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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는 Jul 18. 2022

불안한 감정을 어그러뜨리기 (3)

나의 불안 해소법 (3) 골목 여행하기

 나는 지독한 계획형 인간이지만 삶의 불확실성을 즐기기도 한다.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 나를 던져놓고 대처하는 걸 즐기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남들이 기피하는 여행지가 참 재밌다. 첫 여행지로 인도를 선택한 것이나 남미 여행을 갔던 것도 이런 성향과 배짱 덕분이다.


 여행지에서는 잠잘 곳만 정하고 무계획으로 돌아다닌다. 숙소에 며칠 머물면서 동네 산책을 하거나,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고 도시 곳곳을 목적 없이 걸어 다닌다. 특히 골목을 돌아다니는 일은 긴장감이 생기면서도 설렌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스페인에서 만난 언니는 바르셀로나 골목에서 강도들에게 폰을 뺏기지 않으려고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여행 경험이 적었던 나는 언니의 경험담을 듣고 잘 알지 못하는 거리와 사람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환한 대낮이 아니면 숙소에 갇혀 레고를 조립하거나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잠들지도 못하고 숙소에서 시간을 때울 때면, 내가 뭣하러 여기까지 돈 들여왔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처럼 공포에도 내성이 생긴다. 반복되는 자극 속에서 위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점차 자극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온 상점이 문을 닫아 밥을 사 먹기도 힘들던 때. 하릴없이 유독 한산해진 도시를 돌아다니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인데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골목을 걸어 다녔다.


 걸음을 재촉하지 않으며 얼굴에는 미소를 뗬다. 좁은 골목 안,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말이다. 그렇게 걸어 다녀보니 불안과 긴장은 사라지고 가이드북에선 보지 못하던 세계가 보였다.



 집주인의 취향이 엿보이는 대문, 지나가는 행인을 궁금해하는 개들, 분주히 걸음을 재촉해 지나가는 사람들, 낯선 여행자를 보고 당황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좁은 골목 사이사이, 마치 개미굴처럼 이어진 골목일수록 5초 뒤, 1분 뒤가 긴장되면서도 궁금했다.


 이후 나는 좋아하는 곳일수록 더 혼자만의 산책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에 빨래방을 갈 때였다. 지금도 어느 나라의 유명한 유적지보다 어디 도시의 빨래방을 향해 걸어가던 날들이 기억에 남는다. 모아둔 빨래를 챙겨 설렁설렁 골목을 걷다 보면 긴장과 불안이 가득한 한국에서 느끼지 못하는 여유로움에 마음이 안정됐었다.



개친구야 안녕!

 골목을 여행하던 기억은 좋게 남아 한국에서도 종종 동네 구경을 다닌다. 특히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집중하기 어려울 때면 몸을 가볍게 하고 무작정 걷는다. 일부러 눈에 익은 길은 피하고 낯선 길을 찾아 동네 구석구석을 탐험하듯 돌아다닌다.


 10년 넘게 산 내 동네마저도 걷다 보면 새롭다. 어느 집이 새로 페인트칠을 했는지, 어떤 집 대문 앞에 의자와 화분들이 있는지, 마당에 무슨 꽃을 키우는지, 누구네 개가 짖는지, 어느 가게가 문을 열었는지, 전봇대에 붙은 홍보용 전단지마저 꾹꾹 눈에 담아낸다.


 그러다 길을 잃고 담벼락들에 둘러싸여 방향 감각을 상실할 때도 있다. 이때는 잠깐이나마 미아가 된 기분을 즐긴다. 어디로 가든 결국 길은 통하기 마련이다. 머릿속에 그린 지도를 훑어보며 내가 걸어온 길과, 그냥 지나친 길,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길을 추측한다.


 그러고 나서 뚝심 있게 한 방향을 정해 걷는다. 결국 내가 걸어온 골목이 다른 골목과 연결되고 그래서 원하던 방향을 제대로 찾으면 작은 성취감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마음속에 골목 하나하나 동네 지도를 새로 그려 나가다 보면, 긴장과 불안으로 들떴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에 담기는 풍경마저 저마다 의미를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내 맘 속에 불안이 차 있다면 문을 열고 나가 골목을 여행하기를 권한다. 그게 내가 사는 동네이든, 낯선 동네이든 상관없다. 풍경에 어울리는 음악이 함께 한다면 더더욱 좋다. 맘 속에 그리는 지도가 커질수록 불안의 크기는 작아질 것이다. 눈에 담는 풍경들로부터 현재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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