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보편적인 것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가?”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런데도 사회는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묶어낸다.
어쩌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개개인의 특성과 다름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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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잘생긴 얼굴, 아름다운 몸매 같은 외형적 기준도
실제로는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쉬운 형태로 규격화된 것일 뿐이다.
그 기준이 모든 사람의 취향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배가 나온 몸을 더 선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미디어와 사회 분위기가 강요하는 ‘잘 만들어진 몸’- 을 자연스럽게 ‘좋은 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 얘기를 꺼낸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담론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일상 속에서 느낀 작고 사소한 의문 하나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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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문은 특히 내가 웃긴 개그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때 자주 떠오른다.
“이건 진짜 걸작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신나서 영상을 보내도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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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개그 영상을 지인들에게 공유했다.
내용은 이랬다.
한 여성이 모니터 앞에 서서 말한다.
“저는 상자 공포증이 있습니다. 상자 공포증이란…”
그 순간, 모니터 화면이 전환되며
3D 육면체가 돌아가는 애니메이션이 나온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이것은 PPT 화면 전환 효과였다.)
그러자 여성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도망친다.
나는 이 구성이 굉장히 기발하다고 느꼈고,
혼자 크게 웃었다.
그래서 당연히 공유하면 다들 웃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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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친구는 “뭔데 ㅋㅋ” 라며 건조하게 반응했고,
• 또 다른 친구는 “벌레가 튀어나온 건가?” 하며
자기가 생각한 웃긴 상황으로 영상을 재해석했다.
• 어떤 이는 “이게 왜 웃긴 거죠?”라고 물었고,
내가 “웃겨서 보내드렸습니다”라고 하자,
“이해가 안 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다시 “그럼 왜 웃으셨습니까? “라고 묻자,
“이해가 안 가서요 ㅎㅎ”라는 말이 돌아왔다.
• “저도 상자 공포증 있어요.”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농담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PPT 전환 효과에서 나오는 상자 모양이 디자인적으로 혐오스럽다고 했다.
• 또 누군가는 “진짜 그런 병도 있어요?” 라며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요즘은 별의별 병이 다 있더라.”
그리고 물론, 대부분은 예상한 대로
“ㅋㅋㅋㅋㅋㅋ”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도 각자 다른 맥락과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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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겪으며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통하는 보편적 기준이라는 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우리는 자주
“이건 웃긴 거야”, “이건 아름다워”, “이건 성공이야”라고 말하지만,
그 기준은 대부분 타인이 정한 틀을 빌린 것일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 대중 미디어, 시장 논리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점점 표준화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끝없이
서로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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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나치게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작고 어이없는 장면 속에서조차
“보편”이라는 말이
얼마나 불완전한 기준인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