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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는 Nov 27. 2022

개와 불안

”우리 개 한 마리 키울까?“란 엄마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불안 증세다.


내 경험상 불안 증세가 시작되면 내 몸에서 신체적 반응들이 나타난다. 심장이 내려앉으며 피의 흐름이 둔해지고 몸이 굳는 동시에, 등의 감각은 날카롭게 쭈뼛 서고, 목에서 머리로 이어진 부분에 칼끝이 겨눠진 듯한 서늘함을 느낀다. 이읗고 터질듯한 풍선을 한 아름 불어 비 오는 날 하늘로 날려 보내는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온다. 어느새 색색깔의 알록달록한 풍선들은 천이 찢어져 살이 벌어진 우산들이 되고,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뜬 우산들은 불안한 모습으로 휘청대며 바람에 나부끼다, 땅으로 떨어져 지상의 것들을 부순다. 그게 차든, 인간이든 말이다. 내 불안은 그런 불안이다. 결국은 내 안이든, 밖이든 파괴할 것 같은 불안감이다.


불안증의 원인에 대해선 아직 입 밖으로 내기 힘들다. 그 불안한 감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문장으로, 단어로 잘게 다져 꿀꺽 삼킬 수조차 없다. 조금만 밝히자면 지금의 삶이 주는 안정성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리마의 ‘텔레토비 동산(그런 건 없다)’에서 본 평화로운 냥이들

사실 나는 꽤나 동물을 좋아해 작가명도 ’북극곰‘을 뒤집어 ’문는‘으로 지었다. 고양이 집사 되기가 꿈이라 제주에서 시골집을 개조해 고양이들과 함께 살겠단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반려 동물로 개를 들이는 것은 달갑지 않다. 개가 주는 애정을 상상만 해도 부담스럽고 그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품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늦은 퇴근길 주인과 함께 길거리를 도도도도 걷는 개들을 만나면 마스크 바깥으로 최대한 활짝 눈인사를 지어 보인다. 그러나 내가 그 개의 목줄을 쥐어 잡은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거북해진다. 나를 경계해 도망가는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기특한 생각이 드는 것과 반대다. 경계성이 강할수록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길고양이와 달리, 오랜 기간 인간과의 공존을 택해 늑대에서 개로 진화해 온 개가 사람을 향해 내보이는 무한 신뢰와 친밀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아니 우리 가족들 모두 고양이에 더 가까운 인간이라서도 그렇다.


어찌 됐든 엄마의 말이 농담이었길 바란다. 나의 즉각적인 반대에 엄마도 생각을 접었을 것이다. 그저 비혼으로 고양이들과 함께 살겠단 꿈을 가진 딸의 영향을 받아 반려동물을 들이는 걸 고려해 본 정도로만 놔두길 바란다. 거기다 본심을 밝히자면 나는 절. 대. 부모님과 함께 살며 내 고양이들을 키우지 않을 것이다. 나의 고양이 집사 되기는 완전한 독립-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과 함께 이룰 목표로 내 마음속에서 굳건히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22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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