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는 이유
고백한다. 요몇주 나는 가시가 돋쳐있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달뜬 나날을 보냈다. 숙연해지다가도 조증 환자처럼 밝음을 꾸며냈다. 이기적으로 나의 행복을 좇았다. 내가 두른 테두리 안 내 사람들만은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글을 쓰기도 싫었다.
나를 뒤덮은 생각은 불운과 사고였다. 타인의 불운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내 불운과 내 가족 얘기를 다시 꺼내기도 싫었다.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가족을 보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빗장을 걸어 잠갔다. 침묵하고 외면하기로 했다.
2022년 6월 주변의 권유로 얼렁뚱땅 브런치를 시작했다. 이왕 시작한 거 브런치북도 만들어보자 싶었고 결국 목표인 브런치북을 마감 당일에 끝냈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 밥상을 원합니다>는 가족 밥상에 얽힌 내 경험들을 풀어내면서 나를 괴롭히던 모든 것들과 화해하기 위해 쓴 글이다.
남들에게 읽히기보다 내 안의 분노를 비우기 위한 글이었다. 사실 더 많은 ’할 말‘이 있었지만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미완의 글이다. 브런치북 응모하기를 누르며 언젠가 내 첫 브런치북을 다시 다듬을 날이 있겠구나 싶었다.
글은 특수성을 가지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보편성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 밥상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지만 내 가족의 불운은 도무지 보편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내 글이 ‘솔직한 편’이라고 했지만 내 안에서는 그 말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런데 이 엉터리 브런치북이 어이없게도 브런치 메인에 일주일 넘게 떠 있었다. 우연히 들어온 브런치에 프롤로그 글이 ‘조회수가 8000을 돌파했다’는 알람이 떠 있었다. 갑자기 하루 방문자 수가 몇 백 명이 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내 브런치를 찾아오는 사람은 하루 1-2명이었다. 읽히지 않는 글보다 읽힐 수 있는 글이 낫다며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은 불편했다.
3일이면 브런치북이 내려가겠지 했는데 놀랍게도 일주일 넘게 조회수의 쏠쏠한 단맛을 보았다. ‘아, 이렇게 조회수를 쫓는 글을 쓰게 되나?’ 싶었다. 그럼에도 내 감정을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싫은 나날이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지 못하는 그 기간 동안 나는 가족과 과거의 불운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처음으로 아빠와 단둘이 어색한 외식을 했고, 엄마와 함께 오름을 오르며 사진을 찍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하며 이제껏 읽은 것의 열 배는 읽을 정도로 브런치를 돌아다녔다. 오늘 브런치에서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알람을 보내왔다. 이제는 통계 속 방문자가 다시 5명 이하로 내려갔기에 글을 쓴다.
to. 제 글을 구독해주신 분들께
안녕하세요. 문는입니다. 최근 왜 글을 쓰지 않았냐면… 제 마음에 헐거운 빗장이 걸려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서요.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무겁네요.
이왕 제 브런치를 구독해주셨으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담긴 아래의 글도 읽어주시겠어요? 저는 재밌게 읽었는데 구독자님들 취향에도 맞을지 모르겠네요.
음악 에세이를 목표로 시작했는데, 웃기게도 제가 첨부한 노래보다도 더 글이 길더라고요. 투머치 토커의 한계입니다. 다들 웃는 날이 더 많은 나날이 되기를, 진심을 다해 바랍니다. 오늘 하루가 버겁다면 일상에 헐거운 빗장을 거세요. 당신을 지키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렇더라고요.
22년 11월 13일
브런치 알람에 쫓겨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