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는 Jul 15. 2022

불안한 감정을 어그러뜨리기 (1)

나의 불안 해소법 (1) 유리창 깨기

 고백한다. 나는 지금 심장이 쿵쿵 뛴다. 당화혈색소 검사를 마치고 치즈케이크 녹차라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서일까? 간만에 한껏 들어간 카페인과 당의 영향도 있겠지만 요 며칠 마음을 붙잡아 에너지를 쏟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불안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을 때면 머릿속에서 원인을 하나하나 분석해 유리창에 가둔 뒤 망치로 깨부수는 상상을 한다. 망치에 와장창 깨지는 유리들을 상상하면 공포심이 조금은 사라진다. 하지만 강한 불안은 유리 한 장을 깨부수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럴 때면 여러 장의 유리를 깨야 한다. 마구잡이로 흩어져 쌓이는 유리 파편들을 보며, 파편 속에 가둬진 감정들조차 산산이 부서져 소멸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유리창 깨기 방법은 7살 때 터득한 방법이다. 내가 살던 시골집은 화장실이 밖에 있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집을 끼고 걷다 꺾어서 구석진 곳에 위치한 화장실로 들어가야 했다. 화장실 옆으로 내 키보다 큰 돌담이 대나무 숲을 끼고 처져 있어 은밀한 배변 활동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겐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수세식 화장실은 공포의 공간이었다. 화장실로 가는 골목에 서서, 발을 들여놓을까 말까 고민할 때마다 차오르는 오줌보와 함께 심장이 쿵쿵 뛰었다. 화장실 안에서도 내 눈에 닿지 않는 곳에서 나를 향해 팔이 뻗어올까 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간신히 용변을 해결하고 방에 들어와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두근거림을 혼자서 다스려야 했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서 유리창을 부쉈다. 한 장 두 장 유리를 깨다 보면 점차 두근거림이 가라앉고 홀로 누운 어둠 속에서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랬던 나는 어느 새부터 허상의 공포심을 잊고선 좀비와 고어 영화를 즐겨보는 대담한 사람으로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공포 영화는 초등학생 6학년 때 봤던 <미이라>다. 당시 악당 이모텝은 부활해서 인간을 하나씩 잡아먹으며 점점 인간의 형체를 갖춰 나갔다. 살이 없어 뼈가 보이는 근육으로 덮인 이모텝이 너무 무서워서 '얼른 사람을 잡아먹으라고!' 하며 인륜을 저버리는 망상을 하는 나 스스로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람은 자극에도 내성이 생겨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한 댔나? <미이라>를 보며 소리 지르던 순수한 나는 사라지고 이제는 웬만한 공포 영화나 피범벅인 영화들에 둔해졌다. 공포라는 자극에도 둔해질 수 있는데, 왜 나의 불안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은 감기 바이러스처럼 그 수와 변이가 넘쳐나, 매번 새롭게 자라서 내 존재를 갉아먹는 것 같다. 제대로 일상을 살기 위해, 불안에 지지 않기 위해, 나만의 불안 해소법을 찾아야 했다.



(2)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를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