, 기후위기가 현실이 되고 기후 재앙이 온다면 얼마나 많은 고통이 생길까? 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채식을 공부하면서 이미 지구 상에 너무나 많은 고통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공장식 축산만 봐도 그랬다. 목축지를 늘리기 위해 파괴되는 산림, 육식용 가축을 기르기 위해 소비되는 많은 물과 곡식들. 그로 인한 온실 가스 배출과 수질 오염 등. 선진국 국민들을 배불리 먹일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지구촌 누군가는 오염된 물을 마시고 식량 부족으로 인한 기아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어나는 기후 위기의 여파를 제일 먼저 직격으로 맞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이상 기후를 체감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생존의 위기'로서 지구온난화나 기후 위기를 말하면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 국민인 나의 편의를 위해 지구 저 편 어딘가에선 고통받는 생(生)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그걸 깨닫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변하기로 했다.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선 주변에 선언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모든 동물석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비건'이 될 것을 선언했다. 마음속으로는 100일의 기한을 둔 '일시적' 비건이었지만 주변인들에겐 효과가 좋았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나를 바꾼 '기후 위기 공포와 비건' 신념을 수긍해야 했다.


  고기 생각이 안 날 때가 된 후엔, 붉은 고기를 제하고 생선까지는 먹는 '페스코'로 살았다. 그러나 나의 신념 때문에 나이 든 부모님들에게까지 고기를 드시지 말라고 강요할 순 없었다. 가족 식탁 위에 혼자서 딴 세상 밥을 먹는 딸과의 화해를 시도한 엄마 덕에, 우리 집은 가끔 고기반찬을 챙겨 먹는 '플렉시테리언'이 되었다.



 2년 가까이 채식 식단으로 바꾸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밖에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할 수 없으니 도시락을 싸다녔다. 그러나 지구의 위기를 줄이는 데 헌신한다는 뿌듯함 속에서도 나는 종종 몸의 우울을 느꼈다. 그리고 몸의 우울이 나를 압도할 때면 곡기를 끊었다. '밥값'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단죄였다. 그러다 우울함이 잦아들면 기분전환을 위해 단 것을 찾았다.


 밥을 씹어 목으로 넘기기가 어려운 날은 빵을 먹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는 카페로 달려가 달고 폭신폭신한 케이크를 사 먹었다. 채식 식단을 제대로 차려먹기 귀찮은 날엔 파스타를 해 먹었다. 일하다가 밥 먹을 시간을 놓치면 과자로 배를 채웠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됐다. 억울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론 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내 밥에 고기가 올라가는 일은 아직 불편하다. 앞으로 식단 공부를 통해 적절한 대체 식단을 찾아내고 조리법을 배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복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득이하게 눈앞에 있는 닭가슴살을 선택했다. 나의 '당장의 편의'를 위해 선택한 닭가슴살이 지구의 우울을 앞당긴다는 것은 조금은 불편하다.



 오늘 아침 '기후 우울'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최근 들어 체감하는 기후 변화에 무력감과 절망감을 호소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평소 환경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주변에서 기후 위기로 인해 몇 년 후 지구에게 이런 저런 불행이 닥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충격과 공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후 우울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체감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터의 수치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주지만 그만큼 불안을 몰고 오기도 한다. 오늘 아침의 내 공복혈당 수치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불안과 슬픔에 빠지기보다 내가 내게 닥친 식사를 충실히 해결하기로 다짐한 것처럼, 기후 변화를 체감하는 우리 모두가 바뀌기로 다짐하는 것이 먼저다. 지구의 우울을 내 몸의 우울로 가져오면 안 된다. 그러면 더더욱 바뀌기 어렵다. 변화를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의 자그마한 변화도, 개인과 개인이 모여 집단이 되고 사회가 된다면 지금의 나쁜 수치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걱정하며 변화하지 않는 것보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덜 틀고, 고기를 덜 먹는 것이 낫다. 이미 실천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다. 실천하고 변화하는 나를 더 격려하고 아껴 주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보다 오늘의 나를 더 사랑하자. 조금의 우울도 끼어들지 못하게 나를 꽉 안아주자.


 그러면 나를 둘러싼 세상에도 너그러워진다. 정체돼있고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가득 찬 세상이 아니라,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세상을 보며 그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오늘의 우울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게 몸의 우울이든 지구의 우울이든 말이다.



끝.


2019년 2월 칠레 아타카마
+) 표지와 위 사진들은 '세상에서 제일 건조한' 사막 아타카마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 아타카마는 폭우로 물난리가 났었습니다. 결국 모든 투어가 취소됐고, 잦은 정전으로 숙소에서 사람들과 열심히 젠가하고 수다 떨다, 도로가 뚫렸을 때 겨우 버스를 타고 탈출했었죠. 이 때가 제가 어렴풋이 기후 변화를 체감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한 감정을 어그러뜨리기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