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는 Nov 28. 2022

그만두기의 역설

스페인어와 브라질

뭔가를 그만두기란 어렵다. 특히 다른 걸 시작하지 않고 그만두는 데는 그 행동을 이어하는 만큼의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그만두기란 어렵다. 애써 해오던 일을 그만두기도, 맺어온 인연을 그만두기도 말이다.


나는 그만둬야 할 시기를 잘 모르는 데다 그만두는 데에 발휘해야 할 에너지가 없어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불성실한 스터디원으로서 온라인 스페인어 소모임도 6년째 이어 오고 있다. 어영부영하다가 벌점 콜렉터이면서도 독서 소모임의 소모임장을 맡기도 했다.


’이젠 진짜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것도 며칠을 품고 다니면서도 제때 힘을 내 그만둔다는 말을 못 한 탓이다. 그 덕에 하루 10분이라도 스페인어를 놓지 않고 배우고 있고 도서관에 가 책을 빌리고선 책을 열어보는 시늉이라도 한다.


나처럼 세상 사람 모두가 그만두지 못해 산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어떤 이들은 완전히 멈추고 싶어 한다. 아예 생을 그만두고 싶어 하기도 한다. 위로가 될 진 모르지만 나는 결과값을 입력한 앵무새 로봇처럼 확신을 담아 말한다. 그만두지 않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어떤 형태든 생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벌점이 쌓여 기프티콘 쏘기 벌칙을 수행하면서도 하루 10분씩 이어져 온 내 스페인어 공부가 가끔 빛을 발할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수능 스페인어 문제집을 풀고 스페인어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외우는 걸 본 엄마는 말했다. 스페인어 공부에 그 에너지를 쓸 거면 차라리 공무원 시험공부를 다시 하는 게 낫지 않냐고. 공무원 시험을 그만둔 데에는 길었던 고민의 시간과 괴로움이 있었기에 다시금 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 스페인어 공부가 비생산적(돈을 벌지 못함)이라는 이유로 내 스페인어 공부를 불필요한 일로 낮춰 봤다.


하지만 나는 스페인어를 배운 뒤로 스페인을 시작으로 멕시코, 남미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거기서 나를 만난 동행들은 감사하게도 나를 스페인어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추켜세워준다. 그래서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에서 강도를 만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스페인어 사용 국가에서 그런 사고를 당했으면 스페인어를 더 이상 배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한번 마음을 닫으면 다시 열기가 어렵다. 강도들과 내 도움 요청을 외면한 브라질 경찰 때문에 나는 브라질이란 국가 자체에 마음이 떴다. 몸을 다친 상태에서 나는 장기여행을 그만둘지 다른 국가로 옮겨가 여행을 계속할지를 밤새 고민했었다. 그때 당시 내 동행들도 여행을 마무리하는 단계였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동행들을 보며 나도 여행을 그만두는 것이 맞나 싶었다.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한국에서 날 혼낼 거 같지 않은 친구 두 명에게만 소식을 알렸다. 잠시 후 다른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와 돌아오라고 성화였다. 결과적으로 그때 여행을 그만둔 것이 다행이었다. 내 몸은 내 예상보다 더 크게 다쳐있었고 나는 귀국하고서도 몇 개월 동안이나 치료를 받아야 했다. 몸을 다쳐 브라질에서 강제로 여행을 끝내면서도 미국에서 열심히 면세 쇼핑을 했다. 그럼에도 브라질에서 하바이나스 조리를 사야 한다는 사람들의 충고는 외면했다. 마음에서 섭섭함이 쌓여 브라질의 모든 것이 싫었다. 그러니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에서 여행을 그만둔 것이 다행이다.

2019년 3월 브라질의 삼바 축제


6년의 시간이 흐르니 엄마는 내가 영어 외에 스페인어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내심 좋아한다. 무서운 배낭여행도 잘 다녀왔으니 사람들에게도 ’우리 딸이 외국어 좀 해.‘ 하며 자랑하는 듯하다. 언젠가는 나와 함께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는 게 꿈이란다.


브라질에서 사고를 당한 나는 귀국하고 2주 동안 서울 친구 집에 머물며 멍이 빠지길 기다렸다. 내 가족은 내가 여전히 여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뒤늦게 제주로 귀향한 나는 놀라운 소식을 한참 지나 알렸다. 그때의 본심을 엄마에게 고백했다.


“엄마. 사실 브라질에서 맞고 온 거 숨긴 거. 엄마 걱정시킬까 봐 말 안 한 거 아니야. 다시 나 해외로 안 보내줄까 봐 숨긴 거야.“


엄마는 답했다.


”아니. 난 그래도 또 보내줄 거야. “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엄마도 브라질 강도 사건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2020년에도 해외를 떠돌다 코로나에 걸려 죽었을 거라며 강도들에게 고맙기까지 하다고 했다. 코로나로 고생하는 자영업자인 내 앞에서도 그 본심을 숨기지 않는 걸 보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나를 때린 강도들에게 고마워하다니 인생은 참 역설적이다. 그때의 불행이 지금은 다행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 그만두지 못해 생을 이어간다. 생을 잇는 이유에는 저마다 다양하고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그만두지 않고 이어지는 모든 일은 유의미하고 가치 있다. 그만두지 못해 계속되는 내 생의 목표에는 스페인어 델레 합격과 영어(게임) 유튜버 되기, 할머니 작가 되기 등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당장은 비생산적이지만 그만두지 않고 쉬엄쉬엄 이어 하다 보면 언젠가 다 이룰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러면 미래의 나는 그만두지 않은 과거의 나를 기특해하겠지.


이런 내가 쉽게 그만두는 것은 횡단보도 앞에서 엑셀 밟기이다. 칠레에서 보행자인 나를 배려해 저 멀리에서 차를 세우고 귀찮다는 듯 팔을 휘적거리던 아저씨가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법으로 제정됐지만) 그 후로 나는 사람이 서 있기만 해도 횡단보도 앞에서 차를 멈춘다. 팔을 휘적거리는 대신 눈에 띄게 비상등을 켜고 건너는 보행자를 지켜보면 제법 젠틀한 기분이 든다.


또 게임을 하다 엄마가 빨래를 널러 오면 바로 게임을 그만두고 빨래를 같이 넌다. 어떤 엄마의 부름에든 항상 게임을 멈추고 응한다. 덕분에 엄마는 내가 게임하는 걸 흉보지 않는다. 이는 게임 잘 하라며 엄마가 간식을 가져다주는 비결이기도 하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그만둬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그저 이어 하는 것을 권한다. 이어 하는 것이 힘들다면 주변에 속내를 털어놓고 도움을 구해도 괜찮다.

19년 3월 은신범에게 친구가 차려준 밥상.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남미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폰 메모장에 스페인어 한 문장을 쓰며 다짐했었다.


¡Viviré como una guerrera!


뜻은 “나는 여전사처럼 살 거야!” 로, 정말로 나는 강도들에 맞서 싸운 동양인 여전사가 되었다.


거 봐라.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생도 바라는 대로 이어진다.

단, 그만두지 않는 한이다.



22년 11월 27일

매거진의 이전글 개와 불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