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 해소법 (2) 지독한 계획형 인간 되기
평범하고 틀에 박힌 일상을 누리면서도 문득 차오르는 불안의 시작은 중이병을 온몸으로 뿜어대던 중2 때부터였다. 명절에 친척들과 화투를 치며 번번이 돈을 잃으면서도 하하호호했던 아빠. 그 아빠가 다음날 상상도 하지 못한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아빠의 사고와 함께 엄마의 부재가 길어졌고, 부모님이 가정으로 돌아오신 뒤부터는 아빠의 장애 후유증으로 인한 가족의 비극이 시작됐다.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포스터 문구가 딱이다. 한 순간의 사고로 나는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삶이 툭툭 던지는 돌 하나에도 무력한 인간은 발이 걸려 휘청거리고 넘어지고 고꾸라진다. 예측 가능한 미래를 위해 준비된 자세로 지금을 살더라도, 바로 몇 분 뒤에 죽을 수도 있다. 인생무상이다.
‘카르페디엠’
-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카르페디엠’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 삶의 덧없음을 먼저 알아버린 나는 시간 단위를 쪼개 하루 단위가 아닌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 나의 의지로 지금을 살고, 어떠한 선택으로 인한 망한 결과라도 나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박에 가까운 계획형 인간이 돼 불안에 맞서기 시작했다.
1. 주 계획 1을 세운다.
2. 계획 1이 변수에 의해 어긋났을 때 대처할 계획 2를 세운다.
3. 머릿속에서 1 ~ 2 과정을 시뮬레이션한다.
4. 계획 2가 변수에 의해 어긋났을 때 대처할 계획 3을 세운다.
5. 어떤 예측 못한 변수가 생겨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6. 최악으로 목숨을 잃는 변수를 상상하며 어차피 인생무상이라며 멘탈을 강화한다.
계획이 어그러져서 속상한가? 그러면 마음을 돌릴 다른 일을 준비해서 에너지를 쏟으면 된다.
나는 숨 쉬듯 계획을 짜는 게 버릇인 사람이라 매일 5가지 정도의 해야 할 일을 정해놓는다. 여기엔 급하게 처리해야 할 회사 업무를 비롯해 외국어 공부, 청소하기, 친구랑 수다 떨기, 게임 레벨업 등이 있는데, 일의 중요도나 수행 시간 및 수행 가치는 제각각이다. 하기로 한 주 계획 1이 어그러진다면 그 순간 이를 대체할 다른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고 거기에 집중한다. 어쨌든 하루를 되돌아보면 실행하지 못한 계획 대신 다른 것을 했으니 뿌듯한 건 똑같다. 미처 마치지 못하거나 실천하지 못한 계획은 다음에 하면 된다.
이에 더해 동기부여를 위해 나는 메모 앱과 폰의 스크린 캡처 기능을 자주 활용한다. 내가 수행한 계획들을 사진으로 찍어두고 개인 카페에 모아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무기력한 날이나 집중이 어려운 날, 사진 묶음을 보며 뿌듯함도 느끼고 자기 만족감도 키울 수 있다.
이런 나를 지켜보는 친구들은 날 지독하다고 평한다. 누군가는 나를 강박적인 사람으로 보고 우려하겠지만, 나 스스로는 이를 통해 불안을 줄이니 꽤나 만족스럽다. 그러나 스스로도 매우 힘든 방법이라는 걸 안다. 어찌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자신을 계획 안에 가둔 채, 불안이란 감정을 피하고 외면하는 것이다. 건강한 방법이려면 불안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이런 지독한 계획 세우기에도 불구하고 잠재워지지 않는 불안들도 있다. 특히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느낀 건데, 나의 개인적 멘탈 회복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는 코로나 시대는 나를 좌절시키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강박과 계획에서 벗어나 즉흥적인 불안 대처법을 탐구해야 했다.
(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