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짭 ADHD인 줄 알았다

어쩌다보니 ADHD 정품인증

by 구마



영구적인 결함보단 영구적인 상처가 있는 편. 그게 스스로에 대한 내 규정이었다. 그러니 ADHD로 진단을 받고서도 맘 한 구석에선, 때로는 대놓고(브런치 작가소개에서조차) 난 사실 ADHD라기보단 C-PTSD환자이다, 라고 우겼던 것이다. 모자란 사람보단 짠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똑같이 소외될지언정 내 상처가 나를 남들에게서 멀어지게 해야지, 섞이고 싶어 발버둥을 쳐도 비껴 나고 마는 상황은, 자존감의 몫까지 대신 부풀어버린 내 비대한 자존심이 차마 허락을 안 했던 것이다.


이제는 인정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착각이고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더 겪어보고 깨져보고 깨달아보고 아무튼간에 더 살아보고 나니, 나는 그냥 ADHD였다. 무슨 아련하고 의미심장한 부연설명 따위를 더 끼얹을 필요도 없이, 나는 그냥 ADHD였다. 내 비대한 자아가 산산조각이 나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도 까먹은 일의 수습과 까먹을 일의 불안 사이를 헤매며 어찌어찌 살아내야 하는 나는, '겨우' ADHD였고, 수치와 자책으로 버무려질지언정 ADHD라는 정체성을 붙들고 매 순간 의식하며 연약한 정신줄을 붙들지 않으면 도무지 멀쩡히 살 수가 없는, '무려' ADHD였다.


설령 ADHD인들. 그래도 나는 내가 알만큼 알고, 노력도 해보고, 바뀔 만큼 바뀐, 말하자면 경력직 ADHD쯤 되는 줄 알았는데. 개뿔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좆도 모르고 개깝치던 ADHD 애송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와 알게 된 내 ADHD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1. ADHD를 가진 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친다.


나는 내가 ADHD여도 그냥 혼자 은밀하게 힘들고, 서럽고, 억울한, 그런 건 줄 알았다. 내가 어찌어찌 부단히 힘들여 해낸 것들이 사실 남들은 숨 쉬듯 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래서 나는 뒤늦게 그걸 알고 눈물 찔끔 훔치며 나를 위로하는, 그런 거여야만 했다.


그런데 실상은, 내 ADHD가 남에게 피해를 준다. 아니, ADHD를 가진 내가 남에게 피해를 준다. 눈물자국 메말라 구질구질한 삼류신파극의 여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싸구려현대극의 삼류 악역쯤 되는 게 나였다. 내 설움과 고난과 세상의 부조리가 한 편 드라마인 게 아니라,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세상에서 그냥 나 혼자 드라마퀸이었다.


공부만 하던 시절을 지나 여러 사람 부대끼며 같이 일해야 하는 직장인이 되고 나니,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분명 멀쩡한 두 눈으로 자료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땐 그런 내용이 내 눈에 안 보였는데, 알고 보니 다 있는 내용이었고, 그걸 나 혼자 없었다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물어보고 만들고 있는, 그런 상황들. 나는 이제 이걸 증상이 아니라 태도로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또, 내가 관심 없고 하기 싫은 일, 그렇지만 다 같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무관심하다. (이쯤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이라고 쓴 게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잠깐 멈췄다.) 나는 의미든 흥미든 데드라인이든 뭐 하나가 나를 거세게 옭아매서 끌고 가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의미고 흥미고 그딴 거 없어도 해야 하면 하고, 하라고 하면 하는, 그런 '어른스러움'이 나한테 없다. 정말 이런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나 스스로를 갖다 버리고 싶은데, 이렇게 쓰고 있는 손가락도 내 것이고, 지금도 나는 이런 사람이다.



2. ADHD를 가진 나는 오로지 나만 생각한다.


이건 너무 충격적이라 받아들이는 데에 한참이 걸렸고, 지금도 맘이 따끔따끔하다. 난 내가 눈치를 많이 보고, 그래서 눈치를 잘 보고, 배려심이 깊고, 남한테 피해 안 주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고 그런 사람이어야만 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내 관점이 아닌 다른 사람 관점에서 생각하는 걸 잘 못한다. 그렇게 해볼 생각 자체를 잘 못하는 것도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진실이 합쳐져서 발생한 개끔찍한 현상은... 피해를 주고도 미안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로, 나는 한동안 몹시도 분하고 억울했다. 예를 들면, 내가 데드라인에 임박해서 처리한 일이 있다. 그건 내부에서 아주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었고, 내 개인적으로는 그 의미가 와닿지 않았다. 난 그 일에 흥미도 열정도 없었고, 그냥 처리만 했다. 문제는 데드라인을 간신히 안 넘기게 아슬아슬 처리했단 점인데, 나 말고 그 일에 에너지를 쏟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일로 내가 욕을 먹는 게 당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됐건 난 그 일이 몹시 익숙하고 쉬웠고, 비록 간당간당 처리했으나 결코 데드라인 넘어설 일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그건 순전히 내 입장이었다. 그렇게 해도 반드시 기한 내로 처리될 수 있다는 건 오직 나만 알고 있었고, 난 그걸 이해 못 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한 일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에 대해서도, 공감할 노력조차 안 했다.



3. 그럼 약은 왜 먹는가?


약을 먹고도 이만큼 모자란데, 약빨이 안 듣는 것 아닌가? 이럴 거면 약 왜 먹는가? 라고 물어볼 사람도 있을 것 같아 덧붙여 쓰자면... 약은 내 모자람을 내가 알게 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더 뼈저리게 체감되는 건, 그냥 약을 안 먹으면 병든 닭처럼 낮이고 밤이고 졸고 있다는 점이지만, 여하튼 약을 먹으면 나 자신을 좀 더 선명히 보는 것 같다. 샤워하면서 김 서린 거울에서 보는 내 얼굴이 훨씬 맘에 드는 것처럼, 나도 이토록 낱낱이 선명하게 보는 나 자신이 좀 감당이 안 되고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지만, 내가 나를 보지 않으면 나는 영영 이대로 살아야만 한다. 약은 내가 나를 보고, 그로써 내가 스스로를 바꿀 선택권이 생긴다는 것...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내가 한 실수와 잘못들 가운데, 정말 내가 굳이 원해서 한 것들이 있었겠냐만은... 그래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늘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이걸 받아들이고 다음엔 좀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의식하고 노력할 수 있게 되는 게 약을 한동안 잘 챙겨 먹을 때의 내 상태다.






지금에서 생각하건대, ADHD는 열심히 잘 관리한다고 모범수 석방되듯 탈출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냥 계속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존심 상하고 거지 같고 지겨워도, 접시를 산처럼 쌓아 옮기는 뷔페 직원처럼 조심조심 살아야만 한다. 어쩌면 ADHD 증상이 폭주한들 그 상태일 땐 어차피 나밖에 모를 것이고 메타인지도 떨어질 것이므로,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나 만족도는 별로 뒤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약을 잘 챙겨 먹은 나는 내가 그런 모습이 되도록 마냥 놔둘 수가 없다. 그런 나를 상상하는 괴로움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드는 그 무수한 에너지보다도 더 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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