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마의식

깃털 같은 사람

숨이 트일 만큼 가벼운

by 구마


늦어도 서른이 넘기 전에 콱 죽어버릴 줄 알았던, 질질 끌며 말라죽어도 서른까진 안 닿을 줄 알았던, 그런 이십 대가 갔다. 나는 석 달 반 남은 서른 하나를 벌써 내외하는, 그 내외가 앞으로 또 일 년은 갈 줄 이미 아는, 그런 서른 살이다.


이십 대의 나는 아마 '이렇게' 살까 봐 죽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모은 돈은 없고, 가족은 다 끊어냈고, 연애나 결혼은 딴 세상 얘기고, 직장에서 자리 잡긴커녕 매일이 가시방석이다. 목표도 계획도 없고, 아직도 꿈을 찾는 게 꿈이다. 제2외국어는커녕 아직도 외국인을 보면 영어로 말을 걸까 무섭다. 악기나 운동 같은 자기 계발은커녕 빨래도 제때 안 돌리고 기본적인 자기 관리도 안 된다. 나는 오늘 세탁 끝나고 아침까지 안 꺼낸 세탁물을 드라이기로 반쯤 말려 입고 출근했다. 이쯤 쓰고 더 얼마를 솔직해져야 하는가 잠시 고민하다가, 더 털어놓은들 내 속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과, 여기 아니면 더 말할 데도 없는 것을 동시에 떠올리고, 그러나 어쩐지 힘이 빠져 말을 삼키고 마는, 그런 심심한 서른 살이다. 여하튼 안 죽고 버티고 살아서 마주한 현실은, 결코 내 편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시절 우울했던 나는 제법 냉철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자살 안 하고 여즉 살아있는 나를 구태여 기특해하기 위해? 자살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렇게 살아있다고,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혹은 은밀히 다시 죽고 싶어져서? 그와 동시에 그러지 않길 바라서?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글이 성큼성큼 산으로 가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거하게 잘못 만든 양모펠트 같은 글이 있어도 되는가. 라고 묻고 나니 당연히 있어도 된다. 안 깨지는 순리가 없는 이 세상인데 이따위 어긋남이 뭐 어때서.


나는 오늘 갑자기 아주 문득, 밝은 글이 쓰고 싶었다. 깃털처럼 가볍고 코가 씰룩거리게 간지러운 글. 이를테면 작고 소중한 것들, 품고 싶게 따뜻한 것들, 품기 전에도 이미 따끈한 것들, 혹은 여름 낮잠처럼 노곤한 것들, 그냥 그런 것들. 어느 누구 가슴에 콱 박히지 않아도, 어느 누구 가슴엔들 깃털처럼 떠올라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그 언젠가는 읽은 기억조차 없을 테지만 읽은 순간의 미미한 따스함이 미세결정처럼 남는 그런 글.


그래서 아마 나는, 내 삶의 밝은 구석을 떠올리다가, 겨우 '죽진 않았다'는 사실에 가닿은 것 같다. 이게 또 서럽고 꿉꿉한 사실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닌데, 뇌는 부정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다더니, 안 죽었다고 되뇌고 보니 죽겠다고 염불 외는 글 쓰고 본 것 마냥 꿀꿀한 기분이다.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쓰면, 속이나마 시원하게 토하듯이 쓰자면... 나는 우울한 것 같다. 허망한 것도 같고 무섭고 외로운 것도 같다. '우울한 것 같다'라고 안 쓰고 '우울하다'라고 쓰면 어쩐지 선뜩해서, 짐짝 같은 표현을 달고 못생긴 문장으로 마무리 짓는다. 내가 너무 싫은데, 내가 우울하고 무섭고 외로울 때 같이 견딜 사람이 또 나뿐인 건 싫어서. 그런 머저리 같은 기분은 견딜 각오가 안 돼서.


깃털 같은 글을 쓰는 건 이제 됐고, 그냥 내가 깃털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이렇게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지도 말고, 뭣 하나 진득이 생각하지도 말고, 제 발로 들어간 소용돌이에서 미련하게 상처입지 말고, 그냥 둥실둥실 살았으면 좋겠다. 한없이 가벼워서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도, 그래도 내가 가벼웠으면 좋겠다. 자려고 누웠을 때 공연히 숨이 막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침전하는 기분에 차라리 편안해하는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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