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 해소법 (1) 유리창 깨기
고백한다. 나는 지금 심장이 쿵쿵 뛴다. 당화혈색소 검사를 마치고 치즈케이크 녹차라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서일까? 간만에 한껏 들어간 카페인과 당의 영향도 있겠지만 요 며칠 마음을 붙잡아 에너지를 쏟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불안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을 때면 머릿속에서 원인을 하나하나 분석해 유리창에 가둔 뒤 망치로 깨부수는 상상을 한다. 망치에 와장창 깨지는 유리들을 상상하면 공포심이 조금은 사라진다. 하지만 강한 불안은 유리 한 장을 깨부수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여러 장의 유리를 깨야 한다. 마구잡이로 흩어져 쌓이는 유리 파편들을 보며, 파편 속에 가둬진 감정들조차 산산이 부서져 소멸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유리창 깨기 방법은 7살 때 터득한 방법이다. 내가 살던 시골집은 화장실이 밖에 있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집을 끼고 걷다 꺾어서 구석진 곳에 위치한 화장실로 들어가야 했다. 화장실 옆으로 내 키보다 큰 돌담이 대나무 숲을 끼고 처져 있어 은밀한 배변 활동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겐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수세식 화장실은 공포의 공간이었다. 화장실로 가는 골목에 서서, 발을 들여놓을까 말까 고민할 때마다 차오르는 오줌보와 함께 심장이 쿵쿵 뛰었다. 화장실 안에서도 내 눈에 닿지 않는 곳에서 나를 향해 팔이 뻗어올까 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간신히 용변을 해결하고 방에 들어와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두근거림을 혼자서 다스려야 했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서 유리창을 부쉈다. 한 장 두 장 유리를 깨다 보면 점차 두근거림이 가라앉고 홀로 누운 어둠 속에서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랬던 나는 어느 새부터 허상의 공포심을 잊고선 좀비와 고어 영화를 즐겨보는 대담한 사람으로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공포 영화는 초등학생 6학년 때 봤던 <미이라>다. 당시 악당 이모텝은 부활해서 인간을 하나씩 잡아먹으며 점점 인간의 형체를 갖춰 나갔다. 살이 없어 뼈가 보이는 근육으로 덮인 이모텝이 너무 무서워서 '얼른 사람을 잡아먹으라고!' 하며 인륜을 저버리는 망상을 하는 나 스스로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람은 자극에도 내성이 생겨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한 댔나? <미이라>를 보며 소리 지르던 순수한 나는 사라지고 이제는 웬만한 공포 영화나 피범벅인 영화들에 둔해졌다. 공포라는 자극에도 둔해질 수 있는데, 왜 나의 불안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은 감기 바이러스처럼 그 수와 변이가 넘쳐나, 매번 새롭게 자라서 내 존재를 갉아먹는 것 같다. 제대로 일상을 살기 위해, 불안에 지지 않기 위해, 나만의 불안 해소법을 찾아야 했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