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과 잎눈
봄을 알리는 꽃들은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진달래, 그리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작은 꽃들도 있다.
흔히 봄에 피는 꽃을 많이 기억하지만,
계절 따라 피는 꽃들도 수없이 많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화려한 봄을 보냈다.
여름과 가을, 겨울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른 봄을 환하게 밝혔던 하얀 목련의
가을 모습을 바라보며 그 답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목련의 넓고 두꺼운 잎 사이로 솜털을
가득 두른 봉긋한 겨울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직 꽃은 없지만, 이미 다음 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하얀 꽃이 피어날 것처럼
단단하게 겨울눈을 만들고 있었다.
목련의 겨울눈은 꽃눈과 잎눈으로 나뉜다.
꽃눈은 봄에 꽃을 피우고, 잎눈은
새 잎을 틔운다. 이 작은 겨울눈은 두꺼운
껍질과 부드러운 털로 감싸여 혹독한
추위와 건조를 견뎌낸다.
겨울눈은 눈 내리는 계절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치밀한 준비의 흔적인 것이다.
화사한 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들은 소리 없이
계절을 맞이하고 또 보낸다.
꽃은 잠시 피었다 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서서히 사라진다.
그러나 나무는 그 이후의 시간을 더
성실히 살아낸다. 무더운 여름의 열기와
폭풍우를 만나고 견뎌낸다.
가을의 햇살 속에서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얼룩진 옷을 입어 본다. 다시 거센 바람과
혹독한 추위와 맞서는 긴 겨울을 맞이한다.
겉으로 보면 그저 가만히 서 있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잘 짜인 계획 속에서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얀 목련 꽃이 이른 봄을 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 고귀한 꽃은 우연히
피어난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의 준비와
기다림이 있어서 가능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눈에 띄는 성과는 잠깐이지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계절들이 존재한다.
지금 당장 꽃이 피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각자의 겨울눈을 만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계절이 소리 없이 찾아오듯, 준비의 순간은
늘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